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인테리어 디자이너 티에리 르메르가 사는 곳.
티에리 르메르의 아이코닉한 가구, 니코 소파와 쿠막 암체어, 헬멧 사이드테이블이 놓인 거실. 커피테이블은 청동 장인에게 커스텀 제작했다. 오른쪽에는 르메르가 프랑크 오몽 Franck Aumont과 협업한 세라믹 램프, 왼쪽에는 장-피에르 가로와 앙리 드로드의 70년대 빈티지 조명을 놓았다. 텍스처가 들어간 양모 카펫 역시 티에리 르메르 제품.
니코 소파에 앉아 포즈를 취한 티에리 르메르.
세라믹 아티스트 프랑크 오몽과 협업해 제작한 램프.
프랑스에서 티에리 르메르 Thierry Lemaire라는 이름이 가진 영향력은 매우 크다. 파리 오스마니안 아파트와 해외 별장, 요트, 프라이빗 젯 등 하이 엔드 인테리어 시장을 이끄는 인물인 동시에 프랑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 궁의 선택을 받은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다. 1973년 퐁피두 대통령이 피에 르 폴랑에게 의뢰해 대통령 관저의 가구를 채운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실내 리노베이션에서 대통령 집무실 책상과 살롱의 대형 소파를 포함한 가구와 소품 7점이 티에리 르메르에 의해 제작되었다. 티에리 르메르는 최근 이사한 생-제르망-데-프레 아파트에서 대통령 이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가구들과 함께 디자이너 특유의 조용한 삶을 즐기고 있다. 사무실과 갤러리가 있는 보나파르트가 Rue Bonaparte에서 3분 거리의 옛 수도원 건물인 아파트는 놀랍게도 들라크루아 박물관을 마주하고 있다. 시내 중심에 있지만 창문 너머로 박물관의 정원이 보이고 새 소리가 들리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아끼는 황동 말 머리 조각상에 맞춰 커스텀 제작한 테이블 주변에는 빈티지 가구와 소품만 매치했다. 벽에 걸린 소가죽으로 만든 작품은 헝가리 아티스트 피에레 세케이 Pierre Székely의 1979년 작품.
창문 너머로 들라크루아 박물관의 정원이 보인다.
티에리 르메르가 말한다. “생-제르망-데-프레를 좋아해요. 인생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내 익숙하기도 하지만 여기엔 멋진 카페와 비스트로 외 에도 문화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이 있어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이 지역이 멋지다는 것을 알죠.” 이런 이유로 혼자 지낼 아파트를 찾던 중 발견한 들라크루아 박물관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80㎡ 공간은 그를 설레게 했다. 다소 작은 크기지만 실제보다 넓어 보이도록 한쪽 벽에 거울을 설치해 아쉬움을 해결했다. 식사는 주로 레스토랑에서 해결하니 주방이 클 필요 없으며, 잦은 해외 출장과 주말마다 파리를 벗어나 짧은 여행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에 이 정도 크기가 오히려 적절했다.
청동 장인이 제작한 커피테이블 위에는 여행지에서 가져온 돌과 오브제가 놓여 있다.
인테리어는 자연스럽게 보나파르트가 갤러리의 연장선처럼 그가 자주 묘사하는 ‘구름 속’에 있는 듯한 차분한 무드로 완성됐다. 갤러리와 다른 점은 직접 컬렉팅한 미술작품과 골동품이 함께 어우러져 사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것. 거실에는 엘리제궁 살롱에 놓인 니코 Niko 소파가 티에리 르메르의 또 다른 시그니처 디자인 중 하나인 쿠막 Koumac 암체어와 마주하고 있다. 엘리제궁에서 여럿 사용 중인 헬멧 Hellmet 사이드 테이블도 보인다.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피스를 굳이 뽑자면 니코 소파와 쿠막 암체어예요. 니코는 이 공간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고, 쿠막은 맨 처음 디자인한 가구라 애착이 가요. 약 15년 전 프로젝트에 어울리는 의자가 필요해 직접 스케치해서 제작한 것이 쿠막이었죠.” 완전히 온몸을 담을 수 있는 넓은 사각의 디자인과 편안한 착석감에 회전도 가능한 쿠막 암체어는 현재까지 사랑받는 모델이다.
목재 대들보의 브라운과 화이트 벽 사이에 존재하는 중립적 컬러로만 채워진 거실은 넓은 창의 햇살과 함께 밝고 편안하다. “커리어 초반에는 색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어요. 공간이 가진 미적 기준을 삶의 즐거움 창조라는 목적에 맞추려다 보니 현재 모습으로 진화된 것이 아닐까요. 유행을 제시하는 것보다 평생 즐길 수 있는 미감을 창조하는 것이 클라이언트의 삶은 물론 환경적으로도 중요하니까요.”
