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원동 대림상가에 있는 꼬마 by 블룸앤구떼. 테이크아웃 전문 요리를 판매하지만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찾는 이들이 제법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레스토랑과 카페, 브랜드숍이 들어서는 가로수길에서 블룸앤구떼는 10년 이상 버텨온 고목 같은 존재였다. 청담동에서 각각 베이커리와 플라워숍을 운영하던 조정희, 이진숙 대표가 만나 가로수길이 유명해지기도 전인 2004년에 이곳을 오픈하고 꽃과 빵이 어우러진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견인하며 가로수길의 번영을 도모했다. 온갖 브랜드숍이 난무하던 2012년에는 세로수길에 새로운 둥지를 틀며 터줏대감다운 면모로 가로수길의 숨통 역할을 해왔다. 블룸앤구떼의 10년 발자취에는 초창기 가로수길의 호젓함과 특유의 감성을 아끼고 지켜주고 싶어하던 사람들의 추억과 역사가 함께 녹아 있었다. 그러던 지난 8월, 블룸앤구떼가 가로수길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정들었던 가게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 섭섭했지만 약 4개월이 지난 지금, 각기 컨셉트를 달리한 세 곳의 공간으로 돌아온 모습에 섭섭함은 일순간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1 꼬마라는 이름과 잘 어울리는 귀여운 손 글씨 메뉴판. 주변이 모두 아파트라 엄마 손을 잡고 찾아오는 아이 손님도 눈에 띈다. 2,4 “가로수길의 그 블룸앤구떼가 이곳이 맞나요”라며 재차 확인하는 손님들이 있다. 블룸앤구떼를 동네에서 만나니 반갑고 놀라울 뿐이다. 3 빈티지 원형 테이블과 의자, 내추럴한 꽃, 빵 굽는 냄새. 위치와 규모만 바뀌었지 블룸앤구떼의 감성은 여전하다.
블룸앤구떼의 새로운 공간은 잠원동과 반포동의 아파트 단지 속 상가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먼저 잠원동에는 잠원역 부근의 매일종합상가 2층에 디저트와 음료를 주로 판매하는 카페가, 그 건너편의 대림상가 1층에는 테이크아웃 중심의 미니 델리카트슨이 있다. 반포동에는 가든리체프라자 지하 1층에 카페와 베이커리, 퀴진이 있는 대규모 카페를 조성했다. 이름은 모두 원래대로 블룸앤구떼. 대림상가의 테이크아웃 공간만 꼬마 by 블룸앤구떼라 구분 지었다. “우리가 처음 가로수길에 찾아들었을 때처럼 호젓하고 아늑한 동네를 찾아다녔어요. 연남동, 연희동, 경리단길 등 안 가본 곳이 없어요. 그런데 다들 번잡하고 뭐가 너무 많아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는 거예요. 지쳐 있을 무렵 누군가가 상가를 추천했어요.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터라 처음엔 손사래를 쳤는데 막상 가서 둘러보니 생각이 달라졌어요. 1970, 80년대에 머물러 있는 듯한 오래되고 정겨운 풍경이 왠지 우리와 잘 어울리겠다 싶었죠.” 조정희 대표가 다소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이번 위치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을 들려주었다. 세 곳의 공간 중 가장 규모가 큰 가든리체프라자점이 블룸앤구떼의 중심이다. 제과제빵 시설과 커다란 키친이 갖춰진 이곳은 매일 아침 나머지 두 곳에서 소비할 빵까지 함께 만든다. 톤 다운된 적색 벽돌로 마감하고 벽면을 따라 있는 빈티지풍의 소파, 크고 작은 갈색 테이블과 의자가 자유롭게 놓여 있는 모습은 유럽의 카페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노란빛이 도는 빈티지 조명과 자유자재로 꽂아놓은 꽃, 겨울이지만 파릇한 식물이 따뜻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한몫한다. 날을 한껏 세우고 돌아다니다가 이곳에 들어서면 순식간에 무장해제되는 것처럼 편안하고 적당히 세련된 모습이다. “요즘의 디저트 브랜드와 카페처럼 스타일을 모던하게 바꿔보라는 말을 듣곤 했어요. 하지만 모던함은 저희 옷이 아니죠. 뭘 해도 저희가 좋아하고 제일 잘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공간을 준비하면서도 새로워지는 것에 치중하기보다 지금까지의 블룸앤구떼 스타일을 잘 지켜내자고 마음먹었죠.” 이진숙 대표의 말이다. 다만 이번 오픈을 준비하면서 블룸앤구떼는 플라워숍의 공간을 어디에도 따로 만들지 않았다. 대신 요청에 따라 소규모로 플라워 클래스를 가든리체프라자점에서 자유롭게 진행할 계획이다. 또 플랫 브레드와 파스타, 커리 라이스 등 퀴진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여행을 다니며 맛있게 먹었던 메뉴를 구상해보고 오랜 기간 매일같이 테이스팅을 반복한 끝에 만들어낸 홈메이드풍의 유러피언 요리들이다.
