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휴가지의 스테이에 온 듯한 세 식구의 집은 미니멀하지만 곳곳에 숨어 있는 아이디어 덕분에 비어 있지만 채워져 있다.
고민이 담겨 있는 소재
집 안에 들어서면 왠지 일반적인 집과는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마이크로토핑으로 시공한 바닥 때문일 것이다. 마이크로 토핑은 아주 고운 입자의 시멘트 가루와 특수 소재를 결합한 소재다. 친환경적인 데다 시공법에 따라 회벽 같은 독특한 무늬를 볼 수 있어 최근에 찾는 이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집 안 전체의 바닥을 회색 톤의 마이크로 토핑으로 마감했더니 집보다는 디자인 숙소나 스튜디오처럼 느껴진다. 송정원씨는 “집에 맘보와 보람이라는 두 마리 고양이가 있어요. 털이 많이 빠지는데, 바닥에 털이 잘 보이지 않아서 좋기도 하고, 털이 쉽게 붙지 않아 청소기로 미는 것도 간편해요”라며 바닥재에 정말 만족한다고 말한다. 맨발에 닿는 촉감은 타일보다 부드럽고, 덜 차가웠다. 또 보통 집 공사를 앞두고 있으면 의욕이 넘쳐 공간마다 소재를 달리해달라는 요청이 많기 마련이다. 디자이너로서는 통일한 소재가 미적으로 훨씬 더 아름답지만 고객에게 선뜻 하나의 소재로 통일하자는 말을 하지 못하는것이 현실적인 고민일 것이다. 마미지 실장은 “집 전체가 하나의 컨셉트로 보일 수 있게 모두 오크 무늬목의 가구로 맞췄어요. 공간마다 다른 소재나 스타일을 넣기보다 통일성이 느껴질 수 있도록요. 이런 제안을 흔쾌히 수락해줘서 디자인이 쉽게 잘 풀렸어요”라고 말한다. 덕분에 어느 곳도 따로 겉도는 공간 없이 하나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현관에는 거실이 바로 보이지 않도록 하면서 빛은 은은 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파이버글라스 소재로 작은 창을 냈다. 햇빛의 방향에 따라 한지나 닥종이처럼 독특한 무늬를 볼 수 있어 독특하다.편안하되, 단조롭지 않은 공간
집안에 가구나 물건이 많지 않지만 공간이 마냥 단조롭지는 않다. 그 이유는 곳곳에 색다른 장치를 해두었기 때문인데, 거실에는 소파와 TV 대신 집에서 일할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책장만 두었지만 창가쪽은 툇마루처럼 단을 높였다. 부술 수 없는 내력 벽 뒤로는 선반을 짜서 최근 관심사 중 하나인 가드닝을 위한 식물을 놓았고, 반대편에는 여름에만 사용하는 에어컨을 가릴 수 있는 큰 장을짰다. 식물을 올려둘 경우를 대비해 나무벤치의 일부는 스테인리스로 마감한 점도 아이디어다. 툇마루에 걸터앉듯 앉아 집을 보고 있으면 바람이 지나다니는 길만 느껴질 만큼 시원한 여백의 미를 맛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집은 여름과 꼭 어울린다.
심플한 취향
직업이 카피라이터인 송정원 씨 부부는 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미니멀리스트다. 최근 맥시멀리즘이 유행이지만 이들 가족은 꿋꿋하게 미니멀리스트 의 길을 걷고 있다. “보통은 집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하는 요청 중 빠지지 않는 것이 수납 공간이에요. 물건을 수납할 공간을 많이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많죠. 그런데 송정원 님은 일단 보기 좋게 디자인을 하면 그에 맞게 짐을 더 줄이겠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라며 마미지 실장이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세 식구가 함께 사용하는 옷장도 단출했고, 딱히 수납공간을 따로 만들지 않았음에도 장식을 위한 물건 외에는 전부 보이지 않게 수납이 가능했다. 맥시멀리스트의 집처럼 물건을 들여다보는 재미는 덜할지 몰라도 비움의 매력이 있다. 이 집은 물건이 아닌 공간으로 취향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