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유병안과 휘슬러의 솔라 패턴이 만났다. 패턴의 견고한 형태와 반복, 적절한 비례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 그의 손을 통해 우리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유병안 대표가 즐겨 사용하는 소재 중 하나인 나무. 시간이 흘러도 손때가 타면서 더욱 아름다워지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통나무를 자르고 솔라 패턴의 컬러를 차용해 만든 쿠션을 번갈아 쌓아 스툴을 만들었다. 더 높이 쌓으면 테이블로도 활용할 수 있다.
1 건축집단 엠에이 본사의 입구 쪽 복도에 원과 반원 모양의 카펫을 까니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종종 카펫의 배치를 바꿔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해볼 계획이다. 2 남산에 있는 유병안 대표의 아틀리에. 안쪽에 마련한 베드 위에 쿠션을 까니 입체적인 패턴이 탄생했다.
171년 동안 휘슬러가 세계인의 식탁에 꾸준하게 오를 수 있었던 저력은 오래도록 변치 않는 가치를 추구해온 장인정신이라 할 수 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디자인에 견고함과 독창성을 지닌 제품력을 바탕으로 휘슬러는 오랜 시간 여성들의 꿈의 주방을 완성시키는 쿡웨어로 자리 잡아왔다. 특히 국내에서는 1972년 첫선을 보인 솔라 Solar 시리즈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 식문화에 기반을 둔 이 제품은 독일의 삼색기를 모티프로 한 솔라 패턴이 적용되는 것이 특징. 레드와 블랙, 옐로 컬러의 원과 반원 모양이 일정한 비율로 반복되는 솔라 패턴은 쿡웨어와 식기에 세련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건축집단 엠에이 MA.의 수장이자 건축가로 서초동 소설 호텔의 건축 설계 및 감리를 진행하고, 도산공원의 0914 플래그십 스토어의 건축과 인테리어를 설계 및 시공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유병안 대표가 최근 휘슬러의 쿡웨어와 식기를 그의 공간에 새롭게 들였다. 때때로 사무실 안뜰에서 직접 요리해 직원들은 물론 지인들을 대접하기를 즐기는 그는 자타공인 요리 마니아. 그의 사무실 한 켠에는 ‘마당’이라는 로스터리 카페와 테라스가, 2층에는 아담한 수제 햄버거 가게가 조성돼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휘슬러의 제품을 단순히 요리만을 위해 들여놓지 않았다. 먼저 휘슬러 솔라 패턴의 디자인적 아름다움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원과 반원 모양이 일정한 비례로 반복되는 솔라 패턴에서 고전미를 느꼈어요. 직선미가 돋보이는 디자인, 스테인리스같이 단단한 소재를 사용한 휘슬러의 모던한 쿡웨어와 솔라 패턴이 조화롭게 어우러지죠. 고전미를 지닌 디자인은 시대를 초월하는 힘이 있어요. 솔라 패턴은 1970년대에 탄생했지만 현재까지도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발합니다.”
3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결정짓는 요소 중 하나가 비례. 유병안 대표가 솔라 패턴에서 영감을 얻은 창문을 집 모형에 그려 비례의 미를 설명했다. 4 인보성당 모형물에 레드, 블랙, 옐로 컬러의 구를 채워 자연을 표현했다. 자연은 직선의 건축물을 부드럽게 감싼다.
5 솔라 패턴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크고 작은 스툴을 남산 아틀리에에 설치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무와 쿠션의 조화가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된다. 6 통나무로 만든 북엔드. 솔라 패턴의 원형을 차용했다. 7 솔라 패턴의 반원을 각각 분리하고 또 반으로 나누며 다른 느낌의 패턴을 만들어 가는 과정. 이렇게 만든 패턴을 중첩시키면 꽃 모양이 된다. 8 자타공인 요리 마니아인 유병안 대표. 그의 빈티지장에 휘슬러 식기를 넣으니 그 자체가 작품으로 다가온다.
