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루 중심에 있는 마티유 르아뇌르의 유토피아.
단기 체류용의 임시 거처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피에-아-테르 Pied-à-terre’. 프랑스 디자이너 마티유 르아뇌르 Mathieu Lehanneur는 최근 뉴욕에 마련한 아파트를 칭하는 단어로 별장이나 쇼룸 대신 피에-아-테르를 선택했다. ‘땅 위의 발 Foot on the Ground’을 뜻하는 이 단어는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편하게 발을 내딛을 수 있는 도심 속 제2의 집을 말한다. 비록 그가 거주하고 있는 파리에서 여덟 시간 동안 비행기로 이동해야 닿을 수 있을 만큼 물리적으로는 가깝지 않은 거리지만, 뉴욕의 중심인 미드타운 맨해튼에 세워진 63층의 주거용 타워 셀렌 뉴욕의 58층 전체를 사용하는 아파트라면 그 정도 수고는 할 만하다.
노먼 포스터가 이끄는 포스터+파트너스에서 설계했고 AD100에 선정된 디자이너 윌리엄 T 조지스가 인테리어를 담당한 셀렌 뉴욕은 2022년 론칭할 당시부터 맨해튼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웰빙과 사교를 위한 편의시설이 제공되는 최고급 레지던스 빌딩으로 알려진 이곳의 주거용 공간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통유리가 특징이다. 그런 이유로 58층에 위치한 마티유 르아뇌르의 피에-아-테르는 들어가는 순간 도시와 하늘의 탁 트인 전망과 함께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전에 아파트 형식의 쇼룸을 이스트 빌리지에서 운영했어요. 클라이언트가 일부러 찾아와야 하는 목적을 가진 장소이다 보니 누구에게나 접근성이 좋은 맨해튼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싶었고, 기왕이면 높은 층의 펜트하우스 그리고 건축과 디자인, 시공과 마감이 완벽한 건물에 입주하고 싶었죠. 여러 곳을 방문했는데 노먼 포스터가 디자인한 셀렌 뉴욕은 파사드에서부터 건축적 디테일이 완벽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뉴욕에서 보기 드물게 바닥이나 욕실 자재 등 나무랄 곳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바로 입주를 결정했죠.”
마티유 르아뇌르는 <월페이퍼>가 선정한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100명의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실내 건축부터 가구, 접이식 자전거, 하이브리드 모터보트까지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2024년 파리 올림픽 성화봉과 성화대 디자인을 맡으면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보다 많은 국제적 주목이 예상된다. 디자인에 대한 다학제적 접근 방식을 가진 그의 가구는 세련된 디자인과 기술적 감각이 더해진 우수성, 거기에 장인 정신까지 갖춘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뉴욕에 피에-아-테르를 마련한 이유는 이런 가구들의 특징을 가장 잘 살리고 홍보할 수 있는 환경이 이곳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 층을 전부 사용하는 2,200㎡, 약 665평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가구는 모두 다른 재료를 사용한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지만 함께 어우러지며 멋진 다이얼로그를 형성한다.
“디자인할 때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요. 하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1차원적인 일관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떤 작품은 미니멀하고 어떤 작품은 유기적이거나 화려한 모습을 하기도 하죠. 이처럼 각기 다른 작품이 함께 할 때 어우러지는 조화가 제 디자인의 일관성이에요. 여기에 있는 모든 제품 간에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확인하고 실제로 공간에서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거실에는 편안한 패밀리스케이프 Familyscape 소파와 중력의 원칙을 거스른 인버티드 그래비티 Inverted Gravity 컬렉션, 처음으로 캐시미어 버전으로 탄생한 엘리펀트 Elephant 암체어까지 상징적인 제품이 함께 놓여 있다. 탁 트인 하늘과 마천루의 배경은 공중에 떠 있는 섬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실제로 디자이너는 뉴욕에 사는 가상의 컬렉터를 상상하며 공간을 디자인했다고 한다. 가상의 수집가가 그의 제품을 전부 수집해 하늘에 떠 있는 섬에 전시한다는 동화 같은 상상을 통해 말이다. 미국에서 두터운 클라이언트 층을 보유하게 되면서 파리와 뉴욕을 자주 오가며 활동하게 된 마티유 르아뇌르는 갤러리에 소속되지 않고 앞으로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화해 독립적으로 활동하겠다는 포부를 알렸다.
“뮤지션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대형 소속사에 속하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음악을 선보이는 뚝심 있는 아티스트처럼 나만의 길을 걷고 싶어요. 실패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가 선택한 길이니 괜찮아요.” 쿨하게 대답했지만 이미 전 세계 클라이언트 리스트를 가진 스타 디자이너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최근 팩토리라는 이름의 대형 사무실 겸 쇼룸을 파리 외곽에 마련해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의 스케치부터 제작, 발주까지 약 열한 명의 직원으로 이뤄진 팀이 업무를 책임지며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마티유가 그의 작품을 접하는 고객들로부터 가장 듣기 좋아하는 단어는 매직이다. 디자인을 매개로 영적인 교감이 가능하다고 믿는 그는 비합리적 아이디어에 약간의 위트를 담아 합리적으로 구현한 특유한 작품이 대중에게 마법과도 같은 감정을 전달하길 바란다. 예를 들어, 파도치는 모습을 한 오션 메모리스 Ocean Memories 테이블로부터 바다가 간직한 에너지를 전달받거나 인버티드 그래비티 컬렉션을 통해 가볍고 투명한 유리가 무거운 대리석을 지탱할 수도 있다는 재미있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마법을 느끼게 하는 가구로 채워진 이곳은 예약한 고객들에 한해 방문이 가능하다. 친밀함과 화려함, 중후함과 가벼움, 세련됨과 편안함이 결합된 가장 현대적인 뉴욕적 삶의 방식을 특유의 위트가 담긴 우아한 디자인 작품을 통해 경험하고 싶다면 마티유 르아뇌르의 피에-아-테르가 좋은 목적지가 될 것이다.
WEB www.mathieulehanneur.com
INSTAGRAM @mathieulehanne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