생 디에 Saint Dié에 있는 폴 에벨 학교의 건축 요소로 사용된 1953년 장 푸르베 작품. 바닥에는 티에리 르메르 플로어 램프와 빈티지 조각상을 놓았다.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한 미니멀한 주방에서는70년대 올빼미 얼음통 같은 앤티크와 세라믹 작가들에게 의뢰해 제작한 제품을 함께 사용한다. 기하학 형태의 그림은 브라질 작가 조아우 카를루스 가우바우 Joao Carlos Galvao 작품.
한 가지 톤 컬러로 공간을 채우는 일은 자칫하면 지루할 수도 있다. 그래서 티에리는 다양한 질감을 의도적으로 혼합해 리드미컬함을 더했다. 양모 소재의 카펫, 소가죽, 청동, 직물, 세라믹이 혼재한 거실 풍경은 단순하지만 경쾌하고 아름답다. 다양한 소재 외에 다양한 시대의 혼합 또한 그가 강조하는 중요한 디자인 요소다. 커스텀 제작한 다이닝 테이블 주변으로는 50년대 빈티지 의자가, 바닥에는 70년대 만들어진 장-피에르 가로 Jean-Pierre Garrault, 앙리 드로드 Henri Delord의 조명, 그리고 브뤼셀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60년대 청동 샹들리에와 2000년대 티에리 르메르 가구들의 조화는 멋진 균형을 보여준다. “여기에 돌로 제작한 장식장을 들이고 싶었는데 자리가 없어 포기했어요. 돌로 만들어진 모던한 의자, 아니면 루이 16세 스타일의 의자가 놓인다고 해도 어울릴 거예요. 티에리르메르 가구로만 100% 공간을 채우는 것은 내겐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과거와 현재의 스타일을 혼합하는 것이 진정한 멋이라고 생각해요.”
알루미늄 소재 티에리 르메르의 트위스트Twist 콘솔 위에는 여행지에서 하나둘씩 모은 빈티지 대리석 컬렉션이 있다. 그림은 부다페스트 여행 중 구입한 헝가리 작가 게저 베네 Géza Bene의 1953년 작품.
빈티지 소품과 공예품으로 채워진 현관 장식장.
오랜 기간 펜디 카사와 꾸준히 협업해오고 있다. 주로 PAD런던을 통해 고객을 만나는 그는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두바이, 싱가포르, 베이루트, 스위스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위해 이동이 잦은 편이다. 올해는 생트로페에서 첫 번째 호텔 프로젝트가 예정되어 있다. 진정한 글로브 트로터에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퇴근 후 텔레비전을 틀고 소파에 앉아 샴페인 한 잔을 하거나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 것으로 채워진다. 요리는 거의 하지 않고 사무실 근처 ‘라 샤레트 La Charette’를 가거나 대접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르 볼테르 Le Voltaire’를 선호한다. 파리 문화가 영감의 원천이긴 하지만 새로운 여행지 경험 또한 그의 삶에선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집 안 곳곳에는 여행지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오브제들이 한가득이다. 침실의 트위스트 Twist 콘솔 위를 가득 채운 장식품, 거실의 커피테이블 위에 놓인 돌, 세라믹, 청동, 크리스털 소재의 오브제, 현관 장식장의 다양한 조각상 등은 전부 여행지의 추억이다. 통일된 안목으로 선택된 기념품들은 전통적인 소재를 선호하는 집주인의 확연한 취향을 보여준다.
침대 헤드와 사이드테이블은 직접 제작했다. 바이론 Byron 의자는 티에리 르메르 제품.
실내건축과 가구 디자인 중 어떤 분야를 선호하는지 묻자, 티에리는 1950~60년대 건축가들이 일하던 방식을 선호한다고 했다. 즉, 건물 외관에서 시작해 건물 내부, 그리고 머무는 사람이 사용하는 숟가락 디자인까지 관여하는 방식을 말한다. 건축가가 클라이언트를 위해 A부터 Z까지 결정하는 프로젝트는 디자인의 일관성과 완성도를 높여줄 수밖에 없으니 당연하다. “가구를 디자인하는 일은 작은 건축물을 만드는 것과 같아요. 제작에 걸리는 기간이 몇 개월로 짧을 뿐이지 스케치를 시작하고, 구조가 결정되고, 제작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건축물을 올리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래서 가구 만드는 일도 너무 즐거워요.”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가구들을 제작하기 때문에 갤러리에는 6개월마다 새 제품이 소개된다. 파리 생-제르망-데-프레, 보나파르트가를 지난다면 티에리 르메르 갤러리에 들러 프랑스 대통령이 사용하는 가구들을 직접 체험해보라.
www.thierry-lemaire.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