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디자인이 만나 새롭게 디자인한 세계적인 가구 브랜드들의 론칭 쇼가 열린 로 피에라 전시장. 전 세계의 가구 시장을 움직이는 거대한 디자인의 물결 속에서 건져 올린 이슈들을 소개한다.
밀라노 중심부에서 서울에서 일산 킨텍스에 가는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밀라노 로 피에라 전시장에서는 밀라노 가구 박람회 ‘살로네 델 모빌레 Salone del Mobile’가 열린다. 수많은 브랜드에서 1년간 준비한 새로운 컨셉트의 가구와 소품이 24개의 전시관에 나눠 전시되는데, 이곳을 통해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등장하고 트렌드를 예고한다.
올해 전시장의 가구 디자인 경향은 새롭게 대두된 메가급 트렌드라기보다는 대부분 몇 년간 지속되고 있는 다양한 테마에 심도를 더하고 범위를 확장한 듯한 분위기였다. 짝수 해마다 진행되는 주방 가구, 가전 전시회인 ‘유로 쿠치나(홀수 해에는 조명 전시인 ‘유로 루체’가 열린다)’와 욕실 가구 전시회인 ‘살로네 반요’에서는 스마트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주방과 욕실이 거실을 닮아가고 있는 경향을 읽을 수 있었고 현대적으로 거듭나고 있는 클래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기나긴 경기 침체로 규모와 화려함 등 여러모로 볼 때 규모가 축소되었지만 발품을 팔다 보면 여전히 명불허전의 전시임을 알 수 있다.
1 ‘비포 디자인 클래식’ 전시장 입구. 2 클래식의 과거와 현재를 뒤섞어 새로운 미감을 연출한 리버티 홀. 3 피아노의 음계를 표현한 듯 의자들을 리드미컬하게 매달아 시선을 압도했던 음악 홀.
CHEERFUL CLASSIC
해마다 로 피에라 전시장에서는 막강한 디자인 파워를 지닌 운영 조직인 코스밋의 주최 아래 여러 업체와 협업해 만든 대형 전시가 열린다. 클래식을 한물간 스타일로 규정짓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던 ‘Before Design Classic’ 전시가 열렸다. 프라이빗하게 만든 8개의 룸에는 자칫 고루하게 느낄 수 있는 클래시컬한 럭셔리 디자인을 순수 예술과 실용 디자인의 경계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제안한 공간과 디스플레이를 볼 수 있었다. 특히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마테오 가로네가 이번 전시의 주제로 만든 영상은 이 시대의 클래식은 스타일이 아닌 사람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또 클래식을 모르고 자라는 어린아이들이 공간을 꾸미는 아름다운 영상을 선보여 많은 관람객에게 강한 잔상을 남겼다. 강력한 모던 스타일의 틈 속에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우아함과 위풍당당한 매력을 가진 클래식. 화려한 귀환이 머지않았음이 예감된다.
1 클라시콘의 ‘플리’ 사이드 테이블. 2 나뚜찌의 ‘라비린토’ 커피 테이블. 3 BD바르셀로나의 ‘아쿠아리오’ 사이드 보드.
SLEEK GLASS
최근 거북함을 벗고 휠씬 유연해진 가구 디자인의 트렌드에 힘입어 샤프하고 매끄러움을 갖춘 유리 가구가 과거에 비해 주목도가 커지고 있다. 빛의 반사에 따라 시적인 색감을 즐길 수 있는 유리에 컬러를 입힌 디자인이 대세로, 유리 가구를 생산하는 글라스 이탈리아를 필두로 BD바르셀로나와 나뚜찌, 클라시콘에서도 새롭게 유리 가구를 출시했다.
1 이레븐의 소파 시스템. 2 요한손 디자인의 의자. 3 포기아의 가죽 암체어. 4 요한손의 네스트 테이블.
PICK ME! 스웨덴 디자인
스웨덴의 무역 대표부를 비롯해 주요 디자인 기관이 주최한 스웨덴 디자인 연합 부스에서는 한국에서 불고 있는 북유럽 열풍을 다시금 실감케 했다. 17개 브랜드가 참여한 부스를 돌며 제품을 볼 때마다 적극적인 설명과 함께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한국 진출을 꿈꾼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 이 중 생동감 있는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을 지향하는 브랜드 ‘이레븐 ihreborn’, 전통적인 기술로 만든 창의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 ‘요한손 디자인 Johanson Design’, 북유럽의 건축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사랑하는 브랜드로 이름난 하이 퀄리티 가구 브랜드 ‘포기아 Fogia’가 인상적이었다.
공간 활용의 달인
실용적이고 기능성을 강조한 월 수납 솔루션과 더불어 가구를 변형하거나 위치를 바꿔 새로운 용도를 만들어내는 아이디얼한 가구 역시 대세였다. 이탈리아 가구 업체 캄페기의 ‘요다’ 의자는 평소에는 라운지체어로 쓰다가 테이블로도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 제품. 작은 의자까지 숨어 있는 기발하고 참신한 디자인으로 관람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또한 삼각형 모양의 ‘두’ 의자는 펼치면 푹신한 잠자리가 되는데, 노마드적인 디자인이 눈길을 끌었다.
