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정신으로 가득 찬 잉그리드 도나의 파리 아파트.
잉그리드가 제작한 가구와 소품들로 채워진 거실.
집이란 원래 주인의 취향을 닮기 마련이지만 조각가이자 디자이너인 잉그리드 도나가 사는 집은 그녀가 창조한 하나의 예술 작품과 다르지 않다. 파리 마레지구 중심가의 건물 2층에 위치한 정원이 딸린 독특한 구조의 아파트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잉그리드 특유의 우아함이 반긴다. 작품을 만들 듯이 집 안 전체를 직접 손으로 매만져 거대한 예술품처럼 느껴지는 그녀만의 작가 세계가 가장 완벽하게 존재하는 곳. 현재 장식 예술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살아 있는 예술가의 숨결이 가득한 정교한 곳에 아시아 미디어로는 최초로 <메종>을 초대했다. 자녀들과 가까이 살고 싶어 2016년 구입해 이사 왔는데 넓은 테라스와 정원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파리 시내에서 발견하기 쉽지 않은 정원이 딸린 아파트이기도 하지만 2층에 떠 있는 듯한 구조가 흥미로웠다. 이는 개인적으로 꿈꾸던 프랑스식과 영국식 정원의 유쾌함을 모두 갖춘 파리 저택의 분위기를 만들기에 적합했다. “건물의 입구와 올라오는 계단이 오래되고 보기 싫었지만, 천장고가 높아 가능성이 많은 내부 공간과 정원이 좋았어요. 대신 1970년대 이후로 보수를 하지 않은 집이었기에 인테리어 하는 데 3년이라는 대규모 공사 기간이 필요했죠. 벽을 트고, 창틀을 모두 바꾸고, 천장을 뜯어내는 등 일이 정말 많았어요.” 침실 천장에는 처음 건물 지을 때부터 존재했한 노출된 서까래가 있는데, 17세기에 만들어진 프레스코 스타일의 그림이 서까래에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이 과거의 흔적을 큰 매력으로 여긴 잉그리드는 거실과 다이닝룸의 천장 또한 침실과 동일하게 가짜 서까래 장식을 설치한 후 자신이 직접 패턴을 그려넣었다.
잉그리드의 대표작 중 하나인 <클림트Klimt 캐비닛>.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소파 위에서 포즈를 취한 잉그리드 도나.
“서까래 장식을 다른 공간에도 연장시키기로 결정하고 나니 아들이 내게 그러더군요. 기존 오리지널 프레스코가 아닌 엄마의 패턴을 그려넣으라고. 그래서 내가 직접 그림을 그려 천장을 장식했어요.” 잉그리드의 아들은 카펜터스 워크숍 갤러리의 공동 창업자 줄리앙 롬브라이 Julien Lombrail다. 천장에는 그녀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반복되는 원형의 복잡한 패턴으로 가득하다. 천장 아래에는 직접 디자인한 소파와 러그, 다이닝 테이블, 청동으로 제작된 촛대와 조각 작품 등 잉그리드 도나의 세계가 펼쳐진다. 흥미로운 것은 가구뿐만 아니라 시선이 머무는 모든 곳에 그녀의 손길이 닿았다는 점이다. 벽지, 문, 조명, 붙박이장 손잡이, 거울, 문고리, 심지어 열쇠까지 직접 디자인해 커스텀 제작했다. 이로 인해 그녀의 집에 대한 애정과 예술가 정신에 존경심이 생길 정도다. 친구이자 카펜터스 워크숍 갤러리 소속 아티스트 프레데릭 몰렌쇼 Frederik Molenschot가 공간에 맞춰 특별히 디자인해준 샹들리에와 직접 디자인한 대형 테이블이 놓인 다이닝룸은 그녀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공간이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파리 외곽에 있는 갤러리의 워크숍에 가서 12명의 뛰어난 장인들과 함께 작업을 한다. 그리고 나머지 날에는 작업실과 아파트를 오가며 시간을 쪼개 스케치, 프로토타입 제작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집은 휴식하는 장소인 동시에 창작을 위한 장소이며, 전체 팀이 한 자리에 모이는 만남의 장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고전적인 사무실이 아닌 따뜻한 집에 모여 일하고 어울리는 것을 선호하는 잉그리드는 이런 방식이 창작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디자인한 다이닝 테이블 주위에 친구와 동료, 그리고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프레데릭 몰렌쇼가 이 공간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샹들리에와 잉그리드 도나 디자인의 대형 테이블이 놓인 다이닝룸. 의자는 피에르 잔느레 빈티지.
아끼는 오브제, 초기 브론즈 작품, 가족사진 등이 모여 있는 작업실 책상.
잉그리드가 아티스트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조금 특별하다. 결혼 후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정원의 흙으로 조소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취미생활로 작업을 이어왔고, 훌륭한 아트 컬렉터이던 남편은 아내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뭔가 특별한 것이 보인다며 창작활동을 지지했다. 흙과 종이로 만들던 조각품들을 청동으로 제작하기 위해 주조소로 가져간 것도 남편이었다. 그러면서 집에서 실제 사용할 가구를 제작하는 일로 연결되고, 가끔 집에 찾아오는 갤러리 오너들은 그녀가 만든 가구와 작품들을 보며 전시를 제안했다. 그렇게 40세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작가로서의 커리어는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을 간직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오늘날 피터 마리노, 톰 포드, 브래드 피트 등 유명인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난 전문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아니에요. 하지만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요. 내가 사는 공간에 필요한 게 뭔지,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지요. 그런데 집을 꾸미면서 마음에 딱 드는 문고리나 커피 테이블 같은 소품은 찾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직접 제작하기 시작했죠. 물론 가구를 제작하기로 마음먹은 초반에는 그게 얼마나 복잡한 일이지 몰랐어요. 수많은 장인의 손길이 필요하고 기간도 장인에 따라 최소 몇 개월씩 걸리니 난감했죠. 그래서 청동에 더 애정을 갖게 된 것 같아요. 한 가지 재료로 한 번에 제작이 가능하니까요. 하지만 청동이라는 재료 특유의 차가움에 반감이 있었기에 이를 중화시키고자 최초의 문명 시대에 사용했을 법한 패턴을 개발해 질감을 추가했어요.” 차가운 청동이라는 재료를 아르데코 스타일의 회화적 접근으로 다루는, 정교함의 끝을 보여주는 작업에 대한 영감은 아버지가 사는 레위니옹섬에서 시작되었다.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 문화가 융합된 레위니옹섬의 풍부한 역사는 그녀의 창작 과정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그곳의 자연이 가진 생생한 컬러와 매혹적인 질감이 창작 과정의 시발점이며 에스닉한 패턴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패턴들은 천장과 벽, 가구뿐 아니라 커튼과 쿠션에서도 발견된다. 하지만 혼잡하다거나 과하다는 느낌은 없다. 트렌드에 얽매이지 않는 잉그리드 도나의 스타일은 시간을 넘나드는 타임리스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WEB ingriddonat.com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은 <여인상으로 된 기둥의 작은 테이블 Petit Table aux Caryatides GM>, 중앙에 걸린 그림은 아르데코의 상징적인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 Tamara de Lempicka 작품.
침실 한쪽에는 초기 작업인 <14개 서랍장 Commode 14 Tiroirs>과 아프리카 조각품을 볼 수 있다.
17세기 프레스코가 남아 있는 침실 천장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