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층 카페의 압구정동 쪽 야외 정원. 시야를 거스르는 높은 빌딩 없이 바람과 하늘을 누릴 수 있다. 2 다음 세대의 퀸마마를 꿈꾸는 디자이너 윤한희. 3 건축가 조병수가 작업한 퀸마마마켓의 외관. 콘텐츠를 담는 그릇의 역할을 하기 위해 채우기보다 비워낸 공간이면 좋겠다는 것이 윤한희 대표의 요청이었다.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퀸마마마켓의 첫인사 한국패션계를 대표하는 스타 디자이너 커플 강진영과 윤한희가 자신들이 낳고 키운 브랜드 오브제를 떠난 지 7년이 지났다. 일을 좇아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분주하게 살았던 날들을 접고 그들에게 찾아온 갑작스럽고 긴 휴가는, 정작 방치됐던 나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처음부터 다시 이해하고 발견하는 데 집중하도록 만든 시간이었다. 마치 어제 떠났던 사람들처럼 어떤 이물감도 없이 두 사람이 돌아왔다. 현실과 감성의 절묘한 조화로 오브제 신화를 이뤘던 환상의 파트너가 자신들을 지켜봐온 이들과 재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은 라이프스타일 셀렉트숍 퀸마마마켓이다. 만만한 뒷동산 하나 없어서 삭막하기 짝이 없는 도산대로 인근에서 도산공원은 그래도 죽으라는 법 없이 뚫려 있는 유일한 숨구멍이다. 퀸마마마켓은 도산공원 바로 옆집이다. 건축가 조병수의 작품인 이 건물의 꼭대기 층인 4층 통창으로 내다보면 우거진 숲이 오히려 공원 안에서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다가온다. 철제 빔과 유리로 마감한 박공지붕 너머 하늘을 볼 수 있는 구조 탓에 식물원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비교적 야트막한 건물이 대부분인 압구정동 쪽으로도 통창이 나 있고, 그 밖으로 널찍한 옥상정원이 있다. 공간 전체의 쓰임도 설명하기 전에 무턱대고 바깥 전경부터 읊어대는 것은 퀸마마마켓이 도시의 삶을 위안하는 자연의 힘에 대한 믿음을 바탕에 둔 공간이기 때문이다. 효율과 이윤, 소비, 경쟁의 중심인 강남 한복판에서 그로부터 한발 물러선 혹은 한발 나아간 무엇을 찾는 것이 이곳의 궁극적인 목표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퀸마마마켓을 이끌어갈 사람은 윤한희 대표다. 그녀가 이런 생각을 정리하게 된 것은 LA에서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패션을 공부했던 두 사람은 오브제와 헤어진 뒤 LA를 자주 찾았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음식을 싸가는 뉴요커들과 달리 LA에서는 레스토랑에서 고스란히 그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을 만났다.1,2 식기를 판매하는 지하 매장 바깥으로는 자연광이 떨어지는 선큰 테라스가 있다. 무심한 듯 무성해지도록 지켜봐준 덕에 식물들이 풍성하고 자연스럽게 자랐다. 3 퀸마마마켓의 층별 구성은 효율성을 따지기보다 윤한희 대표의 직관과 주관을 따랐다. 4,5 현재 가드닝 제품을 전시 중인 1층 공간. 매번 다른 테마의 전시가 이 공간에서 열릴 예정이다.
“우리는 왜 뉴욕에서 빨리 먹고 빨리 사무실에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에 싸여 살았을까? 그러니까 뉴욕은 젊음의 도시인 것 같고, 웨스트 코스트는 그 이후의 도시인 것 같다. 바람도 불고, 날씨도 따뜻하고, 조금만 나가면 바다가 있고, 굉장히 도시적인 삶이기는 하지만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거기 있더라. 아, 결국은 자연이 가까이 있으면서 도시를 벗어나지는 않는 것, 이게 어번 라이프구나. 내 몸이 필요로 하는 건 그린이구나. 그래서 우리가 컨셉트를 잡은 게 어번+그린+라이프스타일숍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조금은 느려도 되고, 조금은 한가해지고 싶고, 조금은 편안하게 널브러져 있는 라이프스타일까지도 한 공간에 모아보면 너무 재미있겠다. 퀸마마마켓은 그렇게 시작됐다.” 많은 커리어우먼이 그런 것처럼 윤한희 대표 역시 집보다는 일에 무게를 두고 살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화분도 가져다놓고, 집도 꾸며놓고, 밥솥도 새로 사면서 느껴지는 재미가 얼마나 큰지를 뒤늦게 배웠다. 일상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은 신세계였다. 수십 년간 일하면서 얻은 여러 경험을 염두에 두면, 여기 오는 사람들은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피해갈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공간을 꾸렸다.1,2 메자닌 층은 향초와 비누, 디퓨저 등 프래그런스 제품으로 꾸몄다. 긴장된 하루를 이완시키고 평안을 주는 데 향기만큼 쉽고 효과적인 것도 드물다. 3,4 디자이너 강진영의 진케이 Gene Kei를 위한 2층 공간. 어번 보헤미안을 디자인 코드로 잡았다. 뿜어내는 멋보다 배어나는 멋을 느낄 수 있다.
