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들은 천편일률적인 유행, 쏟아지는 신상품에 어떻게 자신만의 특별한 개성을 부여할까?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 중 가장 핫한 제품 디자인과 파빌리온을 선보였던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 아릭 레비, 마르셀 반더스, 파올라 나보네, 하이메 아욘, 에르메스의 아트 디렉터까지 <메종>이 만나 그 궁금증을 풀었다.
1 제니스 샹들리에를 구 형태로 만든 ‘태양왕’ 샹들리에.
바카라가 선사하는 천상의 빛
프랑스의 명품 크리스털 브랜드 바카라는 브레라 미술대학에서 열린 <상자 밖을 나온 빛> 전시를 통해 새로운 조명 컬렉션을 선보였다. 전시장 입구부터 거대한 크기의 상들리에가 방문객을 환상의 빛으로 인도했던 바카라는 성대한 파티를 시작으로 전시를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전시장 내부에는 대형 컨테이너 박스 안에 설치되어 있는 올해의 신작을 만날 수 있었다. 아릭 레비의 ‘튈 드 크리스털 Tuile de Crystal’ 샹들리에를 비롯해 마르셀 반더스가 만든 ‘태양왕 Roi Soeil’ 샹들리에, 1만3000개의 크리스털 옥타곤으로 만든 한스 반 벤텀이 선보인 ‘메디시스 엑스엑스라지 Medicis XXL’, 푸른색 보석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오스트로사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만든 ‘블루 토파즈’까지 크리스털의 아름다움의 끝판왕을 보는 듯했다.
2 디자인계의 레이디 가가로 불리는 마르셀 반더스. 3 마르셀 반더스의 ‘뉴 앙티크 테이블’.
태양의 후예, 마르셀 반더스
바카라의 제니스 샹들리에를 구 형태로 만든 태양왕 샹들리에가 인상적이다. 왜 둥근 모양이어야 했나? 바카라를 상징하는 아이코닉한 샹들리에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였다. 컨템포러리 샹들리에를 완성시키기 위해 모더니즘을 지향했고, 심플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장식적 요소를 걷어냈다. 그러고 나니 일반적으로 샹들리에가 가지고 있던 강렬한 화려함이 사라졌다. 이후 지오메트릭한 형태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컨템포러리 건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태양을 보라. 우주에서 중심적인 존재이지 않나. 이렇게 만들어진 아이코닉한 디자인은 500m 멀리에서도 인식할 수 있다.
태양왕이라고 이름 지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루이 14세에게 헌정하는 의미를 담아 이름을 붙였다.
뉴 앙티크 테이블은 바카라의 꽃병을 뒤집어서 만들었다. 신선한 발상이다. 사실 농담처럼 시도했던 것이다. (하하) 이렇게 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지만 뉴 앙티크 꽃병을 뒤집어 조명을 넣고 빛이 퍼졌을 때 모두가 탄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크리스털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크리스털이 보인다고 생각하나? 크리스털은 보이지 않는다. 당신은 빛을 보는 것이다. 그것이 크리스털이다. 빛을 통해 표현되고 그것이 최고의 아름다움이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와 커팅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표현, 이런 것이 매력이다.
4 테크놀로지와 감성을 결합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아릭 레비. 5 컨테이너 박스 안에 디스플레이한 샹들리에. 6 아릭 레비 디자인의 ‘튈 드 크리스털’.
스마트한 빛을 만드는 조련사, 아릭 레비
튈 드 크리스털 조명은 색깔을 입힌 가느다란 실을 엮어 만든 듯한 느낌이다. 사실 이것은 색을 가진 크리스털이 아니다. 광학적인 것인데 무색 크리스털에 빛을 비추면 마치 무지개처럼 수백만 가지의 컬러를 뿜어낸다. 튈 드 크리스털은 지붕에서 힌트를 얻어 제작되었는데, 지붕은 다양한 사이즈와 형태가 있지만 항상 같은 요소를 반복적으로 사용해 만들어진다. 이와 같이 크리스털을 겹쳐지게 배치함으로써 크리스털의 빛반사는 배가된다.
