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후면 20주년을 맞이하는 디자이너 패션 브랜드 앤디앤뎁을 이끌어온 김석원 대표와 윤원정 이사. 일을 좇아 어언 20년을 쉬지 않고 달려왔건만, 이 디자이너 부부는 오늘도 그들의 열정적인 상상력의 결과물이 대중과 친밀하게 공감하기를 꿈꾼다.
1999년 열정과 패기로 한국의 패션계에 등장한 김석원, 윤원정 디자이너 부부는 1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로맨틱 미니멀리즘’을 기본 컨셉트로 하는 브랜드 앤디앤뎁을 성공리에 이끌어왔다. 17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국의 패션계에서는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지만, 앤디앤뎁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흔들림 없이 지켜내며 입지를 견고하게 다져왔다. 1999년 압구정동 상권에 첫 매장을 내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앤디앤뎁은 블랙&화이트의 무채색 컬러, 여성스러우면서도 절제미가 돋보이는 간결한 디자인으로 각광받았다. 특히 데뷔 초기에는 ‘청담동 며느리 룩’의 대명사로 불리며 강남을 휩쓸었고, 처음에 하나로 시작했던 매장이 해마다 하나, 둘씩 늘어 전국적으로 20개의 숍으로 확장되는 즐거움도 맛봤다. “앤디앤뎁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뭐냐고 묻는 사람이 많아요. 사실 별다른 비결은 없지만, 저희끼리는 우리의 고지식함이 통했다고 말해요. 순간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시대적 요구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앤디앤뎁이 처음의 감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타임리스적인 브랜드가 되길 바랐거든요.” 김석원 대표가 성수동의 작업실에서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처음엔 매장의 안쪽 문 너머에 자그마하게 조성해놓았던 작업실인데 어느덧 브랜드가 성장해 지금의 성수동 건물로 이사 오게 되었다.
1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주제와 연관된 이미지를 모아 한 시즌을 대표하는 거대한 이야기를 완성한다. 2 검은색과 흰색이 교차하는 체스판 모양의 바닥. 3 오래돼 빛바랜 마네킹. 윤원정 이사가 뉴욕 대학 시절부터 사용해왔다. 4 서로 의견을 나누고 아낌없이 조언하며 오랜 시간 함께 일해온 김석원 대표와 윤원정 이사 부부.
각종 자재 공장이 빽빽하게 들어서 삭막하기 그지없는 성수동의 한 자락, 앤디앤뎁의 작업실이 마치 숨통인 마냥 존재한다. 들어서면 블랙과 화이트 컬러가 체스판 모양으로 교차하는 바닥에서부터 앤디앤뎁의 정체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이곳은 2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1층은 직원들의 사무 공간과 메인 미팅룸, 소재실 등이 자리하며 2층에는 김석원 대표와 윤원정 이사의 개인 사무실을 비롯해 패턴실과 샘플 작업실 등이 있다. 뉴욕에서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브랜드를 론칭한 이들은 함께 일하는 것이 익숙하다. 두 사람의 사무실마저 문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김석원 대표와 로맨티시즘을 추구하는 제가 만나 앤디앤뎁이 탄생했죠. 각기 다른 성향이 만나 하나의 소리를 내게 되기까지는 상당히 오랫동안 서로의 의견을 수렴하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생각을 재편집하는 과정이 일의 절반이죠. 그러다 보니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요. 사무실이 떨어져 있으면 되레 불편하기만 할 뿐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윤원정 이사가 더불어 일하는 즐거움을 강조했다. 앤디앤뎁은 올해로 17주년을 맞이했다. 봄/여름과 가을/겨울, 돌아오는 시즌마다 좋은 내용의 컬렉션을 선보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남들과 다른 주기로 살다 보니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브랜드의 기념일마저 놓치기 일쑤였다. 그런데 3년 후가 20주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는 17주년이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예측하기 어려운 한국의 패션계에서 20년을 한 브랜드의 이름으로 버텨온 자신들에게 그 해만큼은 특별하게 채워주고 싶었다.
1 책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샘플 작업 의뢰서. 2 17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스카프. 스카프에는 윤원정 이사가 직접 그린 2004년 앤디앤뎁 F/W 컬렉션의 60가지 스타일의 일러스트가 담겼다. 3 문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부부의 사무실.
1 윤원정 이사의 세컨드 브랜드 뎁. 올해 상반기는 앨리스가 주제였다. 2 김석원 대표 방에 놓여 있는 드럼. 3 다가오는 20주년을 준비하고자 지금부터 아카이빙을 시작하고 있다.
