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론칭한 모로소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파트리치아 모로소를 만났다. 창립자의 딸이자 사업가이기 전에 혁신적인 디자이너의 눈을 갖고 있는 그녀는 살아 있는 모로소의 철학이다.
한국을 찾은 모로소의 아트 디렉터 파트리치아 모로소
모로소 Moroso 창립자의 딸이자 현재 모로소 아트 디렉터인 파트리치아 모로소 Patrizia Moroso가 내한했다. 서울에 모로소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고 디자이너를 비롯한 한국 리빙 업계 인사들과의 만남을 갖기 위해서다. 창립자의 성을 딴 이탈리아 브랜드 모로소는 강렬한 개성과 색감으로 유명하다. 1970년대 모로소 2세대인 파트리치아 모로소와 그녀의 오빠인 로베르토 모로소가 브랜드를 이끌기 시작하면서 1952년 이탈리아의 우디네 지역에서 시작된 가구 사업은 급격히 성장했다. 특히 파트리치아 모로소는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협업하는 데 탁월한 능력과 안목을 가진 아트 디렉터로 모로소의 중심과도 같은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 Patricia Urquiola와 론 아라드 Ron Arad, 마크 뉴슨 Marc Newson 등의 디자이너와 시간이 흘러도 회자될 작품 같은 가구를 만들어왔다. 이번에 오픈한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도 그들의 가구를 만나볼 수 있다.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 디자인은 모두 이탈리아의 모로소 본사에서 디자인과 설계를 진행했으며 서울에 도착한 뒤 직접 스타일링과 가구 배치를 다듬었을 정도로 모로소에서는 자신들의 DNA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가구 하나쯤 집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모로소의 개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는 또 한번 국내 리빙 시장에 반향을 일으킬 것 같다. 오픈 전날, 모로소 가구가 놓인 플래그십 스토어의 한 코너에서 파트리치아 모로소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1 포스카리니의 르 솔레이 조명과 디아톰 의자를 매치한 1층 공간. 2 지하 1층에 연출한 디젤과의 협업 제품들.
어떻게 모로소 사업에 관여하게 됐나? 자발적인 참여였나? 이탈리아 우디네 지역에서 가구를 만드셨던 부모님의 사업은 번창했지만 유럽이 경제 위기를 맞으면서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했다. 부모님이 나와 오빠를 불렀고 모로소는 젊은 감각으로 새로워졌다. 모로소 브랜드 사업에 뛰어들게 됐을 때 ‘이게 내 운명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명이라고 표현한 그 당시의 경험은 어땠나? 디자인을 공부하던 내겐 유능한 친구들이 많았다. 마시모 요사 기니 Massimo Iosa Ghini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학생이었던 그와 함께 1987년 모로소의 다이내믹 Dynamic 컬렉션을 만들었는데 평범한 사각형이 아니었던 그 소파가 지금 모로소의 시작점이라고 본다. 나는 뭐든 시작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가’가 내겐 중요한 문제다.
많은 이들이 당신이 어떤 기준으로 디자이너를 선별하는지 궁금해한다.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점을 본다. 재능도 중요하지만 나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일로 만나는 사람이지만 말이다. 당신이 어떤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생각한다면 내겐 그 사람과 디자이너로서 일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과 같다.
모로소는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예술가를 발굴해 협업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예술가들은 어떻게 찾는가? 대학 학부 전공으로 아트를 선택한 나의 주변에는 많은 아티스트가 존재한다. 디자인과 예술 업계에 종사하는 친구들과 다양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런 관계를 통해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있다. 모로소의 첫 번째 협업 컬렉션을 진행했으며 멤피스 그룹의 일원이기도 했던 마시모 요사 기니 또한 나의 절친한 친구였다. 론 아라드,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 로스 러브그로브 Ross Lovegrove 역시 사업적인 협력 관계를 넘어 좋은 친구들이다.
1 모로소의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 2 가구 배치부터 벽지까지 모두 모로소 본사에서 디자인하고 스타일링했다.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그녀와 일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우르퀴올라는 모로소의 핵심 멤버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디자인 스튜디오의 어시스턴트였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작품을 보고 단박에 재능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한국은 여전히 미드센트리 시대가 인기다. 좋아하는 시대가 있나? 1970년대를 좋아한다. 그땐 모든 것이 자유롭고 디자이너들은 ‘how’가 아닌 ‘why’를 생각했다. 요즘은 디자인을 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1970년대에는 자신의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패기가 있었다. 자유롭고 아방가르드했던 1970년대와 같은 시기는 아마 다시는 없을 것 같다.
다소 보수적인 한국 인테리어에 반해 모로소의 가구는 예술 작품처럼 개성이 강하다. 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모로소는 회사 규모를 작게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대단한 성장과 엄청난 이익을 바라지 않는다. (웃음) 대신 모로소 가구를 좋아하는 마니아층이 생겨나길 바란다. 예를 들어,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 1층에 연출한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의 M.a.s.s.a.s. 소파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디자인 제품이다. 강렬한 컬러와 위트 넘치는 디자인이 망설여진다면 패브릭으로 약간의 위트를 준 정도의 제품은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서 모로소의 부스는 늘 인상적이었다. 페어에 참가할 때 부스 디자인은 누가 하는가? 모로소가 아끼는 디자이너이자 나의 친구인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가 국제적인 큰 규모의 페어 부스 디자인을 맡아왔다. 벌써 15년째 모로소 부스의 컨셉트와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아서 진행해왔다.
모로소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구는 무엇인가?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의 피오르드 Fjord 시리즈, 론 아라드의 미스핏 Misfits, 로스 러브그로브의 슈퍼내추럴 Supernatural 컬렉션을 좋아한다.
1 쌓을 수 있는 알루미늄 소재의 디아톰 Diatom 체어. 2 암체어 ‘클라리싸’.
여행을 통해 영감을 얻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가 있나? 런던의 V&A 박물관 V&A Museum, 밀라노 디자인 위크 동안 진행되는 트리엔날레 Triennale di Milano Design Museum의 전시, 파리에 위치한 파리 국립장식미술관 Musee des Arts Decoratifs, 암스테르담의 스테델릭 뮤지엄 Stedelijk Museum은 꼭 가봤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리빙 트렌드는 무엇일까? 대도시에서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한데, 앞으로 점점 집의 규모는 줄어들 것이다. 더 많은 전자 기기들이 집 안을 컨트롤할 것이며 기능적이고 상호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 갖춰질 것 같다. 미래 사회는 지금보다 더 힘들고 전투적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일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생활하기 편리하고 나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집이라는 공간에 집중할 듯하다.
모로소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한 단어로 표현하기는 정말 어렵다! ‘Not yet unity. But soon maybe!’ 정도로 얘기해도 될까.
가까운 미래에 출시하는 제품이나 협업할 디자이너가 있나? 2016년에 론 아라드와의 협업으로 밀라노의 모로소 쇼룸 리뉴얼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당신에게 한국의 모로소 플래그십 스토어는 어떤 의미인가? 이번 오픈은 한국의 건축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업게 관계자들을 알아갈 수 있는 중요한 시작점이다. 전 세계에 4개의 직영 쇼룸과 한국을 포함한 2개 국가와 파트너십을 통한 쇼룸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는 아시아에 오픈한 첫 번째 단독 쇼룸으로 여기까지 오는 동안 긴 여정을 거쳤다. 모로소의 뿌리인 이탈리아의 인테리어 스타일을 보여주는 공간인 동시에, 이런 모로소 스타일이 한국 소비자들에게 사랑받고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