작업 과정이 꽤 복잡해 보인다.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나? (마세라티가 시동을 걸고 광속으로 출발하는 것과 같은 굉음을 내며) 이 소리를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하.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는 리서치, 자가 질문, 테스트를 해보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제작에 들어가서는 크게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잡지도 그렇지 않나. 만드는 준비 기간이 길지 인쇄하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는 것과 같다. 튈 드 크리스털은 굉장히 스마트한 제품이다. 비주얼 효과를 내기 위해 수작업을 하면 장인이 아주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야 하지만, 이것은 압축 크리스털로 제작됐기 때문에 기술로 제작 시간을 단축했다. 단순히 시간이 얼마나 걸렸다고 말하기보다 바카라의 250여 년 역사와 52세의 내가 공들여 만든 영리한 제품이라 할 수 있다.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프로덕트는 스마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조, 포장, 배달, 설치, 유지 보수에 영리해야 한다. 튈 드 크리스털 피스들은 하나하나 분리해서 식기세척기에 넣어 세척해 재설치할 수 있다. 다른 명도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않나. 나는 디자인에서 더 영민한 방안을 내놓기 위해 도전한다.
디자인 머신처럼 수많은 작업을 하는데 아이디어는 어디서 충당하나? 비결이 궁금하다. 나 자신에 사로잡히는 것을 넘어 내 주변을 이루고 있는 것들에 주목한다. 특히 여행을 많이 한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관찰이다. 비결은 없다. 항상 열심히 일을 하는 것뿐이다. 비결이 존재한다면 나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카시나의 새 얼굴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
자하 하디드와 비견되는 여성 파워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 Patricia Urquiola. 카시나의 새로운 아트 디렉터로 영입되면서 디자이너로서도 새로운 날개를 달게 됐다.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는 스페인 출신으로 마드리드 건축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밀라노로 건너와 폴리테크닉을 졸업했다. 모로소와 함께 일하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고 B&B이탈리아, 카르텔, 글라스 이탈리아, 플로스 등 줄곧 명품 가구 브랜드와 손잡고 일해왔다. 이탈리아가 오랜 세월 이어온 디자인 DNA를 현대형으로 탈바꿈하는 데 가장 능숙한 디자이너로 불리는 그녀는, 지난 9월 카시나의 아트 디렉터가 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카시나로 자리를 옮기고 첫선을 보이는 자리인 만큼 세계 각국의 언론 매체와 건축, 인테리어 관계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서인지 카시나 부스는 여느 때보다 문전성시를 이뤘다. 개인적으로도 만나보고 싶었던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던 그녀. 최근 리뉴얼 오픈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리빙관의 아트 디렉터로 참여한 그녀는 그곳에 가봤는지를 궁금해하며 <메종>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1 카시나의 새로운 아트 디렉터.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 2,3 패브릭 부분을 교체할 수 있는 ‘젠더’ 의자.
