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주택가 속 스튜디오와 카페, 집이 함께 공존하는 이곳. 레이블을 운영하는 뮤지션 부부가 켜켜이 쌓아가고 있는 특별한 복합 공간을 찾았다.
코로나19는 공연을 업으로 하는 예술가들에게 특히 가혹했다. 뮤지션 부부인 신이삭, 정하은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정되어 있던 공연이 취소되며 기약 없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 깊이 가라앉을 법도 했지만 부부는 위기를 기회로 생각했다. 표면적으로 단절의 시기였지만 부부에게는 확장의 시간이 됐다. “뮤지션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레이블을 만들기로 했어요. 프로듀싱 외에 앨범 커버 디자인, 관련 굿즈 제작처럼 음악 외적인 것에 어려움을 겪는 뮤지션이 생각보다 많았거든요. 레이블 이름은 우리가 늘 장난처럼 SNS에 태그하던 리듬, 사랑, 소망으로 지었어요.” 레이블 구성이 구체화될 무렵, 이들은 자연스레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공연, 녹음이 가능한 스튜디오 그리고 집을 겸하는 복합 공간을 만들기로 한 것. 작업실이 있던 연남동 일대부터 점차 지역을 옮겨 조사하던 차에 일산의 상가주택단지에 위치한 나대지를 발견했다. 건물이 없어 철거 비용을 아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대지였다. 땅을 매입한 뒤 부부는 레이블의 브랜딩 작업을 진행했다. 막연한 개념들을 한데 모아 선명하게 추출하고, 그것을 공간에 적용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브랜딩을 통해 ‘날것의’, ‘갖춰지지 않은’, ‘아티스트 본연의 모습’ 등의 주제어를 갖게 됐다. 2021년 가을, 부부는 이 단어들을 들고 건축가를 찾았다. 설계를 맡은 그라운드 아키텍츠의 김한중 소장은 보통의 공간과 다른 성격을 가졌기에 건축가로서 흥미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주택을 짓는 이들은 경험적으로 공간을 상상하는데, 부부는 꽤나 구체적이고 전략적으로 공간에서의 삶을 계획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곳은 지하엔 공연과 녹음을 겸하는 스튜디오, 1층엔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카페, 2, 3층은 집으로 구성된다. 스튜디오의 경우 주거지에 있기 때문에 소음 차단에 완벽을 기해야 함과 동시에 관객에게는 열려 있어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 있었다. 김한중 소장은 방음도어를 제작하고, 천장을 계단식으로 설계해 소리가 점차적으로 소거되게 하는 등 방음에 많은 공을 들여 설계했다. 그 덕분에 건물의 모든 문을 닫으면 스튜디오의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 또 카페 한쪽 면은 유리, 복도엔 폴딩창을 설치해 1층 어디에서든 지하를 내려다볼 수 있게 하며 공간이 처한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했다. 부부가 브랜딩을 통해 선별한 단어들은 스튜디오와 카페의 마감재를 선정할 때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재료를 선정할 때 흔한 기성 재료가 아닌 날것에 가까운 것을 사용하려고 했어요. 바닥에 쓰인 포방전이 그 예죠.” 김한중 소장이 설명을 더했다. 포방전은 넓고 납작한 벽돌로 흙을 구워 만들어 특유의 거친 감도가 느껴지는 재료다. 2, 3층 거주공간은 상업 공간과 정반대의 디자인과 분위기로 연출했다. 외부를 향해 탁 트인 창문, 높은 천장이 주는 개방감, 주재료로 쓰인 나무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이 한데 어우러지며 방문객을 환대한다. “뮤지션은 끊임없이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할 거라 상상하고 디자인했습니다. 계단을 올라 현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주방이 등장하는데, 남의 집에 들어가는 느낌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전형적인 주방 모습을 덜어내려 노력했어요.” 한쪽 벽면에 길게 설치된 하부장은 주방 가구보다는 벽면에 부착된 수납장처럼 보인다. 손잡이나 유리 패턴을 달리해 거실과 주방을 은근하게 나눈 것도 눈에 띈다. 부부의 집은 뮤지션들의 대기 공간으로 사용될 만큼 다소 개방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모든 공간에 부담없이 들어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적인 공간은 둥근 나무 볼륨을 경계로 자연스럽게 분리하고, 거실은 한 단 낮춘 뒤 재료를 달리했다. 이 때문에 거실에 내려가기 전 잠시 멈춰 서게 하는 심리적인 효과가 생겼다. 벽이나 문을 통해 물리적으로 공간을 막는 방식이 아니라 흥미롭다. “작업실에 당도하는 동안 머릿속의 아이디어가 사라지곤 했는데, 지금은 계단만 내려가면 스튜디오가 있어 음악 작업을 하기에 최적이죠.” 이곳은 요즘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카페 한쪽에 마련된 DJ부스에서 자유롭게 디제잉을 하는 이도, 지하에서 베이스와 드럼을 연습하는 이도 있다. 비정기적으로 공연도 진행 중이다. 부부는 벌써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는 듯하다. 이곳을 중심으로 레이블과 관련된 공간을 하나 더 오픈하고 싶다고. 목표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부부의 모습에서 공간이 주는 순간, 순간의 만족감 그리고 그것이 모여 완성된 단단한 힘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