기존 아파트의 획일화된 구조를 허물고 자신의 라이프스타일 패턴에 꼭 맞춘 새로운 레이아웃으로 완성된 싱글남의 집은 어느 누구도 아닌 그저 나다운 집이란 어떤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가 될 것이다.
서울 최대의 증권가 중심에 위치한 아파트 최상층이자 161m²가량의 공간이 오직 한 남자를 위해 재탄생했다. 단 한 사람만을 고려한 내부 동선, 라이프스타일에 기반해 직접 제작한 가구들은 말하지 않아도 남자의 삶과 습관 그리고 취향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같은 공간을 고안하고 실현시킨 것은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브랜딩과 상업 공간을 디렉팅해온 최중호 스튜디오의 최중호 디자이너다. 개인을 위한 장소보다는 주로 브랜드나 리테일을 목적으로 한 공간을 디렉팅해온 그인지라, 한 사람을 위한 공간 디자인은 그에게도 신선한 시도로 다가왔다. 싱글 남성을 위한 집을 구현하기 위해 가장 먼저 고안한 것은 공간 구획이 확실한 기존의 아파트 구조를 허무는 것. 기혼자가 있거나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 거실이나 주방, 침실 등의 명확한 구분이 필수적이지만 모든 공간을 오롯이 혼자 사용하기 때문에 구태여 공간을 구분하지않고 보다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여지를 둔 것이다. 기존에 설치된 벽체와 문은 최소화해 거실과 주방, 다이닝은 마치 하나인 양 개방감은 살리고 동선의 구성은 대폭 느슨해졌다. 디자인적인 시도도 기존의 공식과는 궤를 달리한다. 마이너스 몰딩을 접목해 미니멀한 느낌을 가미하는가 하면, 대개의 아파트에서 쉽사리 접목할 수 없는 합판 등의 마감재를 활용하거나 원색에 가까운 강렬한 색상을 곳곳에 도입하고 사용자의 취향과 평소 생활 패턴을 고려해 직접 모듈이나 선반 등의 가구를 디자인해 집안에 들였다. 비록 공간을 구분짓지 않고 보다 자유로운 동선을 꾀했지만, 이같은 요소는 굳이 공간별 한계를 두지 않더라도 정체성을 보다 시각화하는 데 기여한다. 그리고 이러한 최중호 디자이너의 고심은 집 안 곳곳을 보다 면밀히 살펴볼 때 더욱 빛을 발한다.
LIVING ROOM
싱글남의 집은 거실로 명명될 법한 구획이 명확하진 않지만, 대개의 거실이 그러하듯 집의 중심이자 이곳을 풀어헤칠 수 있는 핵심이 도사린다. 중앙부에 위치한 낮은 채도의 푸른 기둥 겸 선반이 그 주인공. 마치 기둥처럼 제작해 건축적인 면을 십분 살리면서도 선반식으로 구조를 짠 덕에 가구의 역할도 겸해 자유로운 느낌이 감도는 집의 정체성을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선반 겸 기둥에 적용된 강렬한 색은 이 집의 또 다른 시그니처 공간인 홈짐과 드레스 룸에 적용된 키 컬러와 동일해 이 집의 재미를 미리 보여주는 요소로도 읽힌다. 또한 거실은 기성 가구가 가장 많이 비치된 구역이기도 하다. 임스 라운지 체어와 LC3 소파 등 집주인의 취향을 반영한 디자인 가구들이 이곳에 자리 잡았다.
KITCHEN & DINING
주방과 다이닝은 가장 많은 구조 변경이 이뤄진 곳이다. 기존에 위치한 다용도실 격인 장소를 제거해 주방을 늘리고, 전체 벽은 허물지 않는 대신 집 안 어디에서도 주방 내부를 볼 수 있도록 시야를 튼 점이 특징. 덕분에 외부로부터 드는 빛이 주방을 해사하게 만든다. 또한 마감재의 독특한 조합을 도입한 점이 흥미로운 포인트. 일례로, 목재의 날것 그대로의 물성을 살린 합판으로 만든 하부장과 차가운 금속 상부장과 상판을 조합한 점이 바로 그것. 특히 첫 아파트 프로젝트인 만큼 한국의 주방 디자인 스튜디오 바이빅테이블과 협업해 주방 가구는 물론, 주방의 수로 등 구조 변경에 있어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야 하는 요소를 함께 고심했기에 최중호 디자이너에게도 더욱 뜻깊은 구역.
