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전통을 고스란히 보존한 채 잠들어 있던 15세기의 궁전이 현대건축가의 손길로 새롭게 태어났다.
마치 르네상스 시대의 귀족이 된 듯한 기분마저 들게 하는 피렌체의 저택으로 초대한다.
도심 중앙을 가로지르는 아르노 강과 그 위에 놓인 아름다운 베키오 다리가 인상적인 낭만의 도시 이탈리아 피렌체에 고대의 역사가 되살아난 아파트가 등장했다. 아르노 강의 남부 지역인 올트라르노에 위치한 240㎡의 이 아파트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벽화 기법인 프레스코의 흔적으로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오랜 시간 방치되어 존재감마저 희미해져가는 이 15세기 궁전에 새 삶을 부여한 이는 바로 피렌체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건축회사 피에라텔리 아키텍처 Pierattelli Architecture다.
“올트라르노 지역의 좁은 거리에는 작은 상점과 바, 부티크, 비스트로, 레스토랑 등이 즐비해 있어요. 특히 해 질 녘 아르노 강을 비추는 황금빛 석양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도 손꼽히죠.” 피에라텔리 아키텍처는 위치의 특성과 건물이 품고 있는 정체성을 반영하는 동시에 기능과 디자인을 살린 현대적 감각을 결합하기 위해 과감하게 스타일 변경을 감행했다. 따뜻하고 대담한 색상을 중점으로 대리석과 가죽, 원목 등의 다양한 소재를 활용했으며 집주인의 생활 동선 과 취향을 고려한 맞춤형 가구도 제작했다.
이 집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천장의 프레스코 벽화는 오랜 역사를 증명하듯 현대 가구와 멋스럽게 어우러졌으며, 곳곳에 놓인 예술 작품이 이 집의 가치를 한껏 끌어올렸다. 이 집은 높은 천고로 채광을 확보한 넓은 거실과 다이닝을 겸하는 주방 그리고 두 가지 타입의 침실로 구성된다.
“거실의 가장 큰 특징은 거대한 곡선형의 패널이에요. 리모델링 과정에서 거실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 새롭게 제작한 거예요. 갈빗대 모양의 오크나무에 황동 소재로 하단 부분을 마감해 견고하며 구조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어요. 그 맞은편으로는 부드러운 곡선이 강조된 폴트로나 프라우의 아치볼드 안락의자를 서로 마주보게 배치했어요. 곡선이라는 통일된 주제로 마치 공간 속에서 대화가 이뤄지는 듯한 효과를 낸 거죠.” 피에라텔리 아키텍처의 건축가가 거실의 숨은 디테일에 대해 설명했다.
사실 이 집의 백미는 주방이다.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모습을 한 두 개의 거실 통로로 이어지는 주방은 고가의 가구 쇼룸을 방불케 하는 유명 디자이너의 가구가 대거 집합되어 있다. 에로 사리넨이 디자인한 타원형의 대리석 식탁과 워렌 플랜트너의 다이닝 체어, 마르셀 반더스의 금색 펜던트 조명 그리고 공간 속 액세서리처럼 존재하는 마이클 아나스타시아데스의 조명이 고급스러운 무드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뉜 침실은 기능적인 편리함을 한껏 강조했다. 하나는 집주인을 위한 프라이빗한 침실로, 다른 하나는 게스트 침실로 나뉘는데 두 곳 모두 피에라텔리 아키텍처가 직접 설계한 카날레토 호두 원목 소재의 헤드보드를 특징으로 한다. 이는 헤드보드 뒤편으로 옷장과 수납공간을 마련해 시각적 어지러움에서 벗어나 취침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구상한 아이디어다. 또 거실과 주방에 이어 침실까지 이어지는 붉은색의 토스카나 테라코타 바닥이 침실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현재로서는 흉내 낼 수도 없는 15세기 건축양식의 특징을 고스란히 살려 영민한 구조 변경을 이뤄낸 이 집은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아름다움을 여실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