그래서 17주년인 지금부터 앤디앤뎁이 그동안 걸어온 길을 차근차근 되짚어보고 좋았거나 기억에 남는 것은 다시 꺼내 재탄생을 시도해본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안 되는 건 되게 하고, 잘하는 건 더 잘하려고 노력했죠. 일하는 과정에서 효율성을 고려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약 20년 동안 한곳만을 보며 달려왔는데 이들은 아직도 시행착오를 겪곤 한다. 좋을 거라 예상했는데 결과가 별로인 경우도 있고, 아직도 신인처럼 디자인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서로에게 끊임없이 던진다. 그러다가 최근에 얻은 결론 하나는 잘 만든 디자인을 세상에 내놓거나 빈틈없는 컨셉트의 시즌을 보내는 것이 한 브랜드를 이끌어가는 디자이너로서 최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디자인 이면에 있는 자신의 생각과 근간을 대중에게 알리고 설득해 공감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가치관과 경험, 미적 감각을 담은 패션이 대중들에게 보편적인 공감을 얻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인가.
1 김석원 대표의 아버지가 물려준 빈티지 오디오 세트. 2 다이닝을 위해 준비해놓은 식기들. 윤원정 이사는 모던하고 내추럴한 식기류를 좋아한다. 3 김석원, 윤원정 가족의 리빙룸. 큰아들은 유학 중이라 요즘은 막내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 아무리 바빠도 주말만큼은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계획한다.
얼마 전부터 윤원정 이사는 그들의 집에 손님을 초대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주말에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지인들을 초대해 직접 만든 음식을 나눠 먹고 지인들이 칭찬과 함께 그들의 개인 SNS에 자신의 요리 사진을 찍어 ‘데비스 키친’이라는 이름으로 올리기 시작하자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 작년에는 파리에 출장을 가서도 직원과 지인들에게 직접 요리해 대접하는 즐거움을 만끽했고, 서울패션위크를 앞둔 지금도 주말에는 친구들을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마음의 여유를 되찾는다. “나눠 먹으면서 정드는 게 있더라고요.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대접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소원했던 사람과 다시금 친분을 쌓는 계기가 만들어지고 또 미안했던 친구와 자연스럽게 허물어지곤 해요.”
1 윤원정 이사와 언니 동생 사이로 막역하게 지내는 패션 스타일리스트 한혜연. 2 딸 성민 양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김석원 대표. 3 데비스 키친에 모인 패션 스타일리스트 김성일, 메이크업 아티스트 박태윤과 함께 샴페인을 기울이며 기분을 내고 있다.
1 이들 부부는 와인 셀러에 다양한 와인을 모아두었다. 2 싱싱한 조개찜. 조개를 다 건져내고 여기에 파스타를 넣으면 또 하나의 맛깔스러운 요리가 완성된다. 3 메인 요리인 스카치 에그.
최근 이들 부부는 집에 패션 스타일리스트 김성일과 한혜연, 메이크업 아티스트 박태윤을 초대해 다이닝을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앤디앤뎁을 도와주고 지지하는 소중한 친구들이다. 바빴던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저녁, 김석원 대표와 윤원정 이사의 집은 왁자지껄한 웃음으로 가득했다. 오늘은 윤원정 이사가 어떤 음식을 만들어줄지 모두가 기대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동안 주방에서 꼼짝 않던 윤원정 이사가 볼 카프레제와 광어 카르파치오를 애피타이저로 내놓기 시작했다. 여기에 샴페인 한 잔씩을 곁들이니 분위기가 한층 달아올랐다. 그녀는 메인 요리로 반숙한 달걀을 다진 고기로 동그랗게 말아 튀긴 스카치 에그와 각종 조개찜을 선보였다. 조개찜을 다 먹어갈 즈음 냄비째 주방으로 옮겨 삶은 파스타를 넣고 스파이스와 허브를 뿌려 짭조름하고 매콤한 봉골레를 만들었다. 즉흥적인 요리에 더욱 환호하며 맛있게 먹는 지인들. 김석원, 윤원정 부부는 그간 고마운 마음이 컸던 지인들에게 말보다 더 큰 감동으로 그 마음을 전했다. “요즘 서로 함께 나누는 삶에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 깃든다는 걸 다시금 느끼고 있어요.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해요.” 2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김석원 대표와 윤원정 이사는 디자인의 기교적인 절정보다 서로가 공감하고 마음의 그릇을 키우는 여유를 찾았다. 그들은 오는 3월 26일 서울패션위크에 선다. 그들의 이번 무대에서는 마음을 울리는 깊은 공명이 함께할 것이다.
모던한 다이닝룸 전경. 김석원 대표가 이곳의 조명을 직접 달았을 정도로 부부가 많이 아끼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