솔라 패턴은 유병안 대표에게 수많은 영감을 선사했다. 직선으로 형성된 공간을 선호하는 그에게 원은 자연으로 해석된다. 각이 진 직선 건축물을 부드럽게 감싸는 원형의 넉넉한 자연. 여기서 자연은 나무, 물, 공기 등이 될 수 있다. 유병안 대표는 그의 인보성당 건축 모형에 솔라 패턴의 원형을 차용해보았다. 레드, 블랙, 옐로 컬러의 작은 구를 건축물 주변으로 가득 얹어놓았는데 이것이 건축물을 한층 부드럽게 보이게 만들었다. “자연과 사람은 직선적이지 않아요. 곡선과 원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직선의 공간에 원형을 띠는 자연과 사람이 들어설 때 공간은 비로소 부드럽게 조화를 이루며 완성됩니다.” 유병안 대표는 솔라 패턴의 원과 반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그의 일상에 들여놓기로 마음먹었다. 톤 다운된 레드, 블랙, 옐로 컬러의 원과 반원 모양의 카펫을 만들었고, 그의 구수동 본사 입구부터 복도를 따라 깔아보았다. 원형의 카펫을 까니 복도가 한층 아늑해지며 방문객을 따뜻하게 반기는 듯한 느낌이 배가됐다. 원형과 반원 모양의 카펫은 배열을 달리하니 그 느낌 또한 달라지며 공간에 유머러스하고 경쾌한 변화를 선사하기도 했다. 또 유병안 대표는 통나무를 이용한 독특한 원형 스툴을 만들었다.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소재 중 하나인 통나무를 15cm 두께로 여러 개 자르고, 같은 사이즈의 원형 쿠션을 레드와 블랙, 옐로 컬러로 만들어 통나무와 쿠션을 하나씩 번갈아 쌓으니 레트로풍의 스툴이 완성됐다. 스툴은 높이를 얼마만큼 쌓느냐에 따라 때로는 테이블로 활용할 수 있고, 또 쿠션만 따로 떼어 침대나 소파에 올려두면 기댈 수 있는 쿠션이나 베개가 되기도 했다.
9 건축집단 엠에이는 ‘시간을 이겨내는 건축’을 모토로 한다. 시간이 흘러도 한결같을 수 있는 것. 그래서 건축에도 주로 돌과 나무를 사용한다. 오래도록 변치 않는 가치를 추구해온 휘슬러의 제품력 또한 이와 닮았다. 10 유병안 대표가 솔라 패턴에서 영감을 얻은 창문을 집 모형에 직접 그려 비례의 미를 설명하고 있다. 11 건축집단 엠에이의 연필을 정리하다 솔라 패턴을 떠올리는 모습이 재미있다.
올해 초 유병안 대표는 디자이너인 김기량과 함께 ‘쇼지아미’라는 패션 부티크를 오픈하고 이곳에서 ‘쇼지아미 위드 엠에이’라는 패션 라인을 새롭게 선보였다. 한때 패션 디자이너를 꿈꿨던 그는 이곳에서 그의 상상 속 옷을 하나 둘씩 세상에 내보이고 있다. 유병안 대표는 김기량 디자이너와 협업해 솔라 패턴을 의상에도 적용해보았다. 솔라 패턴의 원과 반원을 하나하나 분리하고, 또 이것을 반으로 나누고 방향을 바꿔 하나의 새로운 패턴을 탄생시켰다. “지금껏 반복과 비례로 보여줬던 솔라 패턴을 텍스처로 표현하면 어떨까 궁금했어요. 솔라 패턴에서 파생된 새로운 패턴을 만들고 중첩시켜보니 의상에서 포인트 역할을 하는 장식적인 요소로 활용할 수 있겠다 싶었죠.” 애써 꾸미려 하기보다 솔라 패턴의 색깔을 차용하고, 패턴으로 포인트를 주니 개성 있는 의상 세 점이 탄생했다. 모두가 유행을 타기보다 클래식하게 오랫동안 잘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이다. 유병안 대표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한결같은, 시간을 이겨내는 건축물을 만드는 것을 모토로 한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좋을 수 있는 것, 이는 건축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잘 만든 디자인 또한 그렇다. 유병안 대표는 휘슬러의 솔라 패턴을 다양한 형태로 그의 일상 곳곳에 들이며 견고한 솔라 패턴의 미학을 자연스럽게 입증했다.
12 본사 1층에 조성된 로스터리 카페 마당. 반듯한 선반 곳곳을 솔라 패턴에서 영감을 얻은 쿠션과 통나무로 장식하니 세련되고 한층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13 디자이너 김기량과 함께 솔라 패턴을 포인트로 활용한 색다른 의상을 준비하고 있다.
솔라 패턴의 컬러를 차용하거나 패턴을 변형해 독특한 분위기의 옷을 만들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