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집, 누군가의 작업실, 누군가의 사무실. 김희원 작가는 그곳에 머무는 이가 바라볼 시선을 다른 공간에 옮겨놓는 작업을 한다. 마치 막혀 있는 공간에 또 다른 창을 여는 것처럼.
사진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였나요?
열 살 때쯤, 아버지가 쓰시던 필름 카메라를 저에게 물려주셨어요. 당시 집이 아주 잘사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버지는 방학이 되면 학원 대신 여행을 보내면서 필름 10통을 쥐어주셨어요. 뭐든 찍어 오라고요. 정답이 없으니 틀릴 것도 없는 교육이었던 거죠. 그 덕분에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지금은 사진을 하지만 디자인을 전공하고 멘디니 스튜디오에서 디자이너로 일하셨죠.
밀라노 도무스 아카데미에서 공간,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했어요.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면 자신만의 의자와 테이블 같은 자체적인 언어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죠. 사진이나 멀티미디어 쪽을 일한다고 했을 때 오히려 한국에서 그 분야의 경계를 분명하게 나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당시에는 제가 하는 작업을 꼭 파인 아트라고 구분 짓는 것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고요. 단지 저는 사진과 영상이라는 매체를 이용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로산나 올란디에서 전시한 ‘누군가의 창문 시리즈’로 첫 주목을 받으셨습니다.
도무스를 다닐 때 밀라노에서 개최한 한 공모전에서 1등을 했어요. 멘디니 할아버지에게서 상을 받고 그 계기로 인턴을 하다가 입사까지 한 거죠. 그때 회사에서 외부 활동을 허락해줘서 사진을 찍으러 다녔는데, 로산나 올란디 측에서 먼저 뭐라도 해보자며 제안해주었어요. 그때 ‘누군가의 창문 시리즈’를 가져간 거죠. 처음에는 갤러리에 안 걸고 레스토랑 한쪽 벽에 걸어주더라고요. 그런데 첫날 세 작품이 다 팔린 거예요. 그 다음해부터는 갤러리 지하, 또 그 다음해는 1층, 2층으로 올라왔어요.(웃음)
유독 디자이너들의 공간이 많아요.
누군가는 벽에 명화를 걸기도 하고 누군가는 좋아하는 가수 포스터를 붙이기도 하는데, ‘나는 무엇을 걸어놓고 바라볼까’ 고민하다 시작했어요. 아킬레 카스틸리오니나 비코 마지스트레티처럼 제가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던 디자이너들의 아틀리에부터 찾아간 거죠. 주중에는 회사를 다니고 주말마다 찾아다녔어요. 파리에 가서는 그 대상이 르코르뷔지에가 됐고요. 하도 자주 가니까 나중에는 저를 알아보고 작업도 보여주고 그랬던 것 같아요.
같은 공간을 굉장히 여러 번 찍으신다고요.
인물도 그렇잖아요. 오늘 처음 본 사람과 1년, 3년, 10년을 알고 지낸 사람에게서 나오는 표정이 다 달라요. 그 안에는 당시 유행한 음악이나 영화, 산업 등 그때 시대상이 다 담겨 있고요. 물론 사진 자체에서는 그 차이를 못 느낄 수 있어요. 단순히 계절이나 날씨의 변화 정도일 텐데, 저에게는 그게 태도의 문제인 거죠. 제가 찍은 공간의 주인에게 보여줬을 때 혼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 공간은 충분히 찍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잉가 상페를 비롯해 파리지앵의 공간을 엮어서 <파리의 사생활>이라는 책을 펴내셨죠.
지금은 부끄러워서 절판을 시켰는데요,(웃음) 당시 한 100명의 공간을 찍은 것 같아요. 그때는 제가 궁금한 사람이다 싶으면 무조건 연락했어요. 매거진 편집장이나 디자이너, 포토그래퍼, 브랜드 대표 등이었어요. 물론 거절당할 때도 많았지만, 직접 사진도 찍고 인터뷰도 했죠.
이어 선보인 작업이 촛불과 샹들리에 시리즈예요.
사람들이 시대상이에요. 어둑어둑해지면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전구의 스위치를 켜죠? 그 전에 역사를 따라가보면 초가 있고요. 2011년쯤 초에 불을 붙여 타 들어가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찍는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다들 미쳤다고 말했어요. 짧으면 4시간 30분에서 6시간이 넘는 때도 있어요. 4K, 8K로 촬영하기 때문에 한 영상만 해도 용량이 몇 테라가 돼요. 처음에는 돈이 없어서 샹들리에를 빌려서 찍었어요. 나중에 한국으로 가지고 올 때는 샹들리에 판매하는 데서 한 달간 일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워 샹들리에를 하나하나 분해해서 배낭에 메고 들어왔어요. 무게가 20kg 정도 되더라고요.
1층에도 2층에도 체스보드가 있는 게 인상적이에요.
미국 사진작가 듀안 마이클이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창을 찍으면서 함께 체스를 자주 뒀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들의 공간을 찍으려면 체스 정도는 둘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해서 그때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파리에는 체스보드 파는 곳이 세 군데 있어요. 공원에 체스 두는 사람들을 보러 가기도 하고, 체스클럽에도 찾아갔어요. 체스 영화를 보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체스시계가 눈에 띄는 거예요. 그럼 또 체스시계 만드는 사람들을 찾아가보고 ‘저건 왜 저렇게 예쁜 거지?’ 하면서. 예부터 프랑스, 러시아, 미국의 체스시계는 모양이 다 달라요. 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보면서 어떤 시대의 어떤 작업이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일까 고민하는 거죠. 마치 블라인드 테스트처럼 하나를 고르고 왜 이것이 좋은지 나 자신에게 계속 질문을 던져요.
김 작가님은 인간의 흔적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누가 디자인했다는 사실보다 그 원형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예를 들어 바카라에서 필립스탁과 컬래버레이션해서 촛대를 만들었다면, 저는 그보다는 과거 유럽에서 사용하던 빈티지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거죠. 유럽에서 살 때 주말에 빈티지 시장을 가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페어 때문에 주로 해외에 머무는 때가 많은데, 한국에서는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나요?
작업실에는 오전 9시 출근해서 오후 6시면 퇴근해요. 작업실은 함께 일하는 김유신 실장, 이승재 작가가 같이 사용하고 있어요. 종종 액자 판매하는 데도 가고 작품 설치도 가고요. 날씨가 좋으면 무조건 궁에 가서 맨날 똑같은 후원을 찍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