넨도가 디자인한 ‘홀스’ 로킹체어
카르텔이 만든 어린이 가구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만든 어른들의 가구는 셀 수 없이 많다. 그에 반해 어린이 가구를 꼽으라면 베르너 팬톤의 팬톤 주니어, 아르네 야콥센의 앤트 체어, 필립 스탁의 루루 고스트, 셀레티의 팬톤 폴딩 체어 정도가 아닐까. 올해 카르텔에서는 넨도, 피에르 리소니, 필립 스탁 등이 만든 귀여운 어린이 가구를 대거 출시했다. 블록을 쌓아서 높이를 조절하는 테이블, 아이들의 낙서를 패턴화한 펜던트 조명, 투명한 소재로 만든 목마는 아이 엄마가 아니더라도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디자인이다.
우주로 돌아간 건축가 자하 하디드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두 달여 앞두고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타계 소식을 접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건축해 국내에서도 친숙한 그녀는 비대칭 구조와 유기적인 디자인으로 마치 우주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건축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녀의 디자인을 기억하는 인파로 더욱 북적였던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사와야&모로니 부스에서 만난 ‘뮤’ 테이블은 타계하기 전 만든 유작으로 남게 됐다.
기대되는 신예, 마타 페리
마타 페리는 최근 들어 가장 주목받는 이탈리아 출신의 텍스타일 디자이너다. 영광스럽게도 그녀는 이번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 몰테니&C를 통해 ‘마테리아 Materia’ 컬렉션을 선보였다. 예술가적인 집안에서 성장한 그녀는 자신의 성장 배경을 반영한 디자인과 텍스타일, 컬러 조합 등을 선보였는데 이번에 발표한 마테리아 컬렉션은 세계의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3가지 디지털 프린트다. 마타 페리만의 색채 감각과 몰테니&C의 스타일을 고려해 제작한 것으로, 마타 페리는 디지털 프린트 외에 벨벳과 거친 리넨, 태닝된 가죽 텍스타일을 별도로 선보여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와 로돌포 도르도니, 빈센트 반 듀이센의 가구에 적용했고 몰테니&C를 통해 완벽한 데뷔에 성공했다.
재봉한 나무 의자
올해 1월 파리에서 열린 메종&오브제에서 재능 있는 영 디자이너를 선정하는 탈렁 알라 카르트 부스에서 유독 눈길을 끌었던 파르그&블랑쉬. 스톡홀름에 스튜디오를 두고 있는 듀오 디자이너는 앞으로 귀추가 주목되는 디자이너다. 파르그&블랑쉬는 딱딱한 소재를 자유롭게 묶거나 재단한 가구를 주로 선보여왔는데 BD바르셀로나에서 선보인 의자 ‘쿠튀르’는 나무를 겹겹이 재봉틀로 박아 만든 것 같은 신기한 의자다. 마치 나무가 성장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파르그&블랑쉬는 실제로 거대한 재봉 기계를 사용해 나무와 나무를 이어 의자를 만들었다. ‘우드 테일러링’ 기법으로 만든 쿠튀르 의자는 색깔도 위로 갈수록 옅어져 나무가 자라는 것 같은 시각적인 효과도 극대화했다. 앞으로 더 많은 브랜드를 통해 파르그&블랑쉬의 디자인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안겨준 제품!
1 젊은 감성이 주는 자유로움과 개성을 표현한 원단을 입은 소파는 디젤홈 제품. 2 복고적인 색감으로 크고 작은 소파를 이어 붙여 아늑한 공간을 연출할 수 있는 ‘로포텐’ 소파는 루카 니케토 디자인으로 까사마니아 제품. 3 커다란 소파에 스티치를 하듯 바늘땀으로 장식한 소파는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 디자인. 모로소 제품. 4 착석감 못지않게 시각적으로도 편안함을 겸비한 피에르 리소니가 디자인한 ‘라르고’ 소파. 카르텔 제품.
SOFA COLLECTION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새로운 소파는 그 브랜드의 얼굴이다. 푹신한 사용감, 다양한 색감의 조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디자인, 개성 있는 패턴 등 디자이너와 브랜드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킨 소파들을 모았다.
1 바라짜의 랩 커버 시스템. 2 조명처럼 생긴 후드는 에리카 제품. 3 대리석으로 만든 아일랜드는 스트라저 제품. 4 클래식한 외관이지만 똑똑한 기능을 갖춘 오븐 키친은 라꼬르뉴 제품. 5 돌체앤가바나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만든 스메그 냉장고. 6 주방의 미래를 볼 수 있는 FTK관에서 만난 그룬딕 시스템.
