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낸 로마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집.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도 자신의 집을 시공하는 과정은 고민의 연속이다. 구조 변경이나 소재 등 다양한 선택지에서 ‘아는 만큼’ 더욱 까다로워질 수 밖에 없기 때문. 그런 이유로 자기 자신이 가장 엄격한 클라이언트가 되기도 한다. 로마의 디자인 스튜디오 푼토 제로 Punto Zero를 이끄는 조르지오 마르케제 Giorgio Marchese는 자신의 집을 고치면서 고민은 내려놓고 과감한 도전을 하기로 했다. 자신의 파트너들과 함께 다양한 아이디어로 채울 ‘실험적인 놀이터’로 만든 것.
“자기 자신이 고객이 될 기회는 많이 없어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통해 평소 도전해보지 못한 과감한 아이디어를 실현해보기로 했죠. 제가 믿고 의지하는 파트너 지안루카와 많은 대화를 하면서 공간을 만들어 나갔어요.”
창문 너머로 콜로세움과 콜레 오피오 공원이 보이는 거실. 조르지오는 로마 도시의 기원이 보이는 풍경에 편안함을 느꼈고, 이 집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1900년대 초에 지은 건물은 답답한 구조로 어두운 공간이 많았다. 더욱이 오랜 시간 사무실로 사용했던 곳이라 1950~60년대 고무 벽지로 덮여 있었다. 손봐야 할 곳이 많았지만 고민은 순간이었다. 오히려 오래된 건물의 흔적을 살리기로 하면서 많아진 도전 과제에 흥미를 느꼈다.
“말 그대로 모든 부분을 리노베이션해야 했어요. 하지만 20세기 기원지의 흔적은 유지하고 싶었어요. 방으로 분할되어 빛이 깊숙이 못 드는 구조는 유지하되 창문을 달아 환기될 수 있도록 만들었고, 기존의 문과 바닥도 최대한 재사용했죠.”
달라진 구조에 따라 빈티지 문을 분해하고 재조립해 다시 사용했고, 거친 사암으로 만든 바닥도 부분 보수를 통해 과거의 모습을 되살렸다. 오래된 벽지 뒤에 숨어 있던 흔적도 흥미로웠다. 공사를 진행하면서 많은 벽지와 페인팅 레이어 뒤에 숨어 있는 프레스코 천장을 발견한 것. 거친 회반죽을 바른 천장을 최대한 유지 보수하면서 살렸고, 덕분에 쾌적한 스튜디오 같은 느낌으로 만들었다.
과거의 흔적을 깔끔히 정리한 바탕 위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색상과 재질이다. 가령 오래된 로마 화강암 위로 레진과 스테인리스 같은 현대적인 소재를 조합해 도전적인 실험을 해나갔다. 컬러는 로마의 아이덴티티를 담은 레드를 많이 사용했다. “과거와 자연스레 연결될 수 있는 현대적인 로마의 집을 고민했어요. 로마의 색상과 소재를 많이 참조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도시에서 많이 사용되는 붉은색, 천연 트래버틴과 햇빛의 황갈색 등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색감을 담았어요.”
그래서인지 공간마다 시선을 사로잡는 붉은색이 인상적이다. 강렬한 블러드 오렌지 컬러로 수납장을 구성한 주방은 중앙에 놓인 아크리니아의 스틸 아일랜드가 색을 반사해 더욱 화려하게 느껴진다. 특히 거실에 있는 테이블은 이 집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 강렬한 레드 컬러와 글로시한 소재로 무채색의 집에 발랄한 에너지를 더한다. 여러 번의 디자인 수정을 거치며 완성된 테이블이라 더욱 애정이 크다. 최근 나폴리에서 열린 디자인 페어 EDIT에서 ‘프랑카&알레그라 Franca&Allegra’ 컬렉션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 집에 머물면서 집의 가치를 알아가고 있어요. 일중독자로 살아오면서 아침에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 돌아오곤 했는데 이 집으로 이사해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좋아하는 순간이 많아졌죠. 최근에는 아침 일찍 깊숙이 집 안으로 드는 햇빛을 즐겨요. 특히 루이제 카비올라의 사진 아래로 모아둔 식물 숲에 부드러운 황금빛이 내려앉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요. 도시가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죠.”
집을 삶의 한 계절이라 표현한 그의 말처럼 집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변화를 보여준다. 오랜 시간의 변화를 담아온 집에서 조르지오가 앞으로 만들어갈 이야기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