1 플라워숍을 없애 허전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꽃과 녹색 식물이 곳곳에 자리한 가든리체프라자점을 보니 이곳은 역시 꽃과 빵이 있는 블룸앤구떼. 2 가든리체프라자점에는 두개의 입구가 있다. 밖으로 난 계단을 통해 들어오는 입구를 꽃으로 장식했다. 3 꽃을 담당하는 이진숙 대표는 일주일에 한 번씩 꽃시장을 다녀온다. 테이블마다 미니 부케가 놓일 때 비로소 공간이 완성된다.
잠원동 매일종합상가에 있는 카페는 이번에 오픈한 세 곳 중 가장 화려하다. 벽을 민트색으로, 문과 창틀을 검은색으로 칠한 강렬한 대조가 건물 밖에서도 눈에 확 들어올 정도다. 이곳에서는 시그니처인 크레이프 케이크를 비롯한 디저트류와 커피, 샌드위치를 판매한다. 건너편 대림상가에 있는 꼬마 by 블룸앤구떼는 실험적인 곳이다. 처음으로 밤단호박 그라탕, 해산물 토마토 라이스, 각종 샐러드와 샌드위치 등 테이크아웃 위주의 푸드 아이템을 판매하며 앞으로는 파스타 소스, 드레싱 등 간단 요리를 위한 아이템도 늘릴 계획이다. 숍에는 아담한 테이블 공간도 마련했는데 손님들이 잠깐 앉아서 커피 한잔 마시고 갈 거라는 예상과 달리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손님들이 제법 찾아든다. “도대체 무슨 용기로 이렇게 세 곳을 한꺼번에 운영할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관리하고 신경 쓸 일이 정말 끝도 없이 생겨요. 상가라는 특성상 손님층이 달라져 적응의 시간도 필요하고 퀴진을 시작하니 메뉴에 대한 고민도 많아졌어요. 10년 이상을 함께 일해왔기에 서로 믿고 맡겨가며 유지할 수 있지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블룸앤구떼는 그들의 제3막을 보통의 동네에서 시작했다. 카페는 특별한 날 찾는 곳이 아니라 일상처럼 소비하는 곳이다. 요즘은 어느 동네든 작은 로스팅 카페 하나는 있을 정도로 카페가 일반화되었다. 하지만 자꾸 발길이 가고 애정이 생기는 카페가 가까이에 있다는 건 또 다른 기쁨이다. 일상이 제법 풍요로워질 수 있다. 물론 이곳에서 머무는 즐거움을 찾는 것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1 블룸앤구떼 10년 명성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메뉴인 크레이프 케이크. 포크로 한 겹씩 돌돌 말아 먹는 재미가 최고! 2,3,4 제과제빵을 담당하는 조정희 대표는 매일 아침 세 곳에서 소비할 빵을 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1 조정희, 이진숙 대표는 ‘유럽의 시골에서 우연히 만난 의외로 세련되고 맛있는 카페’가 이곳의 컨셉트라 한다. 2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겨나는 가든리체프라자점의 입구.
1 세 곳 중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가든리체프라자점의 제과제빵실. 2,3,4 플랫 브레드, 파스타 등 본격적으로 퀴진을 시작했다. 오랜 시간을 테이스팅한 끝에 나온 메뉴들이라 손맛 난다.
여느 동네에서도 만날 수 있는 블룸앤구떼.
1 10년 이상을 함께해온 조정희, 이진숙 대표. 비결을 물으니 서로를 믿고 맡기는 것, 카페 문화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것이라고 명료하게 답한다. 2 이번 오픈을 위해 새롭게 준비한 밤단호박 케이크. 투박한 모양이 정겹다. 3 민트색으로 칠한 벽과 검은색 창틀, 톤 다운된 갈색 소파가 빚어내는 시크한 조화. 크게 난 유리창 너머로 일대의 가로수를 감상할 수 있다.
매일종합상가 2층에 위치한 곳이 가장 새로운 분위기. 하지만 이곳을 채운 소품과 식기, 커트러리 등은 모두 예전의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