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수영장이 있다면? 상상이 현실이 된 건축가 부부의 실험적인 세컨하우스.
경기도 포천으로 가는 길. 빼곡했던 도심의 빌딩이 하나둘 걷히니, 새삼 뭉글한 구름 모양에 눈길이 갔다. 부부의 세컨하우스를 방문했던 날은 여름의 절정인 듯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바람이 살랑 불어 이마의 땀을 닦아준다. 왠지 모를 산뜻한 설렘을 안고 초인종을 눌렀다.
약 1200㎡평 정도 되는 대지에는 같은 모양으로 지은 건물 두 채와 잘 가꿔진 정원이 있다. 이 건물들은 1990년대 지어 지난 30여 년간 음식점과 펜션으로 영업하던 곳이다. 하지만 최근 지역 경제가 침체되며 상권이 예전 같지 않아졌고, 장기간 쓰임 없이 비워져 있었다. 최장원, 손명민 부부가 이곳에 온기를 불어넣기로 결정한 배경엔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과 사랑 때문이었다.
“30년 넘게 애정으로 가꾸시던 곳이었어요. 연세가 드시고 건강도 쇠약해지셔서 이곳에 대한 안타까움만 갖고 계셨죠. 저희도 가끔 와서 일손을 돕긴 했지만 정원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없어 아버지만큼 아름답게 관리할 자신이 없었어요.”
오랜 기간 방치된 대지와 건물 그리고 아버지가 가꾸시던 정원까지 부부는 건축가답게 공간을 통해 직면한 문제를 풀어갔다. 먼저 비어 있던 두 건물을 주택과 건축사무소로 만들기로 했다. 부부가 건축가이기에 자연스레 두 건물을 신축하기로 방향을 잡았지만 실행이 쉽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공간의 목적이 변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지에 대한 저희만의 경험이 쌓이지 않은 이유도 있어요. 결론은 리노베이션하기로 했죠. 10년 정도 지내보며 대지에 대한 노하우를 쌓은 뒤 신축을 고민하기로 했습니다.”
“딸에게 삶을 오프 Off할 수 있는 훈련을 시켜주고 싶어요. 본인이 하는 일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며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점차 학업 또는 그 외의 여러 가지 일로 스트레스받을 수 있잖아요. 이곳을 서울의 집과는 완전히 반대의 공간으로 만들어 주중과 주말의 생활을 전환할 수 있는 연습을 함께 해보려고요.”
공간에 목적을 부여하니 그 후의 일은 물 흐르듯 순탄했다. 집은 한 공간이 다양한 목적을 수반해야 하는 다목적 공간이 돼야 할 때가 일반적이지만 이곳은 달랐다. 서울 집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되, 한 가지 기능을 지닌 담백한 공간으로 설계의 방향을 잡았다. “철거하니 공간이 꽤 넓고, 층고도 높았어요.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죠. 지내보며 필요한 것을 추가하거나 바꿀 수 있게 공간에 여지를 남겨뒀습니다. 자재를 최소한으로 사용한 것도, 개인 공간과 공용 공간의 출입문을 각각 둔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세컨하우스는 대칭을 이루는 외형으로 공간을 반으로 나눠 한쪽은 침실, 욕실, 놀이방 등이 있는 개인 공간으로, 나머지 반은 가족이나 지인이 모일 수 있는 주방, 거실이 있는 공용 공간으로 나뉜다. 두 공간은 수납과 문을 겸하는 흰 벽이 말끔하게 자리하며 임무를 수행한다. 개인 공간의 놀이방과 이어진 다락방은 딸의 아이디어다. “지금은 장난감들로 가득하지만, 딸이 크면 다른 물건들이 채워지겠죠? 다락방은 딸이 혼자서 사부작사부작 열중하는 공간인 것 같아요. 그래서 거실 쪽으로 작은 창을 냈어요. 딸의 개인 시간은 존중하되, 아직 어리니 어느 공간에 있는지는 체크해야 하니까요(웃음).” 부부의 설명을 들으니 거실의 반을 차지하는 거대한 실내 수영장, 정사각의 다이닝 테이블, 툭 놓인 선베드 등의 배치가 각각의 이유와 이야기를 갖는다.
“책을 보다 문득 수영할 수 있는 공간을 상상했어요. 일반 집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이잖아요. 아늑한 분위기를 위해 바닥은 마루를 깔았고요. 관리 차원에서 모두가 마루 시공을 말렸지만, 쓰임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이 집의 역할이 단순하고 명확했기에 밀어 부쳤죠.”
건축농장 건축사무소를 운영 중인 남편 최장원 소장은 이곳의 단장을 마치며 기존 약수동 사무실을 정리하고 포천으로 출퇴근 중이다. 화이트와 나무가 주를 이루는 세컨하우스와는 반대로 사무소는 블랙을 과감하게 활용했다. 단 업무를 보는 오피스 공간은 천장을 만들고 나무로 마감해 아늑하게 연출했다. 전시 공간은 박공지붕을 그대로 노출해 답답함을 덜었는데, 덕분에 곳곳에 전시된 그간의 설치 작업과 건축 모형이 더욱 돋보였다.
부부는 요즘 대지와 공간을 바탕으로 실현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공간의 목적을 정하고 구현하기까지 5년의 시간이 걸렸기에, 아이디어의 실행 또한 쫓기듯 서두르지 않는다. 불쑥 떠오르는 생각을 서로 나누고 조율하는 과정이 일상인 듯 자연스럽다.
“짧은 기간 안에 이루려는 계획은 없어요. 일단 1년을 지냈지만 아직 이곳이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요. 시도하고 싶은 아이디어 중 하나는 지인들이 저희 집을 방문할 때 자신이 좋아하는 꽃이나 나무를 가져와 심는 거예요. 본인이 원하는 자리예요. 식물들의 위치를 점으로 찍어 보물지도처럼 만들고 싶어요. 꽃이나 나무, 장소와 사람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지는 거죠. 건축가 필립 존슨처럼 대지에 여러 가지 작고 실험적인 건축도 하고 싶고요. 아내는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작가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개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해요. 테니스장을 짓자고 장난으로 말하기도 하고요.”
삶의 온 On, 오프 Off를 공간을 통해 시도하고 실천하는 부부의 세컨하우스와 건축사무소. 건물의 단장을 마쳤으니, 자연스레 이들의 관심사는 아버지가 가꾸시던 정원으로 향한 듯하다. 과거의 5년이 그랬듯, 의견을 나누는 부부의 모습을 보며 5년 후, 이곳의 정원이 달라질 모습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