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비사비는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뜻하는 일본어로, 프랑스 인테리어 디자이너 엠마뉴엘 시몽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이는 단어다. 날것의 미학을 부드럽고 감각적으로 표현하며, 쌓아온 능력을 마음껏 발휘한 그녀의 새로운 파리지엔 아파트를 만나보자.
2017년 ‘디자인 파라드 툴롱 Design Parade Toulon’ 공모전에서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된 엠마뉴엘 시몽은 당시 자연에서 온 소재를 사용한 새로운 미학적 접근 방식으로 심사위원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 후로 다음해에 에비덩 드 보테 Evidens de Beauté 스파 매장, 리베르테 Liberté 제과점 등 상업 프로젝트를 연달아 진행하며 ‘와비사비’ 철학을 기반으로 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발전시켜오게 된다. 올해 공사를 마치고 이사한 파리2구의 아파트는 이런 철학의 집결지다. 그동안 쌓아온 모든 감각과 기술력이 반영되어 완벽하게 디자이너의 철학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분명한 오스마니안 건물인데 이를 상징하는 어떠한 몰딩도 그 흔한 벽난로도 찾을 수 없다는 게 신기하다. “원래 있었던 몰딩이 복원이 어려울 정도로 손상된 상태라 뜯어내고 새롭게 보수를 해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이 시대에 지어진 건물 특유의 높은 천장고를 원했지만 장식적인 몰딩을 유지하기는 싫었거든요. 천장의 높이, 창문 사이즈, 채광은 제가 컨트롤할 수 없기에 이 세 가지 요소만 부합한다면 과거의 것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기보다 재창조하는 컨셉트로 공간을 다시 꾸미고 싶었어요.” 현관에 들어오자마자 긴 터널을 마주하는 구조는 매우 신선하다. 어두운 터널의 시작에는 (아마 이 집에서 가장 화려한 패턴을 가진) 현관 바닥이 방문객을 맞이하는데, 비슷한 톤과 컬러가 지배하는 이 집에 장인이 수작업으로 제작한 천연 스톤의 모자이크가 햇살처럼 반짝인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재미있게도 거실도 침실도 아닌 이 현관이에요. 모자이크 작업에 공을 많이 들였거든요.
노란색 대리석을 손으로 잘라 표현한 패턴은 반대편 거실에 도착해서 느낄 수 있는 햇살을 기대하게 해요.” 엠마뉴엘의 말처럼 방으로 연결되는 문이 있는 터널을 지나면 환한 햇살이 가득한 넓은 거실과 오픈형 주방이 펼쳐진다. 아파트 전체 면적(120㎡)에 거실을 60㎡로 분배할 만큼 주방과 거실은 이 집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엠마뉴엘 시몽 가구 컬렉션으로 대부분 채워진 공간은 마주보도록 배치한 두 개의 대형 소파 ‘노마드 Nomad’를 중심으로 열 명 정도 둘러앉아 식사할 수 있는 다이닝 테이블 ‘티가 Tiga’, 세라믹으로 제작된 캐비닛 바 ‘라쿠- 야키 Raku-Yaki’가 존재감을 발휘한다. 차분하고 섬세한 컬러팔레트는 전체적으로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가운데 깊이감 또한 느낄 수 있다. 이는 자연의 재료가 가진 독자적인 질감 덕분이다. “가구를 제작하거나 인테리어에 사용된 자재들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수작업으로 완성된 손맛이 느껴지는 마감이에요. 기계로 생산된 것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살아 있는 질감은 똑같은 매끈함이라고 하더라도 분명히 다르거든요.” 그런 이유로 몇 가지 안 되는 컬러가 집 안 전체를 덮고 있는 듯하지만 자세히 디테일을 살펴보면 하나하나 다른 크랙을 가진 타일, 조각을 하듯 마무리된 비정형의 테이블 모서리, 벽마다 사용된 다른 질감의 페인트 등 숨은그림찾기처럼 조금씩 다름을 발견하게 된다. 색감의 조화를 완벽히 이루기 위해 주방의 경우 모든 전자제품을 숨기는 것이 중요했다. 캐비닛을 제작해 그 안으로 배치하고 아일랜드 상판과 마주보는 싱크대의 벽은 둥근 원형의 장식장을 제작해 공간과 어울리는 세라믹 접시와 책, 조각 작품을 배치했다. 숨기는 것의 미학 또한 공간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이다.
주로 자연에서 영감을 받는 엠마뉴엘 시몽의 디자인은 곡선이 주를 이룬다. 도넛 모양의 하이 체어 바바 Baba, 젤리피시 Jellyfish 램프 등 위트가 느껴지는 디자인부터 오르마 Orma 테이블처럼 비정형의 자유로운 곡선 작업까지 다양하다. 침실에서 만날 수 있는 물결 형태의 침대 상판 또한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로서 단순하고 유치할 수 있는 형태를 적절한 재료와 마감으로 우아하게 마무리하는 재주가 남다르다. 또 다른 특징을 뽑자면 촉감을 느끼기 위해 만지고 싶은 충동이 들게 한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디자이너 자신도 사람들이 만지고 싶어 하는 모습을 목격하면 자연과 친밀해지는 시간처럼 느껴져 매우 행복하다고 말한다. 집에서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곳은 당연히 거실이다. 넓은 다이닝 테이블은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에 완벽하지만 가끔 직원 회의 테이블로 쓰인다. 휴식이 필요할 때면 캐비닛 바와 푹신한 소파가 좋은 친구가 된다. 럭셔리라는 이름 아래 탄생되는 비싸고 화려한 결과물과 반대로 경험을 부르는 디자인은 압도적인 관심보다 세련된 정교함으로 삶의 균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와비사비 철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프랑스인인 제가 표현하는 와비사비에는 당연히 두 문화가 공존한다고 생각해요. 소파의 경우 나무 프레임이 일본식으로 미니멀하게 표현되었다면, 소파에 사용된 패브릭은 프랑스 공방의 전통 기법으로 제작되니까요. 또한 제가 사용하는 둥근 형태의 디자인 또한 동양에서 찾아보기 어렵죠. 하지만 자연으로부터 얻는 편안함의 철학은 똑같이 전달되리라 믿어요. 자연이 가진 비정형의 아름다움은 인간이 컨트롤할 수 없으니까요. 완벽하지 않음이 주는 편안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디자인에 적용하는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와비사비 철학이에요.” WEB emmanuellesim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