선큰 Sunken 테라스에서 들어오는 자연광과 정돈된 정원보다 숲에서 만난 것처럼 내키는 대로 자란 식물들이 아늑한 분위기를 만드는 지하 1층은 식기와 가드닝에 필요한 식물과 화분 등을 판매하는 공간이다. 건강하고 바른 음식에 대한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셰프를 만나게 되면 레스토랑도 열 예정이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일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함께하기 어려울 것 같아 오픈을 서두르기보다 제대로 된 만남을 기다리는 중이다. 1층은 정원이자 퀸마마마켓이 선정한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들의 전시가 이뤄진다. 재능 있는 작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을 인큐베이팅하는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다. “퀸마마는 말 그대로 여왕마마다. 점점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이냐에 대해 진지해진 부분이 있다. 우리는 가로수길에서 열다섯 평 되는 작은 가게로 시작했고 그게 지금 이 공간이 됐다. 우리가 굉장히 큰 혜택을 받은 디자이너구나. 알게 모르게 너무 많은 걸 받게 됐구나. 이제 우리는 뭘 해야 할 사람이지? 깊이 고민하게 된다. 퀸은 아주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 절대적인 권력이 아주 선하게 쓰여지면 아주 좋을 것 같았다. 디자이너 레이 카와쿠보와 진태옥 선생님, 동화 작가 타샤 튜더처럼 닮고 싶은 어른들. 그렇다고 하면 내 후배들에게는 누가 퀸마마일 수 있을까. 그렇게 되고 싶다. 우리가 바른 먹거리, 바른 소비, 이런 아주 단순한 것부터 시작을 해보자.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패션이든, 디자인이든, 식물이든 내가 속해 있는 분야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그런 퀸마마들이 많아진다면 그리고 그게 모여서 하나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운동이 되고 그러다 보면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아지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1 피팅룸은 옷만 갈아입으면 되는 곳이란 편견을 버렸다. 커다란 화분들을 들인 3층 피팅룸. 박진우의 스파게티 샹들리에로 포인트를 줬다. 2 중용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겠다는 뜻으로 퀸마마마켓의 로고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각지지 않은 원형이 됐다. 3,4,5 실용성을 강조한 퀸마마마켓의 자체 브랜드 퀸마마 스튜디오와 각종 디자인 제품을 판매하는 3층 매장.
메자닌 층은 향초, 디퓨저, 보디 용품 등 몸과 마음을 쉬게 해주는 향 제품들로 구성했고, 2층은 오롯이 강진영의 새 브랜드 진케이 Gene Kei를 위한 공간으로 마련했다. 그는 어번 보헤미안을 디자인 코드로, 그간 더 깊어진 디자이너로서의 철학을 이 공간에서 구현해 선보일 것이다. 3층은 퀸마마마켓의 자체 패션 브랜드 ‘퀸마마 스튜디오’와 더불어 국내외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들의 제품을 함께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꼭대기 층의 공간은 연남동에서 핸드 드립 커피로 잘 알려진 메뉴팩트가 들어온다. 커피 한잔 값이면 노트북 가져다놓고 일도 하고, 농땡이도 치고 식물들 틈에서 쉬다 갈 수 있는 곳으로 운영된다.1,2 철제 빔과 유리로 마감한 박공지붕과 흔하게 볼 수 없는 식물들이 어우러져 식물원 같은 느낌을 주는 4층 카페. 연남동 메뉴팩트의 정성스런 드립 커피를 마실 수 있다. 3,4 한쪽으로는 압구정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야외 정원이, 다른 한쪽으로는 녹음이 우거진 도산공원이 보인다. 가을에는 어떤 빛깔을 선사할지 벌써 궁금해지는 풍경이다.
“살아보니까 그때는 그렇게 재밌고 아찔했던 게 1년만 지나면 다 잊어버리게 되더라. 아, 하루하루의 일상이 소중하다는 게 정말 중요한 거구나. 이 공간이 나를 덮어씌우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이렇게 해놨는데, 좋아해주신다, 그럼 더 잘해야지?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 거다. 이 공간을 오픈하면서 잘해야지 강박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오브제와 헤어졌던 경험을 했던 것처럼 무엇을 놓아야 할지 아는 게 훨씬 더 중요한 것 같다. 운명이란, 내가 쥐려고 하면 도망가고, 내가 놓는 순간,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는 거니까. 이 공간에 함몰되지 않겠다는 게 내 영원한 숙제다. 편의점 옆에 퀸마마슈퍼가 들어가서 예쁜 식물과 두부와 티셔츠를 팔고 라이프스타일이 편의점에 들어가서 경직되지 않는 것처럼 내 삶을 조금이라도 좋은 가격에 꾸밀 수 있다면 그걸로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할 것 같다. 몸도 가볍고, 정신도 가볍다. 더 잘하려고 용쓰지 말자. 힘들면 오래 하겠어?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