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내는 집
화이트 큐브처럼 비워낸 집에 휴식을 담은 박광호, 변혜현 부부의 두 번째 보금자리를 찾았다.
철거가 어려운 주방 벽은 마치 프레임처럼 구성했다. 티타임을 위한 커피 캐비닛을 만들고, 천장에는 찻잔을 둘 수 있는 붙박이 선반을 달아 다이닝과 주방을 자연스레 구분했다. 새하얀 벽과 대비되는 짙은 우드 톤으로 마감해 시선을 사로잡는데, 그래서 더욱 복잡하지 않도록 심플한 주방으로 구성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이지만 2인 가족에 꼭 맞는 콤팩트한 주방이 깔끔한 부부의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침실 역시 구조적인 한계를 활용해 다른 집과는 다른 특별함을 담았다. 서비스 면적인 베란다를 확장해 침실로 만든 것. 레스토랑 업무를 늦게 끝낸 부부가 집에 돌아와 잠만 자는 공간이기 때문에, 침대 하나와 허먼 밀러의 캐비닛만 놓아 아늑하게 꾸몄다. 덕분에 침대와 마주 보는 창문 너머로 커다란 나무가 드리운다. 침실로 이어지는 전실은 남편을 위한 드레스룸으로 꾸몄다. 옷을 워낙 좋아해 사계절 옷을 보관하기에는 부족했던 수납공간. 옷을 보관하는 드레스룸은 현관 앞에 따로 마련하고, ‘옷을 즐길 수 있는’ 쇼룸 같은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붙박이장 앞으로 액세서리를 정리한 아일랜드형 가구를 두었고, 텍타의 자전거 걸이를 행어처럼 활용했다. 덕분에 드레스룸이 두 개인 독특한 집이 만들어졌다.
보통의 집이라면 안방으로 두었을 위치에는 아내의 서재를 마련했다. 업무를 보는 공간이면서 집에 귀가해 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각자의 공간을 마련한 것. “집에 돌아오면 남편은 거실의 소파에, 저는 서재의 마라룽가에 앉아 각자의 시간을 보내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보내는 시간이 부부에게도 필요한 것 같아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역시 서재에 평온히 앉아 기도하는 순간이다. “도쿄 여행 중에 편집숍에서 구매한 비치타월이에요. 마라룽가 소파와 색깔이 잘 어울려 바닥에 깔아두었어요. 최근에는 타월 위에 앉아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곤 해요. 물론 저보다 알렉산더가 더 좋아하는 것 같긴 해요(웃음).” 밋밋하게 보였던 새하얀 집은 알고 보면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며 구석구석 꽉 채운 것. 집에서 온전한 휴식을 만끽하고 바쁜 일상을 그려나갈 부부의 앞날을 응원하고 싶다.
결혼 15년 차 부부이지만 이사는 처음이다. 오래 머물렀던 첫 번째 신혼집을 떠나 두 번째 보금자리를 마련한 박광호, 변혜현 씨는 갤러리처럼 새하얀 집을 만들고 싶었다. 한남동의 라샌독오스테리아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니 집에서만큼은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싶었던 부부.
“매일 집을 보며 어떤 걸 뺄지 고민해요(웃음). 밖에서는 워낙 복잡하고 바쁜 하루를 보내기 때문에 깔끔하고 새하얀 집을 보는 게 좋더라고요. 가구도 최소한으로 두고, 불필요한 소품도 덜어내고 있어요.” 비워내는 과정을 반복하며 부부의 집은 오히려 갤러리의 화이트 큐브 같은 느낌이 완성됐다. 주인공인 부부만이 돋보이는 집은 모모모 스튜디오의 마미지 디자이너가 작업했다.
“마미지 실장님의 집을 매거진에서 우연히 보고 오래전부터 저장해두었어요. 스튜디오 같은 모습이 딱 원하는 스타일이었죠. 워낙 아티스틱한 센스가 있어 손잡이 하나도 믿고 맡겼어요.” 마미지 디자이너 역시 자신을 믿어준 부부에게 화답하듯, 부부의 첫인상을 고스란히 집에 담아냈다. “첫 만남부터 강렬했어요. 이탈리아 감성과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았죠. 그래서 집을 부부만의 쇼룸처럼 구성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매장 같은 느낌을 연출하고 싶어 벽과 천장을 하얀색 페인트로 마감했다. 석고 위에 바르는 매끈한 도장이 아닌 콘크리트 벽을 최대한 깔끔하게 살려 질감을 담은 것이 특징. 덕분에 어떤 가구와 액자를 놓아도 밋밋하지 않다.
하지만 쇼룸처럼 넓고 쾌적하게 비워내기에는 오래된 아파트의 좁은 구조와 답답함이 고민이었다. 2005년 지은 주상복합아파트로 철거가 어려운 벽이 많아 구조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것. 마미지 디자이너의 센스로 더 재미있는 집이 완성됐다. 먼저 답답하게 느껴졌던 낮은 층고부터 해결했다. 스튜디오처럼 배관이 그대로 보이는 노출 천장을 과감하게 시도한 것. 덕분에 키 큰 부부와 사이즈가 큰 가구가 돋보이는 스튜디오 느낌을 연출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