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것이 언제나 환영 받을지는 몰라도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묵묵히 우리 곁을 지키는 옛 것의 가치는 더욱 특별하다. 우리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기프트숍 하우스윤을 이끌고 있는 이윤정 대표의 집을 찾았다.
지하 1층에 자리한 하우스윤 스튜디오. 애초에 이곳은 하우스윤의 쇼룸으로 운영될 계획이었지만 현재는 이윤정 대표의 작업실이자 지인들을 초대하기 위한 일명 ‘윤 바’로 활용된다. 장 미셸 오토니엘의 작품과 화려한 샹들리에, 고재 수납장이 어우러져 독특한 시너지를 낸다.
겉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트렌드에 이끌려가다 보면 경쟁하듯 너도 나도 새것에 현혹되기 마련이다. 집 인테리어도 그렇다. 소위 유행하는, 베스트셀링 아이템으로 입소문이 난 가구를 사다 보면 결국 내 집에 있는 것이 남의 집에도 있는 불상사를 마주하곤 한다. 이러한 고민과는 거리가 먼 집을 만났다. 거실을 차지하는 큼지막 한 소파와 테이블은 물론이고, 지인한테서 얻은 오래된 샹들리에, 성인이 된 큰아이가 유치원생일 때 구입한 조명 등 족히 10년은 넘은 것이 대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집 안 곳곳에는 시댁에서 받은 자개장과 아버지의 고향 인 경상북도 한계 마을에서 가져온 화로와 조선시대 사발, 놋그릇 등 박물 관을 방불케 하는 골동품으로 가득하다. “한번 사면 오래 쓰는 스타일이라서 제가 빈티지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오래 사용하다 보면 생기는 자잘한 흠집 같은 것을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이에요. 20년이 지난 것도 많은데,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걸 보면 제 취향이 한결같은가 봐요.” 지하를 포함해 4개 층으로 이뤄진 이곳의 집주인이자 기프트숍 하우스윤을 이끌 고있는 이윤정 대표가 입을 뗐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골동품과 셀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놋그릇으로 가득한 이 집을 소개하기에 앞서 하우스윤에 대한 궁금증을 먼저 풀고 싶었다.
소파부터 티 테이블, 조명까지 족히 10년은 넘은 오래된 것들도 보인다. 하지만 한결같은 취향 덕분인지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소반 아래 숨어 있는 반려묘 브루노.
그녀의 집을 가득 채운 물건은 하우스 윤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 “원래는 예돌이라는 이름으로 2007년에 시작 했어요. 우연히 시댁 식구들을 모시고 갔던 한식집의 놋그릇에 매료되어 지금까지 온 것 같네요. 무작정 유기장 명예 보유자인 이봉주 장인의 아들 이 운영하는 이형근 공방에 찾아갔어요. 처음에는 제가 집에서 쓰기 위한 숟가락과 티스푼 정도만 주문 제작했던 것이 우연히 삼성문화재단 리움미 술관의 기프트숍과 연이 닿아 비취를 단 캔디 볼을 제작했어요. 그 당시만 해도 놋그릇이 대중적으로 사용될 때는 아니었는데, 점차 큰 회사에서 놋 그릇을 출시하기 시작하면서 살짝 주춤하기도 했지만요”라며 당시의 열정을 떠올리며 설명했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예돌을 운영해오다 결정적인 계기가 또 한번 찾아왔다. 옻칠에 반해 큰마음 먹고 구입한 허명욱 작가 의 수납장에 문제가 생겨 AS를 부탁했는데, 그가 직접 수리하기 위해 집을 방문했다.
소파부터 티 테이블, 조명까지 족히 10년은 넘은 오래된 것들도 보인다. 하지만 한결같은 취향 덕분인지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소반 아래 숨어 있는 반려묘 브루노.
지하 1층에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골동품 유기 식기부터 현재 하우스윤에서 판매하고 있는 놋그릇까지 다양한 종류의 식기를 둘러볼 수 있다.