BED ROOM
침실 또한 거실과 자연스레 이어지는 개방적인 공간이지만, 동시에 가장 사적일 수 있도록 장치를 둔 점이 재밌다. TV나 침실 용품을 비치할 수 있도록 레어로우의 모듈 선반을 두었지만 벽면 전체를 가리진 않도록 철제 프레임으로 제작한 동시에 천장에 매립 레일을 깔아 프라이빗한 침실을 원할 경우, 언제든 커튼을 칠 수 있게 한 영리한 아이디어를 도입했기 때문. 철제 선반과 대조되는 일체형 목제 침대 프레임을 둬 소재의 다양성을 도입한 것 또한 눈길이 간다. 이곳에서도 컬러감을 살리기 위해 트롤리와 사이드 테이블, 이불의 색상을 원색에 가까운 것으로 선택했다.
SHOWER ROOM
블랙 & 화이트를 컨셉트로 한 샤워룸은 마치 침실과 하나로 이어지는 듯한 첫 인상이 매력적이다. 특히 욕조의 위치 선정이 흥미로운데, 욕조의 절반가량이 외부에서도 보일 수 있도록 비치한 것. 욕조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는 집주인의 취향에 맞춰 기성품 욕조에 휴대폰이나 태블릿을 비치할 수 있는 스테인리스 상판을 덧대 아이코닉한 욕조를 만들었다. 욕조에 앉아 동영상이나 TV를 볼 수 있도록 모니터를 설치한 것은 욕조에서 반신욕 등을 즐기는 집주인의 취향을 십분 고려한 것.
ENTERTAINMENT ROOM
홈짐과 아카이브 존 그리고 게임 존이 나란히 이어져 있는 일명 엔터테인먼트 룸은 이 집의 백미와도 같다. 집주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공간을 꾸리는 동시에 디자인적으로 과감하고 참신한 시도가 돋보이기 때문. 홈 트레이닝을 위한 룸은 바로 앞에 난 통창으로 인해 탁 트인 뷰를 자랑하는 동시에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바닥은 엠보싱 처리를 했다. 한 켠에는 붉은색 격자 알루미늄 프레임을 마련했는데, 운동기구를 걸어 수납할 수 있는 용도로 사용하는 동시에 풀업을 할 수 있는 봉까지 설치해 운동과 수납 모두를 챙기는 영리함을 발휘했다. 바로 이어 보이는 드레스룸에는 앞서 거실에서 힌트처럼 존재하던 블루 컬러 기둥의 정답과도 같은 요소가 마련되어 있다. 드레스룸의 장과 게임존 천장에 접목된 키 컬러가 거실의 기둥겸 선반과 동일한 컬러로 마감되었기 때문. 자칫 질릴 우려가 있어 거주지에 과감한 색 도입을 꺼려하는 데 반해 다양한 요소가 집에 머무르기 바랐던 집주인의 취향을 반영한 결과다. 특히 드레스룸에 마련된 매립 벽장에는 열고 닫는 문을 별도로 설치하지 않고, 장 상단에 패브릭을 달아 커튼처럼 언제든 손쉽게 치고 걷을 수 있어 답답함은 줄이고 보관과 수납은 편리하게, 시각적으로도 깔끔하게 보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신발을 모으는 취미가 있는 집주인을 위해 디스플레이 존을 마련한 점도 눈이 간다. 기존 모듈 선반의 구조에 영감을 받아 금속으로 만든 디스플레이장은 마치 신발이 주인공처럼 보일 수 있도록 백라이트를 설치해 집주인의 신발 컬렉션이 더욱 도드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