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빈티지 디자인 가구로 프랑스 가구 브랜드 로쉐 보보아 제품이 많습니다. 식탁 위에는 한국 작가 일란의 ‘일월오봉도’가 걸려 있고, 독일 에센에서 작업하는 도예가 이영재의 그릇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처음 파리에 올 때 고가구를 여러 개 가지고 왔을 만큼 우리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이 어린 시절부터 컸어요.”
거실과 침실 등 모든 공간의 벽에 붙박이장을 만들어 수납을 최대화하는 것에 집중했다. 지금 리빙룸과 다이닝룸의 컬렉션 전시 테마는 ‘그린’ 컬러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컬렉션을 교체하는 것도 그녀의 즐거움이다. 소장하고 있는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헝가리 작가 베러 몰너르 Vera Molnar의 것이다. 베러 몰너르는 이수경 작가와 함께 갤러리 오니리스의 전속으로 활동하는 99세의 여성 거장인데, 예술 작품에 최초로 컴퓨터를 사용한 미술가로 유명하다. 단순해 보이지만 기념비적인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는 핀란드 사진 작가 산나 카니스토 Sanna Kannisto의 작품을 소장했다. 국립공원에 천막을 치고 하얀 배경에서 미장센을 만들어 새를 촬영하는 작가의 열정에 반했다. 그녀가 컬렉션하는 이유는 투자 가치와는 상관없이 작가의 작품에 매혹되었기 때문인데, 이 작가가 편애하는 작품들과 그녀의 작품 세계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어 흥미롭다. 이수경 작가는 불문학을 전공하고 대사관에서 근무하다 30세가 넘어 미술을 시작한 특별한 이력이 있다. 그녀는 대학원에 재학할 당시 첫 조교 월급으로 인사동에서 강아지 그림을 컬렉션했을 정도로 미술에 관심이 컸다. 이 그림은 파리 아파트 현관에 여전히 걸려 있어,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두 번째 소장 작품은 지금은 없어진 화랑에서 구입한 장욱진 화백의 판화다.
파리에서 작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회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회화는 미적인 것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개인이 바라보는 시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받는 영향과 동시대가 가지고 있는 현상에 민감하면서도 지극히 개인적 방법으로 직관적 표현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내가 추구하는 회화에는 문화적이거나 집단적인 상념이 들어 있진 않아요.”
공간이 바뀔 때마다 느끼는 감각이 다르기 때문에 도시와 환경을 바꾸어 작업하는 것을 선호한다. 파리 작업실에서의 작품 활동이 중심이고, 브뤼셀과 서울에서는 1년에 3개월 정도 머문다. 프랑스와 벨기에는 왕복 일곱 시간이 걸리지만, 같은 유럽이고 불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비슷한 점도 많다.
“유럽에서는 전시를 보는 관람객들이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있으면 물어보기도 하고 대화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간혹 유럽 사람들이 내 작품의 색감이 한국적 감성이라고 이야기하는데, 한국에서는 상당히 유럽적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흥미로워요(웃음).”
그녀는 초기부터 추상 작업을 했다. 이는 지엽적이고 문화적인 굴레를 벗어나 일반적인 코드를 버린 자유로운 시각을 요구하는 추상의 본질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개념이나 선험적으로 계획한 것을 만들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이해를 통해 천천히 화폭에 행위가 쌓이고 지워지고 반복되면서 하나하나의 형태가 드러난다. 이런 행위는 오랜 기다림을 통해 나오며, 익숙한 제스처의 반복이 아니라 한순간의 직감으로 나오는 흔적들이다. 또한 관찰하며 변형시키는 행위에 또 다른 행위가 겹쳐지면서 예상치 않은 형태가 생성되기 시작한다. 그녀가 근래에 선보인 작업은 1000개의 ‘문패’ 연작이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대문 앞 문패를 오랜만에 서울에서 다시 보니, 문패에 이름이 새겨진 세대주가 아니라 문패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형상화하고 싶었던 것.
“문패의 조형적 특성은 유럽 가문의 문장과 기호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DNA의 변형처럼 같은 규격 안에서 다양한 드로잉과 색이 조합을 이뤄요. 나무 위에 그리고, 오려내고, 칠하고, 붙이는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문패’ 연작이 하나의 부조 작품처럼 보이지만, 나는 이 작품이 회화의 연장선에 있다고 봅니다.” 오는 11월에는 판교 운중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열리며, 내년에는 부산 어라운드 갤러리에서의 전시가 예정되어 있으니 그녀를 다시 한국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