허명욱 작가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옻칠을 입힌 놋그릇.
당시 헤리티지 조리원에서 고급 선물을 위해 놋그릇 이유식기를 만들어 보자는 요청을 했던 차에 때마침 허명욱 작가와 마주하게 된 것.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꺼냈고, 그렇게 옻칠을 입힌 놋그릇이 탄생했다. “겨울에 선생님을 만났는데, 3월쯤엔가 샘플을 보러 오라고 하셨어요. 눈앞에 펼쳐진 샘플을 보고 너무 기뻐서 순간 눈물이 흘렀어요. 10년 동안 저도 모르게 놋그릇이 질리고 약간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는데, 너무 새로운 모습 의 놋그릇과 마주하니 아주 흥분되더라고요.” 이후 본격적으로 오렌지와 민트 컬러를 입힌 디저트 식기를 제작했고, 현재 신라호텔 아케이드에 하우스윤이라는 이름으로 쇼룸을 운영하고 있다. 놋그릇 외에도 박선민, 류연희, 이혜미 등 국내 작가들의 그릇도 함께 셀렉트해 소개하고 있다. “그릇 편집숍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전통을 선물하는 고급 한국 기프트숍이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그녀가 하우스윤이 추구하는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사실 이 집도 하우스윤의 쇼룸을 오픈할 것을 고려해 선택한 것이다. “집의 외관이 정말 볼품없었어요. 각각의 층이 20평대로 좁고 높은 집이라 부동산에서도 집보다는 갤러리 같은 상업 공간으로 추천했어요. 지금의 신라호텔 쇼룸을 오픈하기 전이라 이 집이 딱 알맞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입구가 두 개라 숍과 주거 공간을 분리해 생활하면 되겠다 싶었죠.”
이윤정 대표의 다이닝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테이블은 어반아일랜드와 협업으로 제작한 것이다. 허명욱 작가의 수납장과 피에르 잔느레의 다이닝 체어, 10년도 더 전에 구입한 웨스트엘름과 포터리반 펜던트 조명, 자라홈에서 구입한 스툴까지 브랜드에 한계를 두지 않고 다양한 조합을 즐긴다.
하우스윤에서 판매하는 식기와 커틀러리.
하우스윤에서 판매하는 식기와 커틀러리.
애초에 하우스윤의 쇼룸으로 사용할 예정이었던 지하 1층은 현재 하우스윤의 스튜디오이자 지인들을 초대하기 위한 ‘윤 바’로 불리기도 한다. 큰 공사 없이 깔끔한 장을 짜 넣어 옛날 어머니 집에 보자기에 싸여 있던 골동품과 옛날 놋그릇들을 멋스럽게 진열했다. 덕분에 그녀의 집을 방문한 손님들이 가장 흥미롭게 구경하는 곳이다. 오래된 물건이 주는 분명한 힘이 있어서 일까, 이윤정 대표는 새롭게 페인트를 칠하고 누렇던 계단 손잡이는 노끈을 감아 가리는 등 보기 흉한 부분만 교체하고 최소한의 공사로 집을 완성했다. 여기에 동양적인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는 장 미셸 오토니엘의 그림 과 박서보, 쿠사마 야오이 등의 작품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 집 걸러 한 집에서 볼 수 있는 뻔한 분위기에 조금 싫증이 났다면 이윤정 대표의 집이야말로 ‘특색 있는 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분명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뤄 만들어낸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시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오래된 수납장과 베이지색 옻칠을 한 녹그릇이 조화롭다.
오래된 자개장과 B&B 이탈리아의 허스크 암체어로 단조롭지만 특색있게 꾸민 침실.
계단에는 카펫을 깔고 손잡이에는 노끈을 감아 보기 싫은 부분을 가리는 등 큰 공사 없이 꼭 필요한 부분만 손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