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디자인계의 악동 위크로니아 대표, 줄리앙 세반의 세계.
‘혜성처럼 등장한’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이들이 있다. 2019년 스튜디오를 시작하고 불과 2~3년 만에 프랑스 인테리어 디자인 시장 내 메이저 위치로 올라온 위크로니아 Uchronia가 그렇다. 원색 컬러들을 자유롭게 적용하는 대담함, 재활용 재료만으로 가구와 소품을 위트 있게 제작하는 방식은 현재 가장 트렌디한 레스토랑과 카페, 리테일 매장들로부터 러브콜을 이끌어내면서 독보적 정체성을 확립시키게 됐다. 이제 겨우 30대 초반인 위크로니아의 대표 줄리앙 세반 Julien Sebban은 기성 세대들이 쌓아놓은 전통적 프랑스 디자인 미학을 따르는 대신 남들이 하지 않는 방법론을 찾아 다름의 매력을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독특한 미학이 반영된 자신의 집을 아시아 최초로 메종에 공개했다. 파리 18구 위크로니아 사무실 옆에 위치한 컬러의 기운이 넘치는 곳. 줄리앙 세반과 그의 파트너인메종 로이에 Maison Royère의 아티스틱 디렉터 조나단 레이 Jonathan Wray가 함께 생활하는 개구쟁이 악동들의 원더랜드로 들어가보자.
이곳에 입장하면 오렌지, 실버, 노랑, 파랑 등이 동시에 펼쳐진다. 놀랍게 도 흰색 벽은 찾아볼 수 없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신발을 벗는 일이다. 웨이브 패턴의 연두색 레진으로 마무리된 바닥이 신발을 신은 채 들어오면 오염도 되겠지만, 본래 이유는 맨발로 걷기 편한 감촉으로 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잔잔한 연두색과 상반되는 쨍한 오렌지색이 공간 전체에 밝은 기운을 발산한다. “집에 사용된 메인 컬러는 오렌지예요. 그리고 프라이빗 공간에는 노란색 천장을, 거실에는 하늘색 천장을 볼 수 있어요. 전부 래커를 칠해 광택 효과와 함께 자연광을 잘 받아들이면서 디스코볼이 연상되는 은색 타일을 깔아 빛이 반사되는 드라마틱함을 살리도록 했어요.” 넒은 거실 한쪽에 마련된 주방에는 알루미늄 소재로 제작된 아일랜드와 커스텀 제작한 레진 도어의 수납 시스템이 전부다. 마치 마법사의 요리가 만들어질 것 같은 상상이 들기도 하는데, 냉장고를 포함한 모든 주방 기기를 보라색 수납장 안으로 숨기면서 전형적인 주방의 이미지를 탈피했고, 원하는 디자인으로 타일을 따로 제작해 장식장을 마련했다.
“네덜란드 업체인 스튜디오 지디비 Studio GdB에서 제작한 타일이에요. 원하는 디자인을 제공하면 약 2주 후에 결과물이 나와요. 시중에 나와 있는 타일이 아닌 나만의 디자인을 원한다면 이곳을 추천해요. 보라색 수납장은 이케아 가구로 내부 틀을 완성한 후 위크로니아의 레진 테이블을 제작하는 공방에 의뢰해 문만 따로 제작한 거예요. 여기 앞에 놓인 웨이브 모양의 식탁과 동일한 재료이다 보니 통일감이 느껴지지 않나요?” 레진과 오닉스로 제작된 식탁은 컬러 레이어 효과와 재질도 특별하지만 구불구불한 형태가 재미있다. 디자인과 제작에만 6개월이 걸렸다는 이 모델은 물결 모양 덕에 15명이 동시에 다양한 각도로 앉아서 식사가 가능하다. 친구들을 자주 초대해 파티를 여는 이들에게 딱 어울리는 다이닝 테이블이다. 일 년간의 리노베이션을 통해 가벽을 모두 부수고 공용부를 넓게 사용하는 이 집의 특징 중 하나는 넓은 벽에 그림을 걸지 않았다는 점이다. 게스트룸인 오렌지색 방의 선반에 작은 액자 두 점이 놓인 것이 전부다. 다양한 색과 소품이 산재할 경우 눈높이에 위치한 공간은 깨끗이 유지하는 것이 밸런스를 맞추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서는 앉아 있을 때와 서 있을 때의 공간이 주는 느낌이 달라요. 앉아서는 모든 오브제에 시각적, 물리적 접근이 쉽죠. 하지만 서 있을 때는 조명을 제외하고는 오브제로 인한 시각적 노이즈를 최소화하려고 했어요. 실제로 우리 둘 다 그림을 꽤 갖고 있지만 이런 이유로 집이 아닌 사무실에 보관하고 있죠.”
거실 한쪽에 마련된 오렌지색을 전부 사용한 작은 사무실 겸 게스트 룸, 조금 차분한 그린과 핑크가 조합된 침실, 핑크색 콘크리트가 지배하는 욕실 등 공간마다 새로움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창조물을 위해 다양한 공방, 그리고 예술가들과 협업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이 집을 방문하면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1901년 시작된 파리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핸드메이드 태슬 공방인 파스멘트리 베리에 Passementerie Verrier와 협업한 사이트 테이블, 200년 전통의 프랑스 고급 패브릭 제작 회사 프렐 Prelle에서 제작한 쿠션과 커스텀 패브릭의 커튼 등 프랑스의 오랜 장인정신과 젊은 디자이너 줄리앙의 비전 결합을 발견하면서, 동료 디자이너 라마르셰-오비제 Lamarche-Ovize에게 의뢰해 만든 타일과 소품, 경매를 통해 구입한 영국 디자이너 찰스 젱크스 Charles Jencks의 희귀한 디자인 데이베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다이닝 의자부터 프랑스 지방의 빈티지 시장을 돌며 수집한 오브제까지 수많은 시대와 스타일이 위크로니아의 무드 속에 난무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최대한 조화롭게 보이기 위해 기존 나무 기둥을 은색 알루미늄으로 덮은 수고까지 발휘했다. “우리는 작업할 때 함께 일하는 장인들부터 클라이언트까지 모두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프렐이나 파스멘트리 베리에의 장인들과는 이제 친구 같은 사이라고 할 수 있어요. 클라이언트도 마찬가지예요. 카페 뉘앙스 Café Nuances의 경우 당시 23세 젊은 오너들이 나를 찾아와 가이드라인 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실내 디자인을 해달라고 부탁했고, 현재 네 번째 매장을 준비할 정도로 파리에서 가장 트렌디한 사람들이 모이는 카페가 됐어요. 포레스트 Forest 레스토랑은 파리시에서 운영하는 현대 미술관 내부에 위치한 식당이기 때문에 그에 어울리는 톤과 무드가 적용됐고, 2020년 오픈할 때부터 현재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어요. 위크로니아의 스타일을 지키되 공간을 사용하는 실제 주인의 퍼스털리티를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는 방침이 다양한 프로젝트를 단기간 내에 진행할 수 있었어요.”
4월에는 밀라노에서 씨씨 타피스 CC Tapis와 함께 뜨개질 기법이 적용된 새로운 카펫이 공개되고, 파리에서는 첫 번째 호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남프랑스에서는 나이트클럽 실내 디자인도 진행하고 있다니 우리는 위크로니아의 발랄함을 더 자주 즐길 일만 남았다. ‘위크로니아의 디자인이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줄리앙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 목표는 단순히 아름다운 공간이나 비싸 보이는 디자인을 하는 게 아니에요. 공간을 즐겁게 창조하는 것 Make Space Fun, 이것이 사람들이 정말로 원하는 바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