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아시아와 아프리카 오브제의 우아한 결합.
1990년도 후반 모로코 탕헤르를 우연히 방문한 가구 디자이너 에르베 반 데어 스트라텐 Hervé Van der Straeten과 슈즈 디자이너 브루노 프리소니 Bruno Frisoni는 미국인 상속녀 바바라 허튼이 소유한 독특한 건물을 소개 받는다. 모로코 전통 생활에 적합하도록 여러 계단과 공간으로 나눠진 재미있는 5층 집은 창문으로는 좁은 골목길로 이뤄진 구시가지 메디나가 한눈에 펼쳐졌고 그 옆으로는 지중해가 보였다. 파리에서 출발해 비행기로 세 시간이 안 걸려 도착하면 유럽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이국적인 동양 문화가 펼쳐진다는 점도 충분히 유혹적이었다. 그렇게 파리지앵 시크의 표본이기도 한 둘은 탕헤르 메디나 중심에 위치한 별장을 마련하기로 결정한다. 디자인 마이애미와 PAD를 통해 하이엔드 가구 컬렉션을 선보이는 디자이너 에르베와 로저 비비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친숙한 브루노. 센 강이 내려다보이는 생루이섬의 17세기 아파트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탕헤르는 파리의 일상을 잊고 새로운 영감을 받기에 완벽한 도피처였다.
“메디나의 아침은 무척 조용해요. 그리고 밤에는 시끄럽죠. 밤마다 파티를 즐기는 우리의 리듬과 정확히 맞아떨어져요. 거기에다 해변이 가깝고 지중해와 대서양의 생선을 모두 만날 수 있는 환상적인 피시 마켓에서는 파리에서는 볼 수 없는 생선이 가득하죠. 어부들이 작은 보트를 타고 나가 낚싯대로 잡은 생선을 사다 요리하고, 앤티크 마켓을 방문하는 재미도 빠질 수 없는 매력이에요.” 지난 20년간 많은 발전과 변화가 있었지만 다행히 메디나 지역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여전히 주민들은 공동 화덕에서 빵을 굽고, 시장에는 직접 직조해 천을 짜는 장인들이 존재한다. 에르베와 브루노는 이런 지역 전통과 문화를 실내 디자인에 적용하고 싶었다. ‘지중해의 순간’으로 테마를 정해 그동안 여행하면서 모은 모로코, 시리아, 레바논, 이탈리아의 오브제를 믹스&매치했고 모로코 전통 패턴이 새겨진 벽과 천장 장식과 아치형의 통로는 그대로 두거나 보수를 통해 최대한 보존하는 방법을 택했다.
특히 아늑한 느낌이 드는 어두운 색상의 방에 사용된 벽 장식과 타일이 인상적인데, 이 중 일부는 직접 책을 보고 공부하면서 디자인한 것이다. 집이 간직한 역사를 존중하고 기존의 오리지널 장식과 완벽하게 어울릴 수 있도록 모로코 전통 패턴과 건축에 관한 책을 구해 연구한 결과다. “집을 아름답게 완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을 즐기는 것 또한 우리에게는 중요했어요. 많은 전통 공예 기술이 옛 이슬람 왕조의 수도였던 페즈 Fez를 중심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숙련된 공예가를 찾아 일부러 페즈를 여러 번 방문해야 했어요. 그곳에서 오래된 멋진 제품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었어요. 게스트룸의 베드 헤드로 사용하는 오래된 나무 패널이 그중 하나예요. 장인들을 수소문해 일을 의뢰하고, 일부는 탕헤르로 직접 모셔와 작업했는데 창문을 짜던 장인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모로코 사람도 아니면서 모로코 건축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냐며. 이처럼 행복한 추억을 간직한 집이에요.” 공간마다 어둠과 밝음으로 대비를 주고 한 층씩 위로 올라갈수록 모던함이 더해지는 것 또한 독특한 공간 전개 방식이다. 흰색 벽의 모던한 공간에는 1930년대 디자인 요소를 찾아볼 수 있는데, 프랑스 식민지였던 시기로 그 당시 유럽 디자인이 이곳에 많이 남아 있게 되면서 일종의 현지 문화의 일부로 자리잡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기하학적 형태가 특징인 에르베의 가구와 조명 또한 퍼즐처럼 맞춰진 흰색 대리석 바닥과 작은 조각으로 틀을 짜 넣은 블랙 프레임이 인상적인 창문과 묘한 동질감을 주고받으면서 공간에 활력을 선사한다. 디자이너인 에르베와 브루노는 각자 자신 있는 분야에 맞게 가구와 하드웨어 그리고 패브릭으로 나눠 작업을 진행했다. 에르베는 대리석 커팅이 어려웠던 옛날 스페인 세비야 지역에서 흰색 타일의 가장 큰 조각을 방의 중앙에 놓고 나머지 조각들로 주변을 채우던 직소퍼즐 방식을 보고 영감을 얻어 건물 바닥을 완성하는 창의력을 발휘했다. 한편 브루노는 베드 커버부터 커튼까지 탕헤르의 직조 장인들을 찾아가 원하는 디자인대로 제작을 의뢰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독특한 폼폼 장식의 베드 커버도 아름답지만 특히 그가 선택한 거실의 블루 커튼은 노란색 가구와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파리에서는 어려울 수 있는 블루와 옐로의 조합이 이곳에서 잘 어울리는 이유는 강렬한 태양 덕분일 거예요. 뜨거운 여름날 메디나에 나가면 색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이곳의 겨울은 생각보다 습하고 쌀쌀하답니다. 그럴 때는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붉은색이 칠해진 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요.” 공간을 디자인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편안함 속에서 기분 좋은 서프라이즈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에르베의 말에서 따뜻한 벽난로와 블루 커튼의 시각적 즐거움이 배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건물이 지닌 역사와 지역 문화를 고려해 주변 환경과 동떨어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지중해 문화에 대한 애정으로 완성된 별장으로 인해 파리에서 시간 여행을 하기 가장 적합한 도시인 탕헤르는 점점 두 파리지앵의 삶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