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하는 장르와 상관없이 묵묵히 자신만의 붓질을 계속해온 알렉스 카츠의 대규모 회고전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진행 중이다.
어느 때부터였던가 알렉스 카츠라는 낯선 이름이 등장하더니 어느덧 화단의 주요 작가로 자리 잡기 시작했고, 지금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최근 들어 미술 시장에서 카츠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던 것도 바로 이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가 열릴 것임을 미리 알고 컬렉터들이 발 빠르게 움직인 결과다. 작가에 대한 정보 없이 작품만 봐왔던 사람이라면 구겐하임에서 회고전을 열기에는 너무 젊지 않은가 하고 생각할 만큼 현대적인 화풍이 돋보이지만 실은 1927년생으로 세계 최고령 작가 중 한 명이다. 어쩌면 이런 반전 매력이 작가의 팬층을 확장하는 또 다른 요소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1972년, 45세 때 구겐하임 펠로십을 수상한 후 40년 만에 95세가 되어 다시 구겐하임으로 돌아온 작가의 소감은 어떠할지 궁금하기만 하다.
러시아 이민자의 자녀로 뉴욕에서 성장했고 쿠퍼유니온 대학을 졸업한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약 70여 년의 시간 속에서 선별된 150여 점의 작품이 구겐하임 미술관의 빙글빙글 도는 나선형 전시장을 꽉 채웠고, 작가와 인연을 맺은 수많은 사람과 팬들이 몰려 전시장은 그야말로 전시 제목처럼 ‘모임 Gathering’의 자리가 되었다. 특히 전시장 곳곳에 세워놓은 조각은 마치 그림 속의 인물이 나와 전시를 보고 있는 것처럼 흥미로워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다. 카츠가 활동을 시작한 1950~60년대 미술 트렌드는 단연 추상이었고, 1960~70년대 이르러 구상이 주목받게 되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함의를 담거나, 판화의 방식을 차용하는 앤디 워홀과 같은 작가들이 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앤디 워홀(1928~87)은 오직 젊은 모습만 남아 있어 둘은 꽤 나이 차이가 나는 듯 보이지만 실은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도 재미있다.
추상의 시대에는 구상을 그렸고, 팝아트의 시대에는 전통적인 초상화를 그리는 시대착오적인 시간을 70년 동안 견디면서 카츠는 ‘나만 순수회화를 하는데 괜찮을까’ 하는 불안 속에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대신 붓을 잡으며 이왕이면 가장 크고 근사한 그림을 그리겠다는 일념으로 스스로를 단련해왔다. 자신이 추구하려는 세계와 다른 그림을 배척하기보다 그들을 모두 자신의 화풍에 녹이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폴록의 추상화에서는 인상주의로부터 영향 받은 아름다운 빛을 보았고, 세상에 없는 회화를 그리기 위해서 코카콜라나 캘빈클라인과 같은 TV 광고를 열심히 보면서 세계의 이미지를 담고자 했던 시도가 그것이다.
덕분에 그의 작품은 어디에도 없는 독특하고 개성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너무 매력적이라는 평가와 너무 못 그렸다는 극단적인 반응이 오가는 것도 바로 이 개성 때문이리라. 얇은 화면, 얇은 조각은 왠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깊이에의 강요>를 떠올리게 한다. 깊이가 없다는 평론가의 비난에 결국 자살하는 젊은 예술가의 이야기다. 그러나 카츠의 삶은 이와 반대였다. 아침 7시 30분에 300번의 푸시업과 400번의 윗몸일으키기를 하며 주 6일, 매일 6시간 이상, 70년간 그림을 그리며 100살을 앞에 두고 있다. ‘깊이 없어 보이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가장 바로 깊은 깊이라는 증명 혹은 못 그렸다는 세상의 평가에 대해 ‘오히려 좋아!’라고 답하는 쿨함! ‘꾸안꾸’ 시대가 바로 이런 그림을 원하는 것이 아닐까? 구겐하임 미술관에서의 전시는 23년 2월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