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품은 단독주택
불필요한 것은 숨기고 장점은 최대한 끌어올린 집. 확고하게 정립된 부부의 미적 감각으로 영리하게 설계한 단독주택을 찾았다.
대지 595㎡, 실내 330㎡의 커다란 집은 대지를 높여 빛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설계했다. 때문에 가족들이 생활하는 메인 공간인 거실이 자연스레 2층으로 올라갔고 1층은 때에 따라 무제움의 가구를 촬영하는 스튜디오 겸 라운지로 사용하고 있다. 또 창을 곁에 둔 계단 역시 빛을 최대한 많이 확보할 수 있도록 계단의 폭을 넓게 잡았다. 그 덕분에 외관 역시 독특한 모습. 이 집은 외부에서 봤을 때 집의 전체가 노출되어 보이지 않고 세로의 얇은 축만 보이는 형태다.
이 집에서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하는 점은 분리된 공간이다. “집 안에 최대한 여러 군데의 스폿이 있으면 했어요. 마당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층에 각각 존재하고 중정이나 서브 주방 등으로 공간에 대한 갈증을 해소했어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방은 상당히 심플해요.”
그중에서도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곳은 바로 지하에 자리한 부부의 놀이터다. 그녀는 4살 딸아이와 이제 갓 8개월이 된 둘째 아들을 키우면서 일도 하는 워킹맘으로 살림을 봐주는 이모님들과 함께 살고 있다. 때문에 서로 조심해야 할 부분도 많거니와 때로는 부부만의 사적인 시간이 필요해 지하 공간을 만들었다.
“여기는 저희 부부의 사랑방 같은 개념이에요. 친구들을 초대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놀기도 하고 겨울에 산을 바라보며 스파를 즐겨요. 조도를 낮추고 소리도 완전히 차단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커튼까지 치면 말 그대로 격리된 장소가 되죠.” 부부는 아이와 함께 물놀이를 하며 야외에서 불멍하는 시간을 가진다. 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만끽하는 나날을 보내게 된 것.
그토록 원했던 빛도 양껏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가족들을 위한 프라이빗한 공간도 확보하며 영리하게 설계한 이 집에는 이들 부부가 고심 끝에 결정한 가구들이 곳곳에 자리한다. “훌륭한 가구 디자이너들 중에는 건축가 출신이 많아요. 저 역시 가구가 건축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가구의 높낮이를 고민하고 입체적인 형태를 선호해요.”
가구 디자인의 핵심 요소에 대한 확고한 취향이 있어서일까. 색감도, 형태도 모두 다르지만 통일성이 느껴지는 이유다. 김예진 대표는 가족과의 시간은 물론 8개월 된 막둥이처럼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무제움 역시 뚝심 있고 올곧은 마음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지난가을, 빈티지 가구를 수집하는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청계산 앞자락에 자리 잡은 빈티지 가구숍 무제움이 몇 달간의 정비 시간을 갖고 대중에게 정체를 드러낸 것. 다소 외진 지역에 위치한 이유도 있었거니와 기교를 덜어낸 무게감 있는 건축물이 시선을 끌어 그 안이 더욱 궁금해졌다. 희소성 있는 20세기 모더니즘 시대의 가구부터 오리지널 빈티지 가구에 패브릭을 덧대 새롭게 해석한 업홀스터리 가구가 눈에 들어왔다. 여타 빈티지 가구 편집숍과는 분명 다른 행보가 보였다. 이는 디자인을 전공하고 20대 어린 나이부터 일찍이 빈티지 가구에 매료되어 수집을 이어온 김예진 대표의 감각 덕분이었다. 그렇게 그녀의 일터를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김예진 대표의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을 취재할 수 있었다.
“20대 초반 대학교 시절부터 워낙 20세기 모더니즘 가구를 좋아했어요. 취미처럼 조금씩 사 모았던 것이 디자인 일을 시작하면서 본격화됐어요. 이렇게 10년 넘게 쌓아둔 가구들을 전시 공간에서 보여주면 어떨까 생각했고, 지금의 무제움을 론칭하게 되었어요.” 김예진 대표가 설명했다. 그렇게 3년 전, 무제움의 사옥과 집 건축 설계를 동시에 계획했다. 기획과 공사에만 2년이 걸렸고 올해로 이 집에 입주한 지 1년이 됐다.
디자인을 전공한 김예진 대표와 마찬가지로 남편 역시 건축과 인테리어에 일가견이 있었기에 이들 부부는 설계 스케치부터 평면도까지 꿈에 그리던 집을 직접 그려 나갔다. 그리고 이를 실현시켜줄 전문가로 건축사무소 디자인 오를 선택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도화지 같은 백색의 공간에 묵직한 덩어리감이 느껴지는 건물 그리고 그 안에서의 입체적인 동선이었다.
“여기에 원래 있었던 집은 완전히 산을 뒤로 한 동향이었어요. 저희 부부는 무엇보다 빛이 중요했던 터라 많은 제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재건축을 결심했어요. 점심이면 캄캄해지는 기존 집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빛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했어요.” 어려운 길을 택했던 이유에 대해 김예진 대표가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