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배를 타고 항해하는 평생의 동반자인 건축가 이병엽과 안무가 차진엽 부부의 한남동 신혼집을 찾았다.
지난 7월 초, 성수동 코사이어티 서울숲에서 조금은 특별한 전시가 열렸다. 건축사무소 바이아키텍쳐 소장 이병엽과 창작그룹 콜렉티브A 대표이자 예술 감독인 차진엽의 결혼식, <YEOBYEOB 결혼:전>이다. 이틀간 사진과 영상, 무용 등을 포함한 전시 형태로 풀어낸 이들의 전례 없는 결혼식은 우리에게 익숙했던 보편적 틀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고, 그 자체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4년 반의 연애 끝에 마련한 두 사람의 보금자리는 용산구와 중구, 성동구를 사이 좋게 면한 북한남에 자리한다. 지리적 위치는 한남동이지만 매봉산으로 둘러싸여 조용한데다 남산, 서울숲까지 산책로가 있어 자연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제게 중요한 것은 공간감이었어요. 일반 빌라나 아파트에서 보기 어려운 층고나 구조를 찾기 위해 한옥도 많이 봤었는데, 때 마침 발견한 곳이 이 집이었어요. 박공 형태의 천장과 독특한 분위기의 몰딩, 작은 다락방이 있는 복층 구조가 재미있더라고요. 조금만 손보면 되겠다 싶었죠.” 2010년부터 취향관을 비롯한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온 이병엽 씨가 말했다. 열흘간 직접 진행한 공사는 두 사람이 생각하는 집의 모습을 다시금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새하얀 집보다는 톤 다운된 컬러와 소재로 의견이 맞춰졌다. 벽은 모래 알갱이가 들어 있는 페인트로 뿜칠 도장을 해 거칠거칠한 질감과 음영을 더하고, 어두운 바닥에 햇빛이 반사되며 만들어내는 그러데이션이 좋아 상업 공간에서 주로 사용하는 데코 타일을 바닥에 깔았다. 안방과 주방에 창을 새로 달고, 가려져 있던 자연을 집 안으로 성큼 들였다. 주방에는 늘 꿈꿔온 스테인리스 아일랜드를 배치했다. 이케아에서 벽장용으로 나와 있는 소재를 직접 자르고 조립해 완성에만 한 달이 걸렸다. 타일 가게에서 함께 고른 대리석 타일을 벽에 두르자 남산을 향해 난 창 너머의 자연이 더욱 선명해지며 생동감이 생겼다. 목욕을 즐기는 두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안방에 있던 작은 화장실은 변기와 세면대를 모두 들어내고, 큰 욕조를 배치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면, 손님용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문도 없다는 것이다.
“제가 유학 시절부터 20년 가까이 혼자 살았는데, 집 안에 있는 문을 항상 다 떼고 살아왔어요. 참 신기하게도 네 가족이 함께 살았던 병엽씨도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대신 창문을 결정할 때는 논의가 좀 팽팽했는데요(웃음). 저는 문이 활짝 열리는 창을 원했고, 병엽 씨는 픽스창으로 해야 오히려 자연을 더 잘 감상할 수 있다고 주장했죠. 결국 타협점으로 주방과 안방에 각각 원하는 창으로 시공했어요.”
5톤 트럭 한가득 싣고 온 아내의 짐과 옷가지에 불과했던 남편의 여백이 만나 새로운 모습의 집이 만들어졌다. “병엽 씨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각자의 영역에서 시각적인 것을 중시하고 디테일하게 다루는 사람들이라 집만큼은 그것을 최우선 목적으로 두진 않았어요. 톤앤매너나 요소가 제각각이더라도 결국 우리의 감각으로 택한 것들이기 때문에 조화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트렌드나 취향보다는 오히려 집을 완성해 나가는 태도나 소통하는 방식과 자세가 중요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거울을 창 반대쪽에 배치하면 일어났을 때 거울을 통해 반사된 자연이 잘 보이겠다, 세로가 좋을까, 가로가 좋을까 이런 식인 거죠. 아직도 그런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 있어요.”
집 안에 놓인 가구의 출처는 모두 제각각이다. 차진엽 씨가 당근마켓에서 어렵게 구한 마르니 한정판 문 워크 Moon Walk 체어부터 공연에 썼던 미러볼 소품, 지인 홍지연 작가가 선물한 거울, 이병엽 씨가 빈티지숍에서 구입한 건축가 아놀드 멕스 Anold Merckx의 테이블과 의자, 취향관 철거 당시 뜯어온 문짝으로 만든 책 선반 등 저마다의 사연과 의미가 짙게 담겨 있다. 지금은 결혼전을 끝마치고 돌아온 가구와 지인들에게 선물 받은 소품이 하나, 둘 자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결혼전도, 집도 겉보기에만 멋있어 보이려는 형식을 경계했어요. 잘 모르시는 분들이 보면 일부러 특이하게 했다고 오해할 수도 있는데요, 오신 분들에게 결혼과 사랑, 관계에 대한 고민과 고찰이 잘 전해졌다는 피드백을 참 많이 받았어요. 집도 마찬가지예요. 시각보다는 시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의미와 의식, 가치를 담아내는 공간이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