집 안의 중심에 선 스마트한 주방
2년 전 열렸던 쿠치나관에서는 ‘거실 통합형 주방’이 대세를 이뤘다. 올해 역시 이 트렌드가 이어졌지만,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알파고만큼이나 똑똑한 기능과 시스템을 갖춘 가구와 가전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거실과 주방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트렌드가 반영되어 주방 가구는 점점 거실 가구와 소품을 닮아가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수납장은 거실의 장식장처럼 디자인되었고 후드는 거실에 설치하는 조명처럼 디자인된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미래의 주방을 살펴볼 수 있는 ‘FTK’관에서는 지멘스, 밀레, 일렉트로룩스 같은 대형 브랜드에서 인공지능 가전을 선보였다. 스마트 기기의 앱을 통해 외부에서도 주방 가전을 컨트롤하는 시스템으로, 집 밖에서도 앱에 저장된 레시피를 클릭하면 원하는 시간에 요리를 끝내주는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특히 그룬딕에서 선보인 시스템은 자동으로 사용자의 컨디션을 파악해 최적의 영양가를 담은 식단을 짜주거나 공간 디자인을 한순간에 바꿔주는 놀라운 시스템을 선보여 관람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GTV의 유쾌한 변신
GTV가 150여 년 동안 전통을 이어오며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합작해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버전을 꾸준히 선보이기 때문. 올해는 감프레시, 넨도, 네이선 영의 디자인을 추가해 전시장과 푸오리 살로네에서 지금까지 GTV가 만들어온 다양한 디자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바버&오스거비의 타일
바버&오스거비는 브랜드 무티나를 통해 두 가지 스타일의 타일을 선보였다. ‘퍼즐’은 블루와 화이트가 기하학적으로 어우러진 타일로 조합에 따라서 구름처럼 보이기도 하고, 지도 같기도 한 역동적인 스타일로 만들 수 있다. 욕실뿐 아니라 실내 공간에 시공해 인테리어 요소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제품. 반면 컬러의 강렬함은 덜하지만 타일과 타일 사이의 그림자만으로도 독특한 ‘미스트랄’은 고대 이탈리아의 헛간과 농장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입체 타일. 공기와 햇살을 자연스럽게 거를 수 있으며, 때로는 파티션처럼 벽에 시공할 수 있다.
패셔너블한 아웃도어 가구
아웃도어 가구가 인도어 가구의 영역을 오가며 변화를 가져온 지는 4~5년 정도 된다. 올해 소개된 아웃도어 가구는 이제 라탄 소재와 위빙 조직 등 리조트 룩이라 불리며 특유의 재료와 텍스처로 대변되던 과거의 아웃도어 가구도 있지만, 패셔너블한 디자인으로 승부를 건 디자인이 많았다. 녹음이 무성한 풀밭이나 시원스럽게 펼쳐진 바닷가에 어울릴 ‘데돈’의 아웃도어 컬렉션을 비롯해 페드랄리는 조명이 들어오는 ‘바’ 가구를 선보였으며, 페르몹에서는 컬러로 포인트를 준 디자인을 선보였다. 특히 박스터에서 이번에 새롭게 출시한 ‘리미니’는 야외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특수 가죽을 입힌 거친 질감의 가구로 선보여 아웃도어 가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더 높게 솟아라
올해는 유독 등받이가 높은 의자가 많았다. 등을 편하게 기댈 수 있다는 편안함도 있지만 안락함과 고딕 양식에서 느낄 수 있는 우아한 매력을 시각적으로 전달했다. 심플한 라인을 강조했거나 칸막이처럼 온전히 혼자만의 휴식 공간처럼 의자를 활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 많았는데 타치니에서 소개한 ‘칠 아웃’은 카키색 패브릭과 브라스 다리가 어우러져 고급스럽고 세련된 디자인을 제안했다. 박스터에서는 라인으로만 이뤄진 의자를 선보이는가 하면, 드리아데에서는 카무플라주 패턴으로 커팅한 의자 ‘카무플라주’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1 세면대와 화장대를 결합시킨 ‘나르시소’는 씨엘로 제품. 2 크레오의 ‘코라’ 욕조. 3 필립 스탁 디자인의 ‘스탁’ 수전. 악소어 제품.
제2의 휴식 공간, 욕실
주방과 함께 욕실도 거실처럼 변모하고 있는 추세다. 욕실에 필요한 기본 설비 시설을 마치 장식용 오브제처럼 노출시키거나 욕실의 디스플레이나 레이아웃 역시 거실처럼 연출한 부스가 대다수였다. 또한 원룸 형태의 소형 가구와 싱글족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요구에 맞춰 용도에 따라 가변적으로 공간을 변화시키는 합리적인 아이디어가 곳곳에서 목격됐다. 지나치게 많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서 피로감을 느끼는 현대인들의 일상을 고려한 듯,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대두되는 추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