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담아 고른 기물은 우리네 일상에 작은 여유와 환기를 불어넣는다. 소소한 공예로 매일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두 사람의 오롯한 취향집 이야기.
가벽을 세워 공간을 구분한 거실과 주방 사이. 소파 대신 직접 만든 다이닝 테이블을 배치했다.
“1990년대에 지어진 이 아파트는 입주하고 20년이 넘도록 공사를 한번도 안 한 상태였어요. 도배지도 노란색으로 변해 있었고요. 대신 하루 종일 볕이 잘 들고 곰팡이도 없어서 잘 고치면 반듯한 집이 되겠다 싶었죠.” 권용석 실장이 마주한 것은 강서구 가양동에 자리한 66㎡ 크기의 작은 아파트였다. TWL에서 일하는 동갑내기 아내 박수연 씨와 6년째 살고 있는 집. 이곳은 올해 초 7년간 몸담았던 인테리어 스튜디오 길-연에서 독립한 그의 습작 같은 곳이기도 하다.
류연희 작가와 함께 만든 거실장. 빛바랜 풍경화 같은 작품은 아이보리앤그레이.
김규, 이헌정, 허상욱, 류연희 등 애정하는 작가의 작품을 모아놓은 공간.
“제가 인테리어를 했지만 하필이면 집을 고치던 시기와 바삐 돌아가던 회사 프로젝트가 맞물렸어요. 밤새 체크해야 할 것을 알려주면 다음 날 아내가 목공, 전기 공사 같은 현장 감리를 봤죠.” 구조는 크게 손댈 것이 없었다. 단지 거실 베란다를 확장하고 원룸처럼 뚫려 있던 거실과 주방 사이에 낮은 가벽을 세워 공간을 구획한 정도. 대신 모든 벽면을 하얗게 칠해 화이트 큐브 같은 공간을 만들었다.
박수연 씨와 권용석 실장.
하얀 도화지가 생긴 뒤 가장 먼저 생각한 가구는 다름 아닌 다이닝 테이블이었다. “저를 되돌아보니 가족이나 친구와 마음 편히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할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더라고요. 그래서 식탁만큼은 꼭 원하는 디자인과 소재로 직접 만들고 싶었어요. 한정된 공간에서 다이닝이 중요하다 보니 소파 대신 식탁을 두고, 식탁의 크기를 기준으로 주방의 면적을 정했어요. 결국 식탁이 이 집의 시작인 거죠. 저는 매스보다는 굉장히 미시적인 것부터 확장해 나가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적당한 크기와 착석감에 반해 구입한 놀의 폴락 암체어.
막연하게나마 떠올렸던 까만 돌로 만든 원탁을 구현하기 위해 주말마다 석재를 보러 다녔다. 그렇게 완성한 식탁은 큰 즐거움이 되었다.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하기도 하고, 주말에는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시간을 보내는 곳.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식탁에 놓인 컵에서 느껴지는 선명한 아름다움이 그에게는 일상의 환기가 된다.
펜던트 조명은 MK2에서 구매한 빈티지
제품. 뒤쪽에 놓인 조명은 플로스 토이오 플로어
램프.
벽에 걸린 도자기는 밀라노 출신의 도예가
귀도 데 잔, 황동 소재 컵은 류연희 작가의 작품.
거실 한쪽에 자리한 거실장도 그런 물건 중 하나다. 현장에서 작업한 연이 있는 류연희 작가에게 문짝을 의뢰하고, 그에 어울리는 장을 직접 제작해 최근에 완성한 것. 구리 판에 주석을 물감처럼 슥슥 발라 마감한 문짝에서는 왜인지 모를 호방한 기운이 감도는 듯했다.
이길연 실장님이 선물한 목업 의자.
“류연희 작가님은 대충미라는 표현을 쓰시는데, 모든 것을 정교하게 계획해서 만들기보다 이 정도면 됐다 싶을 때 완성이라고 생각하신대요. 저는 그런 자연스러운 것에 이끌리더라고요. 도자기도 분청을 특히 좋아하고요. 그렇게 손맛 나는 공예품은 공간 분위기도 여유롭게 풀어주는 것 같아요. 마치 산책을 하는 것 같달까요.”
손맛 나는 분청 그릇들이 유독 눈에 띈다.
계절이 바뀌면 베란다 자리에 놓인 나무 스툴 위의 기물도 조금씩 변한다. 서로 비슷한 취향을 가진 덕분에 이제는 눈빛만 봐도 알아서 척이다. 집에 놓인 기물들은 주로 갤러리 완물이나 조은숙아트앤라이프스타일, 작가의 전시장에서 구매하곤 하는데, 이와 어울리는 물건을 직접 만드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허명욱 작가의 옻칠 컵에 어울리는 나무 코스터를 직접 디자인해 만들고, 아이보리앤그레이 테이블 매트를 직접 만든 액자에 넣어 그림처럼 걸었다.
즐겨 읽는 책을 쌓아둔 침실 한 켠. 서랍장 위에 박서보 작가의 작품을 올려놓았다.
두 사람의 공간은 요즘 SNS에서 볼 법한 ‘예쁘게 가꿔진 집’은 아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늘 고민하고, 좋아하는 것을 사보기도 하고, 실패해보기도 하면서 완성한 시간이 만들어낸 집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이야기가 없는 물건이 없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하나 둘 모아둔 수석부터 학생 시절 언젠가 꼭 사리라 마음먹었던 MK2에서 마침내 구매한 빈티지 조명, 핸들위드케어 전시에서 구입한 김규 작가의 나무 항아리, 이길연 실장님이 선물해준 목업 의자 등 하루 종일 이야기해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오랜 시간 몸담았던 회사를 나와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는 권용석 실장이 추구하는 집도 바로 이런 모습이다.
직접 디자인한 참나무 소재의 침실 사이드 테이블.
“늘 경계하는 부분이 바로 현장의 이미지화예요. 그저 잘 정돈된 예쁜 이미지 한 컷으로 포장되는 것은 정말 원하지 않거든요. 다만 살면서 좋은 공간을 직접 경험하길 바라는 거죠. 집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모두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경험이었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