그간 B&B이탈리아, 모로소 등과 일해왔다. 카시나와는 접점이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카시나의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4년 동안 사무 가구 전문 업체 헤이워스에서 오피스 디자인 아트 디렉터를 담당했다. 카시나는 전통과 많은 유산은 물론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는 회사로 이를 진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을 찾고 있었다. 헤이워스에서 카시나가 소속된 폴트로나 프라우 그룹을 인수한 뒤 나에게 아트 디렉터로 일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왔고, 다른 회사와 일하고 있는 상태라서 시간을 조금 달라고 했다. 이후 작년 9월부터 카시나의 아트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벽돌을 쌓아올린 파빌리온이 인상적이다. 컨셉트는 뭔가? 올해 네덜란드 디자이너 베르트 잔 포트와 게리 리트벨트의 ‘위트레흐트’ 의자에 입힐 특수 원단을 제작했다. 이 과정에서 위트레흐트 프로토타입 의자를 보고 나서 복잡하면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싶어졌다. 카시나와 함께했던 거장들을 보면 모든 것이 실험적이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 리트벨트가 디자인했던 파빌리온을 매우 좋아했다. 당시에는 임시 파빌리온이었지만 굉장한 마스터피스였기 때문에 두 번이나 재전시되고 아직까지도 네덜란드에 남아 있다. 리트벨트는 벽돌을 90도로 돌려서 빛이 들어오는 막이나 필터로 사용했다. 매우 참신하고 감각적인 연출이었다. 카시나와 같이 많은 문화적 유산을 가지고 있는 회사는 전시에서 단순하게 3면의 벽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실험적이었던 거장의 유산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 파빌리온 역시 유산에서 받은 영감을 컨템포러리한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4 카르텔을 통해 선보인 ‘줄리’ 테이블웨어. 5 새로운 옷을 입은 게리 리트벨트의 ‘위트레흐트’ 의자. 6 글라스 이탈리아를 통해 발표한 ‘시머’ 컬렉션 테이블.
파빌리온 디자인을 보고 있자니, 마치 스티치처럼 보인다. 그렇게 연결시켜봐도 좋을 것 같다.
카시나의 아트 디렉터뿐 아니라 디자이너로서 ‘빔’ 소파와 ‘젠더’ 의자를 디자인했다. 그간 해온 작업과는 확연히 달라 보인다. 디자이너로서 실험적인 디자인을 시도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건축학적 요소인 ‘빔’을 가지고 디자인하고 싶었고, 그 안에 따뜻함을 담고자 했다. 요즘 출시되는 소파는 편안함을 위해 덩치가 커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소파의 깊이가 너무 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간결하면서도 좋은 기능을 가진 아주 편안한 소파를 만들고 싶었다. 빔 소파는 이런 발상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소파의 모듈과 푸프, 테이블이 연결되어 있는 우아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디자인이다. 소파의 암 부분에는 척추의 마디 같은 얕은 기둥 같은 것이 들어 있어 자유롭게 움직이거나 고정할 수 있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카시나의 기술력이다. 편안함을 위해 큰 쿠션을 만드는 것보다 이렇게 움직이는 똑똑한 쿠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젠더 의자는 옷을 갈아입히듯 패브릭을 교체할 수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많은 사람이 카시나는 남성스럽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 편견을 없애기 위에 마감이나 재질에 변화를 주어 남성적으로 혹은 여성스럽게 연출할 수 있다. 의자에 앉으면 편안하고 포근함을 느낄 수 있다. 뒤는 딱딱하지만 옆면의 날개 부분은 코의 연골같이 부드럽게 움직인다. 이런 움직임은 카시나의 대표 제품이기도 한 비코 마제스트레티의 ‘마라룽가’와도 관계가 있다. 오랜 기간 사용해도 전체가 아닌 부분 교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전시장에서 당신이 디자인한 가구만 보러 다녀도 바쁠 것 같다. 일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된 원동력이 궁금하다. 남보다 세 배는 일한다. 이 파빌리온을 만들기 위해 지난 6개월간 부스 디자인, 제품, 마감 디자인을 했는데 생각보다
휠씬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뿐 아니라 뉴욕 쇼룸도 디자인했고, 지난 1월에 열린 퀼른 아트 페어장도 디자인했다. 일에 대한 내 열정이 에너지의 원동력이다. 실험적인 디자인에서 좋은 성과도 얻었고 이렇게 얻은 대가를 여러 사람과 공유할 수 있어 좋다. 노력의 결과가 잘 나와서 기쁘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아트 디렉터로서 모든 매니저와 기술자들과 공감할 수 있으려면 많은 대화를 해야 했다. 모든 단계에 관여하며 6개월간 열심히 일한 덕에 새로운 공간뿐 아니라 새로운 제품도 탄생할 수 있었다.
