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을 향한 건축가 알바 알토의 철학에 공감하는 두 사람의 집.
알바 알토 Aalvar Aalto에 대한 핀란드인의 사랑은 남다르다. 지폐에 새길 정도다. 모더니즘을 기반으로 하되 자연과 인간에 대한 존중을 무엇보다 우선시한 건축가. 그에게는 인간 중심 설계, 즉 사용자의 행복을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철칙이 있었다. 어느 하나 튀지 않고 편안한 건물과 가구 디자인은 핀란드를 넘어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그 신념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에게 영감과 수집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됐다.
여기 알바 알토의 철학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부부가 있다. 12년째 인디 신에서 활동 중인 스탠딩 에그의 멤버 2호와 촬영 감독인 아내 김지윤이다. 팬데믹 시기 스웨덴 숲 속에서 대자연과 함께했던 경험은 자연이 주는 위안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겨울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산자락에 자리를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20년 된 낡은 주택은 뼈대만 남기고 모든 것을 바꿨다. 인테리어의 컨셉트는 알바 알토와 그의 아내 아이노 알토가 1939년 부유한 사업가를 위해 지은 별장 빌라 마이에라 Villa Maiera. 벽돌과 석회, 목재를 사용해 만든 숲 속 별장은 알토 부부의 주택 건축 디자인의 역작으로 손꼽힌다.
“북유럽 사람들은 실제로 집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잖아요. 무엇보다 장식적인 장식보다 기능을 위한 장식에 충실하다는 점이 좋았어요. 테이블의 높낮이나 조명의 조도처럼 디테일한 지혜가 있죠. 알바 알토 디자인은 소박하고 절제되면서도 동양과 서양의 분위기가 동시에 느껴져요. 자연을 닮은 디테일에는 편안함이 서려있고요.”
집 구조를 간단히 설명하면, 현관에서 복도를 따라 오른쪽에는 방이, 왼쪽에는 주방이 자리하고 복도 끝에는 넓은 거실과 다이닝룸이 이어진다. 낮은 주방과 사선 천장이 있는 복도 등 공간 따라 천장 높낮이도 조금씩 바뀌는 점이 재미를 더한다. 침실 크기는 최소화하는 대신 공용 공간 확보에 힘을 썼다. 굳이 8명을 위한 다이닝 테이블을 새로 들이고, 벽난로를 설치한 것도 여럿이 함께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하는 장면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테라코타 컬러의 타일 바닥과 천장의 자작나무 디테일, 검은색으로 칠한 거실 기둥 등 빌라 마이에라는 디테일을 결정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방 세 개 중 가장 큰 방은 서재로 꾸몄다.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서재 안쪽에는 비밀 공간이 하나 더 있는데, 화장실로 사용하던 좁고 긴 자투리 공간에 책장을 짜 넣은 것. 그동안 모은 아트북과 디자인 관련 서적을 채워 넣으니 도서관 못지않은 공간이 완성됐다. 집 안에는 50년이 훌쩍 넘는 빈티지 아르텍 가구들이 곳곳에 포진해있다. 서로의 생일 선물로 주고받기도 하고, 핀란드에서 직접 사오기도 하며 하나둘씩 모은 것이다.
“몇 년 전 핀란드에 가서 알토 하우스의 디테일도 볼 겸, 아르텍 세컨 핸즈 매장에서 가구를 많이 사오자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어요. 막상 가보니 그 나라는 중고와 빈티지의 개념이 아예 다르더라고요. 오히려 시간이 지난 제품일수록 더 비싼 거죠.(웃음) 시간이 흘러 빛바랜 빈티지에는 새 제품이 대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저런 컬러와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동안 지나온 사람들이 어떻게 대해줬는지가 다 축적돼 있는 거잖아요. 이를 이어받았다는 기분이 들어 뿌듯해요.” 새 집에 기존 가구를 하나둘 배치하자 마치 흩어져 있던 퍼즐이 맞춰지는 듯했다.
집을 고치며 두 사람이 무엇보다 신경 쓴 부분은 빛이다. 낮의 자연광을 위한 창 크기와 높이, 자연광과 인공광이 믹스됐을 때의 분위기를 고려한 조명의 위치와 높이까지, 꼼꼼하고 깊이 있는 공부를 했다. 이 집의 가장 큰 창이 있는 거실에 커튼이나 블라인드가 없는 이유다. “어떤 물성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결국 다 빛이잖아요. 우리가 이런 한적한 동네로 이사 온 것은 빛을 집 안으로 들이고 싶어서였어요. 빛이 들어오는 것을 막게 되어 바깥을 보지 못하는 게 인생에서 큰 손해 같더라고요. 사시사철 자연의 아름다움과 다채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이 집의 가장 큰 기쁨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