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디자인은 일맥상통한다. 미술 작품과 디자인 가구의 매력에 빠져 사업으로까지 확장한 젊은 컬렉터의 집을 소개한다.
핑크 네온이 걸린 입구로 들어서면 1층과 2층으로 갈 수 있는 계단이 펼쳐진다. 왼쪽 그림은 이탈리아 미술가 사브리나 라초 Sabrina Milazzo의 유화. 오른쪽 위의 돌 조각은 독일 미술가 알리캬 크바데 Alicja Kwade의 작품.
보다 갤러리 Voda Gallery와 어반 아일랜드 스튜디오 Urban Island Studio를 이끌고 있는 고명재 대표는 우연히 현대미술 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컬렉터 친구가 새로운 작품의 구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림을 사달라고 요청한 것 이다. 그는 얼떨결에 작품을 구입했고, 미술의 매력에 풍덩 빠지게 되었다. 이후 스스로 공부하고 아트페어를 찾아다니는 열혈 수집가가 되어버린 것. 갤러리를 방불케 하는 그의 집은 지난해 리노베이션을 마쳤는데, 공사 기간이 4개월이나 걸렸다고 한다. 어반 아일랜드 스튜디오의 방윤태 실장이 인테리어 공사를 진두지휘했다. 고대표가 꿈꾸었던 새로운 집은 시원하고 밝은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여유로움을 담은 공간이었다.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차가운 대리석과 흰 벽에서 탈피하고 싶었습니다. 집이란 가장 마음 편하고 오래 머물고 싶은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창문을 열면 바다가 보일 것만 같은 청량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미국 미술가 알렉스 카츠의 스크린 프린트 5점이 1층으로 내려가는 층계에 설치되어 있다.
햇살 가득한 1층 거실의 고명재 대표. 뒤의 그림 두 점은 심문섭의 유화이고, 왼쪽 테이블과 세라믹 조명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디자인 가구 브랜드 BDDW 제품.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닷가 모래사장 같은 크림빛이 펼쳐지는데, 자연 소재인 라임 플라스터를 사용해 연출했다. 바닥과 벽, 계단, 손잡이도 모두 라임 플라스터로 마감했다. 마치 해변의 집처럼 시원한 공간을 갖고 싶었던 그의 소망이 이루어져 현관에서부터 아름다운 전망이 펼쳐진다. 복층 높이가 느껴지는 현관 입구와 거실 천장에는 루버와 실링팬을 설치해 리조트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바다를 닮은 EDRA의 푸른색 소파는 화룡 점정이다.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미국 미술가 알렉스 카츠의 판화 연작 5점이 걸려 있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미국 미술가 줄리안 오피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1층에는 테라스와 다이닝룸, 거실과 서재, 야외 욕조와 짐 Gym이 있고, 2층에는 두 개의 침실과 수장고, 피아노가 있는 거실이 있다. 어디에나 크고 작은 미술 작품이 걸려 있다는 것도 이 집의 특징이다. “가장 좋아하는 곳은 야외 욕조입니다. 비 오는 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대형 TV로 넷플릭스 한 편을 보는 것이 작은 행복입니다. 노천탕에는 조경 시설도 설치해 사계절을 느낄 수 있어요. 주방에는 기존 아일랜드 식 탁을 철거하고 긴 요리대를 만들었습니다. 철판을 아일랜드에 배치해 여러 요리를 쉽게 할 수 있지요. 대리석 대신 돌 느낌이 나는 세라믹으로 만든 아일랜드가 라임 플라스터 바닥과 조화를 이룹니다.”
야외 욕조에 몸을 담그고 영화 보는 것이 그의 즐거움이다. 조경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공간이다.
1층 게스트 화장실은 초록빛 식물이 가득한 열대우림의 분위기로 연출했다. 오른쪽 작은 그림은 김선우의 작품이다.
주방은 거실과 이어지는 무채색 가구를 배치했고, 천장에는 원목을 시공해 자칫 밋밋할 수 있는 공간에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와인을 즐기는 그이기에 친구들과 이곳에서 자주 모임을 갖는다. 그의 집에는 총 3개의 화장실이 있는데, 각기 다른 컨셉트로 만들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1층 게스트 화장실은 딥 그린 광택 타일과 트로피컬 패턴의 벽지를 사용해 열대우림의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1층 서재 안 욕실은 큰 원형 거울을 중심 으로 한 대칭적인 디자인이 웅장함을 자아낸다. 2층 고 대표 침실의 욕실은 모로코 스타일의 코럴 핑크 컬러 질감이 돋보인다. 바이올렛 컬러의 대리석으로 만든 세면대와 샤워 부스, 아치 형태의 거울이 리조트에 온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두 개의 욕실은 습식 사우나도 갖추어서 매일 운동과 사우나를 즐기는 그로서는 종일 집 밖에 나갈 필요가 없을 정도다. 모든 인테리어는 전체적으로 자연에서 온 소재를 시공해 사용하기 편리한 것은 물론이고 쾌적함이 느껴진다. 식물을 유달리 좋아하는 그는 집 안 곳곳에 화분을 들여놓았다. 1층 테라스에는 프랭키 보이 화분을 설치해 활기찬 분 위기를 돋웠고, 외부 시선도 완벽하게 차단했다. 프랭키 보이는 측백나무 과 상록수로 1년 내내 초록색이라 금상첨화다. 그가 크랭키 보이 화분을 설치하자 이를 따라 한 이웃도 여럿 있을 만큼 멋진 조경이다. 1층 거실에도 실내 정원을 만들어 싱그러움을 부여했다. 햇살이 잘 드는 거실에서 화초를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흐뭇하다.