7,8 간결하지만 기능적인 디자인을 입은 ‘빔’ 소파.
디자인 유목민 파올라 나보네
파올라 나보네는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제르바소니 디렉팅을 비롯해 바쁜 일정을 보냈다. 블루를 사랑하는 그녀는 제르바소니를 통해 내추럴하고 수작업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넥스트 Next 컬렉션’을 발표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여성 디자이너 파올라 나보네 Paola Novone.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아트 디렉터, 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그녀를 수식하는 타이틀은 무수히 많다. 파올라 나보네는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아트 디렉터로서 제르바소니의 제품 디자인과 전시 세팅을 총괄했다. 넥스트 컬렉션은 거실과 주방을 위한 홈 컬렉션으로 라탄 소재로 만든 조명과 암체어를 비롯해 알루미늄 소재로 만든 테이블, 패브릭 소파 등으로 구성했으며 전시 부스에서 거실과 다이닝 공간으로 나눠 선보였다. 또 밀라노 토르토나 지역에서 프랑스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메르시와 팝업 스토어를 진행하며 세락스와의 협업 컬렉션인 ‘피시&피시’를 선보였다. 내추럴한 감성과 핸드 크래프트를 사랑하는 그녀는 인위적이지 않은 시적이고 고급스러운 자신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현대적인 스타일로 풀어내기로 유명하다. 그녀를 상징하는 시그니처 컬러이기도 한 블루 컬러의 옷을 입고 밀라노 시내와 로 피에라 전시장에서 바쁜 일정을 소화한 파올라 나보네. 제르바소니를 통해 파올라 나보네와 나눈 인터뷰를 통해 그녀가 진정한 ‘에스닉 노마드’임을 느낄 수 있었다.
1 자연스러운 감성을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파올라 나보네.
이번 제르바소니의 컨셉트는 무엇인가? 어떤 것에서 영감을 받았나? 지금 사는 세상은 내게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다. 내가 어디에 있든 어린아이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나만의 세상이 되곤 한다. 제르바소니의 ‘넥스트 컬렉션’은 지금까지 제르바소니의 컬렉션이 그러했듯 자연 소재의 아름다움과 수작업, 심플하고 직관적인 디자인을 갖고 있다. 약간의 유머도 빠질 수 없고! 시간을 두고 이야기를 이어가듯 새로운 컬렉션이 지난 컬렉션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길 바랐다.
유독 블루 컬러를 많이 사용하는데 블루 컬러의 매력은 무엇인가? 차가운 컬러, 물과 공기의 컬러에 굉장한 매력을 느낀다. 흙색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옷이나 집에 흙과 비슷한 컬러는 절대 두지 않는다. 물은 나의 원초적인 소재고, 블루 컬러는 자기최면 효과를 갖고 있는 듯하다. 부드럽기도 하고, 에너제틱하기도 하고, 자연스럽기도 하고, 화려하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하고, 진지하기도 하고 또 모던하고 전통적이기도 하고, 역설적이기도 하고 평범하니 말이다. 블루 컬러는 그 무엇도 될 수 있고 창의적인 기회를 지닌 색깔이다.
집 인테리어가 궁금하다. 나는 여러 곳에 뿌리를 두고 있는 유목민 같은 사람이다. 지금은 사무실이 있는 밀라노와 내게 영감을 주는 도시, 파리에 모두 집이 있다. 파리는 정말 아름다운 빛을 지닌 도시다. 하얗고 격렬하고 직접적이다. 우리 집은 공기와 빛이 자유롭게 흐른다. 전 세계에서 모은 좋아하는 오브제가 쌓여 있고, 거대한 소파와 사람들을 맞이할 넓은 테이블이 있다. 주방도 넓은데 편리한 시스템과 엄청나게 많은 팝한 오브제로 장식되어 있다. 모두가 집처럼 느낄 수 있도록 쾌적하다.
