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에서 40년 넘게 활동하며 우리 고유의 색을 담은 단색화와 전통 민공예품을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는 박여숙 대표. 예술에 대한 그녀의 애정 어린 삶을 엿볼 수 있는 아주 사적인 집을 방문했다.
오래된 빌라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들이 집 안을 빼곡히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그간의 삶에서 발견한 귀중한 물건들을 고이 모셔둔 박물관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무심하게 툭툭 놓여 있는 거장들의 작품과 우리나라 공예품들이 일열 맞춰 전시되어 있는 모습에 경외심마저 드는 이곳은 1983년부터 화랑을 운영해온 박여숙 대표의 집이 다. 집 안을 찬찬히 둘러보고 식탁에 마주 앉은 순간,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궁금해졌다. “지금 제 예술적 감성은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미국 선박 회사의 한국 지사장이었던 아버지는 아름다움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셨어요. 옷도 잘 차려 입으시고, 멋쟁이셨죠. 당시에는 보기 힘든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분이셨어요.” 박 대표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이야기했다. 이러한 가정 환경은 자연스럽게 그의 진로에도 영향을 끼쳐 미술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 시절, 이경성 미술관장의 조수로 일하게 되면서 예술계에 첫발을 들였다.
이후 건축 잡지 <공간>의 취재 기자로 일하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예술가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공간>이라는 잡지가 수익성이 거의 없는 잡지다 보니 완전 박봉이 었어요.(웃음) 그래도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이를 감내하며 많은 것을 배웠어요. 당시 예술인들과 깊은 교류를 나누며 예술 전반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죠.” 박 대표가 말했다.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민예와 공예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 역시 그때부터였다. “20대 초반부터 아현동과 인사동을 누비며 골동품들을 수집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경주에서 신라 와당을 500원 주고 산 것이 제 첫 번째 컬렉션이에요. 대학을 졸업한 후 에도 매일같이 민예품을 탐구하는 나날을 보냈어요.” 이러한 경험은 후에 화랑을 운영하는 데 큰 자산이 되었고, 박여숙화랑에서는 우리나라 단색화 거장들의 작품을 비롯한 현대 예술품과 공예품들을 조화롭게 선보이고 있다.
화랑은 작가가 작업에 열중할 환경을 만들어주고 세상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라면, 사적 공간인 집은 그야말로 박 대표가 살아온 시간과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공간이었다. “여기 이사 온 지는 10년 정도 됐다고 칩시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이 커다란 집(231㎡)에는 그녀가 수집해온 민공예품과 작품이 가득했다. “집이 막 번쩍하게 화려한 걸 좋아하지는 않거든요. 단순하고 소박하게 꾸미면서도 작품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만 일부 공사해서 살고 있어요.” 무엇 하나 예사롭지 않은 것이 없는 가구와 소품들은 모두 여행을 다니며 하나씩 사 모은 것이다. 호주, 핀란드, 이탈리아 등지에서 수집한 빈티지 가구와 아프리카 모티브의 소품들이 신기하게도 한국적 요소와 이질감 없이 잘 어우러진다. “예술을 가까이 두고 생활에서 즐기는 걸 좋아해요. 손님들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감상하는 게 제 일상이에요. 작은 방에 꾸민 차실은 제 놀이터와도 같은 공간이에요. 디스플레이도 바꿔 보고 차도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요.” 박 대표의 집은 ‘예술은 가까이 두고 생활 속에서 즐기는 것’이라는 그녀의 철학을 오롯이 반영하고 있었다. 전통 공예품을 현대 생활 속에서도 이어가고자 하는 박 대표의 갈망은 결코 수집 개념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백동 공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며 입을 열었다. “화랑 2층에서 ‘수수덤덤’이라는 이름의 공예 공간을 소극적으로나마 사용하고 있어요.
제 주업은 화상이라 현대 미술을 다루고 있지만 실생활에서 정말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최근에는 한국적인 공예품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조선의 미감을 그대로 이어가는 백동 공예를 장인과 함께 제작하고 있어요. 앞으로 화랑에서 전시할 계획이고요. 한국의 민예품은 ‘정교하다’의 수준이 아니에요. 어수룩하게 만들어지지만 단순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또 혼자서만 두드러지게 주장하지 않거든요. 일본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말했듯이 한국 사람들의 솜씨는 인간의 힘으로 한 것 같지 않아요. 그가 “신의 손이 약해져서 이토록 아름다운 걸 만들지 않았느냐”는 극찬을 했는데, 그 말에 완전 동의해요.” 박 대표는 소박하고 실증이 나지 않으며 그저 덤덤한 미학을 느낄 수 있는 우리 예술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예술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한국 미술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박여숙 대표가 앞으로 화랑을 통해 보여줄 세계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