친구들과 와인 모임을 자주 갖는 그의 주방에는 철판 요리 시설도 구비되어 있다. 왼쪽 그림은 유야 하시주메 Yuya Hashizume의 스크린 프린트.
손님 침실의 입구에는 미국 미술가 캐서린 번하드의 대작이 걸려 있다. 오른쪽 벽에 걸린 이은 작가의 사랑스러운 작품은 각각 3m, 2m가 넘는 대작이다.
“최근 프리즈 서울 아트페어에서 독일 미술가 안드레 부처 작품을 구입했 고, 새롭게 관심을 가진 작가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힐러리 페시스입니다. 안드레 부처의 그림은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며, 힐러리 페시스는 로스앤젤레스의 햇살을 담은 일상 그림으로 연일 솔드아웃을 기록하고 있어요. 언젠가 보다갤러리에서 힐러리 페시스의 전시를 열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는 젊은 컬렉터답게 박서보와 김창열과 같은 진중한 우리나라 작품에서부터 캐서린 번하드와 조나스 우드의 발랄한 그림까지 두루 관심을 가진다.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그는 원래 바닷가 도시를 여행하는 것을 최고의 취미로 꼽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아트바젤, 프리즈와 같이 아트페어가 열리는 도시로 여행을 떠나곤 한다. 이번 겨울에도 아트바젤 마이애미로 견문을 넓히러 갈 예정이다. 디자인 가구에 대한 관심도 나날이 커져 지난봄에도 라노 가구 박람회에 가서 지인들의 가구까지 추천해주었다. 또한 매일 미술에 관한 책 을 열독하고 있다.
2층 거실에는 피아노가 놓여 있다. 핑크색 소파는 리네로제 제품이며, 두 점의 작품은 카마키리코 Kamakiriko의 프린트.
고 대표의 침실 입구에는 칼맨 쉐미 Calman Shemi의 알루미늄 페인팅과 메드사키 Madsak의 프린트가 걸려 있다.
먼저 컬렉션을 시작한 그에게 독자를 위한 조언을 요청했다. “많은 분이 현대미술은 접근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전시나 아트페어에 가다 보면 시선이 유독 길게 머무르는 작품이 있을 것입니다. 투자 가치가 크거나 컬렉터에게 인기가 높은 작품을 구매하기보다 마음의 울림을 주는 작가의 판화부터 수집을 시작하는 것을 권합니다. 판화는 가격 부담이 크지 않기 때문에 초보 컬렉터에게 적합합니다.” 그는 갤러리스트에게 작품을 추천 받기도 하고 직접 아트페어를 다니기도 하지만, 국내 외 거리를 돌아다니다 불쑥 들어간 갤러리에서도 운명처럼 작품을 구입하기도 한다. 현관 위에 걸린 귀여운 핑크색 네온사인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세요 Do What You Want’도 당연히 미술 작품인 줄 알았는데, 고 대표가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하니 흥미롭다. 그는 글귀처럼 원하는 대로 라이프스타일을 재구성했고, 아름다운 집에서 일상을 즐기고 있다. 디자인 가구와 미술 작품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만큼 사업도 더욱 승승장구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좋아하는 작품들을 전시해놓은 2층 공간. 정면의 작품은 캐서린 번하드의 것이며, 오른편의 두 사람을 그린 그림은 콜롬비아 작가 조르지오 셀린 Giorgio Celin의 유화 ‘보고타를 떠나며 Leaving bogota’.
서재에는 대형 스크린과 책, 게임기 등이 있다. 게임기 뒤의 그림은 미국 작가 비벌리 피시맨 Beverly Fishman의 우레탄 페인트.
서재에는 대형 스크린과 책, 게임기 등이 있다. 게임기 뒤의 그림은 미국 작가 비벌리 피시맨 Beverly Fishman의 우레탄 페인트.
서재와 운동하는 공간, 야외 욕조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2층 손님 침실에는 헤르난 바스의 프린트와 아일랜드 화가 메리 로네인 Mary Ronayne의 에나멜 작품이 걸려 있다.
2층 거실에서 바라본 1층 거실의 모습. 동그란 거울과 파란 패브릭 의자, 호두나무 테이블은 모두 BDDW 제품. 야외 테라스의 프랭키 보이 화분이 휴식 같은 집을 연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