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된 코드를 가진 클라이언트와 전문가가 만나 완전한 협화음을 만들어냈다.
JTK 랩 강정태 소장이 18년 된 때 묻은 집에 부린 마법 같은 변신.
간혹 한눈에 반할 정도로 멋진 집을 만나곤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머물며 샅샅이 그 속내를 들여보다보면 숨은 허점이 보이기 시작하는 집이 더러 있다. 설렘을 가득 품고 들어섰지만 되레 아쉬움으로 바뀌어 현관문을 나설 때면 공간 역시 보이는 게 다가 아니구나 싶다. 번지르르한 겉과 달리 실속 없는 집과는 결코 견줄 수 없는 내실이 탄탄한 집을 만났다. 기본기부터 다진 모범생처럼 말이다. 오랜 노하우와 실력을 바탕으로 이유 있는 고집을 부리는 JTK 랩 강정태 소장의 손길이 닿았기 때문이다. 굳이 여러 말 하지 않아도, 그의 능력을 단번에 알아봐준 클라이언트의 안목이 있었기에 18년 동안 살아온 집을 리노베이션하는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 “오디오 청음회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소장님께서 시공한 지인분의 집에 함께 놀러 갔는데, 아파트인데도 불구하고 천장 라인이 매우 독특했어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어 저희 집 리노베이션을 부탁했죠.” 집주인 박용석 씨가 입을 열었다. 사실 그는 현재 은퇴해 그저 음향 애호가일뿐이라며 자신을 담백하게 소개했지만, 20년 넘게 음향 디자이너로 일해온 전문가다. 그의 아내 박성희 씨는 1세대 여성 음향 엔지니어 출신.
“취향이 워낙 섬세하고 확고했어요. 피규어부터 책, 음악 CD 등 컬렉션도 정말 많았고요. 밀도가 굉장히 높은 상태라 정리가 필요했어요. 설득하는 부분을 빠르게 캐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저와 코드가 굉장히 잘 맞는 클라이언트라서 수월하게 작업했던 것 같습니다.” 강정태 소장이 말했다. 두 부부와 장성한 큰딸과 아들이 함께 살고 있는 이 집에는 18년간의 추억과 가족의 역사가 담겨 있다. 마침 군대 간 아들이 집에 없기도 했고, 코로나19로 인해 인테리어 공사에 관심이 생겼던 차에 아주 평범한 한국식 아파트에서 벗어나보고자 리모델링을 결심했다. 158m² 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넓은 개방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고, 천장 구조에 변화를 줬기 때문이다. 겉으로 튀어나오거나 시각적으로 거슬리는 요소 하나 없는 모습.
“제가 에어컨 카세트를 싫어하거든요. 매립형 에어컨이라고 보통 백화점 같은 상업 공간에서 많이 적용돼요. 겉으로는 에어컨 그릴밖에 보이지 않은 형태인데, 저게 바로 에어컨 겸 환기 시스템이에요. 이렇게 시공하려면 천장이 조금 낮아질 수밖에 없어요. 박공을 하면서 낮은 부분에 배관을 심고 올릴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끌어올렸어요. 그리고 간접조명으로 라인을 형성해 샹들리에 없이도 은은하게 불을 밝힐 수 있어요.” 강정태 소장이 설명했다. 자세히 보면 말끔하게 정리된 천장만큼이나 바닥과 벽, 책장의 끝 부분 등이 시각적 막힘 없이 쭉 뻗어 있는 디테일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시선의 연결성을 주기 위한 장치다. 바닥재와 동일한 소재로 천장에 포인트를 주고, 각 방의 침대 헤드보드로도 적용했다. 또 사람의 시선은 늘 끝을 향하게 되어 있기에 직선이 맞물리는 모든 부분에 약간의 틈을 뒀다.
“우리의 시선은 물건을 따라가게 돼요. 종종 디자인을 편하게 하거나 시공의 어려움을 덜어내기 위해 끝 부분을 딱 잘라버려요. 그럼 공간이 더 좁아보이죠. 이 연결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시공 능력이 뒷받침 되어야만 해요. 하지만 그것이 실행되었을 때 우리가 느끼는 쾌감은 끝내주죠.” 강 소장이 설명했다. 본격적인 속 채우기 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완벽한 틀을 만들었다면, 이제 수집가의 취향 가득한 물건의 제자리를 찾아줘야 할 차례였다. 거실의 소파 벽면 가득 책장을 짜넣은 것도 모자라 방문이 열리는 뒷공간의 아주 작은 틈새까지도 소품을 진열할 자리를 만들었다. 컬렉터의 로망과 정리를 동시에 해결한 것.
이 집의 백미는 무엇보다 청음실일 터. 오디오에 문외한이 봐도 으리으리해 보이는 오디오 시스템과 빼곡히 진열된 LP와 CD까지. 강 소장 역시 오디오 애호가이기 때문에 더욱 심혈을 기울인 오디오룸의 탄생 스토리가 궁금했다. “이곳이야말로 우리끼리 소통한 공간이죠(웃음). 항상 농담으로 하는 말이 ‘오디오 업그레이드의 끝은 오디오룸’이라고 이야기해요. 실제 오디오룸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요.” 강 소장과 박용석 씨가 운을 뗐다. 이왕 마음먹고 만들기로 시작한 청음실인 만큼 완벽한 시설을 갖추기 위해 많은 부분을 신경 썼다. 시중에 나온 음향 패널 중 디자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제품이 없어 직접 합판을 깎아 가공해서 만들었다. 문짝과 벽면을 패널로 감쌌고 음향의 질을 좌우하는 전기를 분리해 소음을 방지했다. 아파트라 사방에 흡음재를 시공했고, 무드를 위해 조도 조절이 가능한 조명을 달았다. 창밖으로 꽉 찬 매봉산 뷰를 가진 장점 또한 극대화하기 위해 통창을 달았다. 그 덕에 음악을 들으며 사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게 됐다. 물론 아내를 위한 공간도 존재한다. 베란다와 제2의 주방이 위치했던 곳의 구조를 허물어 차를 마시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주방의 기능은 유지하되, 단차를 두어 매봉산 뷰를 품은 차실을 마련한 것. 자투리 공간을 살려 세탁실까지 만드는 세심함도 엿볼 수 있었다. “사실 집을 고치기 전에는 이 산이 장점으로 다가오지 않았어요. 그저 한숨을 쉬는 산이었달까요(웃음). 그런데 지금은 너무 행복해요. 제게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었어요.” 아내 박성희 씨가 만족감을 내비쳤다. 잘 집은 집, 좋은 집의 의미는 얼마만큼 집을 제대로 활용하고 유지하며 살고 있는지에 따른다. 더욱 윤택한 삶을 선물하고자 한 전문가의 의도와 집주인의 확고한 취향이 담긴 집이야말로 10년, 20년을 살아도 질리지 않는 진정 좋은 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