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산드로 멘디니의 디자인을 보고 있자면 마치 원더랜드를 여행하는 듯한 환상에 빠져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그의 디자인에서는 21세기 세계적인 경제 불황기의 우울한 현실을 잠시 외면하고 밝고 희망적인 메시지와 웃음을 담아내려는 통쾌한 발상이 전해진다.
그가 남긴 명언 중 “좋은 디자인이란 시와 같고, 감성을 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미소와 로맨스를 건네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런 디자인 철학을 읽을 수 있는 <알레산드로 멘디니- 디자인으로 쓴 시> 전시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 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다. 멘디니는 1970~80년대 세계 디자인계의 대표적인 급진주의자로 활동하며 기능주의를 비판했다. ‘독창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포스트모더니즘 세계관을 반영해 리디자인 Re-Design을 주창한 인물이다. 세계적인 건축 전문지 <카사벨라>와 <도무스>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발굴해 이탈리아 산업과 연계하는 등 이탈리아 디자인과 산업을 동시에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디자이너로 본격적인 활동을 한 것은 그의 나이 58세. 현재는 건축가인 동생 프란체스코와 함께 아틀리에 멘디니를 운영 중이다. 전시장에는 멘디니를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의 개척자로 만들어준 대표작인 프루스트 의자를 비롯해 트리엔날레 밀라노 디자인 뮤지엄에서 대여한 150점의 드로잉,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비사짜 재단 소유의 귀한 작품들도 볼 수 있다. ‘스토리’는 멘디니 디자인의 핵심으로 전시장 곳곳마다 제품과 거기 얽힌 이야기를 함께 향유할 수 있다. 희망적인 메시지와 웃음을 담은 디자인 뒤에 숨겨진 한 편의 시를 즐기는 것이 이번 전시를 제대로 관람할 수 있는 열쇠.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여전히 꿈꾸는 소년 같은 알레산드로 멘디니를 전시장 현장에서 만났다.
‘안나 G’ 와인 오프너.
한국에서 머무는 일정이 길다. 손자와 함께 가본 곳은 있나. 안타깝게도 전시장 일정이 바빠서 함께 간 곳이 없다. 내 딸의 가족들과 함께 왔는데 그들은 경복궁과 덕수궁을 둘러본 것으로 안다. 전시장 일정이 끝나면 광주비엔날레와 순천정원박람회도 참관할 예정이다.
서울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있나. 도시 구석구석 색깔이 많은 도시 같다. 아기자기한 밀라노와 달리 스케일이 크다. 예스러운 감성이 느껴지는 지역이 있다면 반대로 빌딩 숲이 높은 지역들이 오버랩되어 있어 상반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도로에 까만색 자동차들이 많이 다니는 것이 인상적인데 그 차에 탄 사람들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처럼 보였다.
1 기능주의 디자인에 대한 반감을 상징하는, 과도하게 기울어져 있는 스키볼라보 체어. 2 지오메트리카 프루스트 체어.
전시 도록을 읽어보니 어린 시절 겪었던 전쟁(제2차 세계대전)이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하던데.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고 한다는 것은 그 안의 문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크기 때문이다. 행복한 디자인, 남을 즐겁게 하는 디자인을 한다고 해서 내 자신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1970~80년대 세계 디자인계의 대표적인 급진주의자였다. 지금과 같은 유머와 동심은 찾아볼 수 없었는데 디자인의 스타일을 바꾼 계기는 무엇인가? 사실 시대적인 변화에 영향을 받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이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다. 지금도 내가 30년 전에 디자인했던 것들이 재해석되고 있으니까.
1,2 멘디니의 드로잉 작품들.
당시 유행했던 기능주의를 반대했는데 예쁘기만 하고 쓸모없는 것도 문제이지 않나. 디자이너는 기능을 부정할 수 없다. 그 가운데서 나는 항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유토피아를 지향했다.
대표 작품인 ‘프루스트 체어’와 ‘안나 G’ 와인 오프너는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나. 프루스트 체어는 내가 좋아하는 소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그에게 바치는 경외의 작품이기도 하다. 두 팔이 벌어지는 ‘안나 G’ 와인 오프너는 여자 친구가 기지개를 켜는 것에서 착안했다.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한 멘디니.
오랫동안 유럽을 대표하는 건축 잡지 편집장으로 일하고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DDP를 건축한 자하 하디드도 당신이 발굴했다. 1970년부터 1985년까지 건축 전문 잡지 <카사벨라>와 <도무스>에서 편집장 일을 했다. 자하 하디드와 프랭크 게리는 <도무스>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이들이다.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다행히도 내가 만난 사람들이 좋은 사람인가를 떠나서 나한테 많은 에너지를 주었다. 지금은 그와 반대되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기도 하다.
어떤 편집장이었나. 혹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등장하는 주인공 같은 사람이었나. 난 굉장히 차분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다. (웃음) 하지만 일을 할 때는 내 주장을 펼치는 편이다.
1 라문에서 선보인 아물레토. 2 이탈리아 전통 다자인을 재해석한 작품들.
전시장 곳곳에서 직접 쓴 시가 눈에 띈다. ‘나는 잘 모르겠네 I Don’t Know Whether’라는 제목의 시가 인상 깊다. 사실 지금도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잘하는 것인지, 실수를 하는 것은 아닌지 언제나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 불확실성을 품으면 무언가를 순수하게 탐구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미 한 일은 되돌릴 수 없다.
시는 언제 쓰는가? 전시장에서 선보인 시는 몇 편 되지 않는다. 내 책상 서랍에는 시를 쓴 종이가 아직도 많다. 무엇을 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을 때, 머리가 멍할 때 펜을 든다.
알레시에서 생산되고 있는 여러 제품을 모아 회전목마처럼 다자인한 지오스트리나.
당신과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불리는 미켈레 데 루키도 인간을 향한 디자인을 추구한다. 맥락은 같아 보이지만 표현 방식이 다르다. 나보다 딱 20년 젊은 친구다. 그는 나처럼 쌍둥이이기도 하다. 미켈레 데 루키는 내추럴한 소재를 사용해 자연을 표현하는 반면, 나는 르네상스 시대를 바탕으로 다양한 소재를 섞은 디자인을 추구한다. 미켈레 데 루키 사무실에서는 그가 보스이고, 우리 사무실에서는 나보다 더 보스 같은 사람이 많기 때문에 난 대장 역할을 하지 않는다. (하하)
어떤 인터뷰를 보니 건축가인 동생 프란체스코와 함께 디자인한 그로닝거 미술관을 가장 자신 있는 디자인으로 손꼽았다. 아틀리에 문을 열었던 당시 디자인했던 작품이라 애정이 간다. 네덜란드에 건축된 미술관의 부지를 처음 봤을 때는 삭막한 회색 도시였다. 클라이언트들은 이탈리아의 에너지와 색깔이 드러나는 공간을 원했다. 건축을 한 뒤 인테리어는 필립 스탁, 미켈레 데 루키 등을 영입해 함께 작업을 했다. 건축은 우리가 했지만 어떻게 보면 이곳은 건축가들의 컬렉션이라고 말할 수 있다.
1 말을 탄 기사를 형상화한 카발리에레. 2 이탈리아의 포스트모더니즘 가구 브랜드 구프람과 협업한 안락의자.
손자를 위해 디자인한 조명 아물레토가 한국에서 인기다. 라문에서 디자인 의뢰가 들어왔을 때 8개의 스케치를 제안했다. 손자와 태양, 달, 지구 이야기를 하던 중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원형 디스크들이 행성처럼 날아다니는 것을 상상했다. 조명의 빛이 손자를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디자이너들은 종종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다고 한다. 당신은 어떤가? 자연은 머리로 생각하지 직접 경험하는 것을 즐기지는 않는 편이다. 동생 프란체스코는 자연을 가까이 두고 즐기며 산다. 그는 멋진 정원을 가지고 있고 곧잘 가꾼다. 내 별장은 산속에 있는데 멋진 공간이고 정원도 크다. 하지만 자주 가지 않는다. (하하)
태어나서 한번도 싸워본 적이 없다는 건축가 프란체스코 멘디니는 형의 든든한 조력자다.
사는 집도 유머와 천진난만함으로 가득한가. 내가 디자인했던 제품들이지만 어떤 때는 페어장에서나 만날 수 있다. 아틀리에와 연결되어 있는 집은 굉장히 심플하다. 가구들은 완제품이 아니거나 작동되지 않는 샘플들로 가득하다.
성품도 작품도 유머러스하다. 비결이 뭔가? 조급함을 누르고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다.
1,2 편잡장으로 일할 때 펴낸 건축 잡지 <카사벨라>와 <도무스>. 3 기능주의를 무너뜨리는 실험성이 강했을 때 행한 퍼포먼스, 모누멘티노. 4 알키미아 그룹에서 함께 활동했던 알레산드로 구에리에로의 얼굴을 모티프로 한 네오 말레비치.
이탈리아 디자인계의 거장이라고 불리는데, 이런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미소를 지으며) 그냥 나를 웃게 만드는 말이다. (잠시 침묵 후) 내 일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디자인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 일을 하듯 내 일을 할 뿐이다. 디자인계의 대부고 거장이라고 이야기한다면 글쎄… 어색하다. 개인적으로 ‘내가 굉장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믿고 싶지 않다.
결국 당신이 지향하는 유토피아는 무엇인가? 우리는 자신의 행복에 절대 만족하지 못한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행복을 이루는 것이 유토피아가 아닐까.
1 거대한 크기의 프루스트 체어 앞에 선 멘디니. 2 네덜란드에 건축한 그로닝거 미술관. 3 성스러운 분위기의 리틀 카세드랄.
*<알레산드로 멘디니-디자인으로 쓴 시>전은 내년 2월 28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 전시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