어떤 소재에 매력을 느끼나? 항상 이 말을 즐겨 하는데 스펀지는 디자인을 위한 완벽한 오브제다. 자연스럽고 대중적이며 때로는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무엇보다 아주 친숙한 디자인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또 연약하고 시적이며 오만하지 않고, 불완전하고, 직관적이고 심플한 매력이 있다. 내가 상상하고 원하는 디자인을 만족시켜줄 소재로 제격이다.
제르바소니의 제품을 디자인할 때 어떤 점이 즐거운가? 제르바소니의 제품이나 공간 세팅을 할 때 모든 것이 나를 매혹시킨다. 심플함에 대한 나의 본능과 자연의 시적인 형태에서 오는 불완전함, 세계를 아우르는 나의 취향 등 말이다. 우리는 제르바소니를 통해 고급스러운 심플함과 전통에 대한 존경, 컨템포러리한 감성, 자연환경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고자 한다.
밀라노 토르토나에 홈 스튜디오가 있다고 들었다. 토르토나 지역의 매력은 무엇인가? 오늘날의 토르토나는 다양한 창의성이 팔팔 끓고 있는 컬러풀한 용광로와 같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인더스트리얼한 무드를 잃지 않은 지역이다. 이런 점이 토르토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나의 홈 스튜디오는 작업실과 실험실을 나눠 쓰는 아주 큰 뜰에 위치한다. 입구에 다다르면 무질서하게 자란 각종 식물과 담쟁이덩굴, 파란색 인더스트리얼 깡통에서 자라는 관목식물로 꾸민 ‘카베동정원’이 방문객을 반긴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 동안 세락스를 통해 발표한 피시&피시 컬렉션을 선보인 메르시와의 팝업 스토어도 흥미로웠다. 메르시는 우리의 특별한 공모자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위해 우리가 메르시를 초청한 것이 올해로 세 번째다. 메르시는 일주일 동안 각종 소품을 우리 사무실 1층에서 팝업 스토어의 형태로 선보였는데 너무나 멋졌다! 내가 세락스와 협업한 피시&피시 컬렉션도 소개했는데, 생선 모양에서 영감을 얻은 테이블웨어로 마음에 드는 작업이었다. 대공황 시대에 미국에서 주로 사용됐던 심플하고 실용적인 몰드 유리로 제작했다.
2 제르바소니의 ‘스핀’ 플로어 조명. 3 작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NLXL과 협업한 물고기 무늬 벽지. 4 토르토나에서 진행된 메르시 팝업 스토어.
제르바소니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이 있다면? 그동안 진행한 프로젝트에 애착이 많은데, 고스트 컬렉션처럼 다른 아이템에 비해 유독 인기가 많은 운이 좋은 제품도 있다. 이번 컬렉션에서 고르자면 ‘넥스트 테이블 136’을 꼽고 싶은데, 대리석과 나무 중에 선택할 수 있는 상판과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다리가 제르바소니의 스타일에 딱 맞는 제품이다.
젊은 시절 아시아에서 살아본 걸로 알고 있다. 어떤 경험이었나?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 지냈던 경험은 내게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밀라노 디자인 스튜디오에서는 결코 할 수 없었던 디자인 프로젝트를 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나의 동양적인 뿌리를 찾는 걸 즐기는데, 이런 것이 프로젝트를 재치 있게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곤 한다.
작년 이케아 팝업 전시에서 선보인 주방도 멋졌는데 요리를 즐기나? 나의 주방은 다른 이들도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넓고 빛이 잘 들어오며 요리를 하기에 최적화된 곳이다. 다양한 나라의 요리책뿐만 아니라 여행하며 수집한 각종 도구도 즐비하다.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이 내게는 중요하고 아름다운 순간이다. 때문에 열정을 가지고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요즘 시대에 핸드 크래프트가 갖는 의미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손으로 만든 것의 거친 아름다움, 자연 지속적이고 특별하고 세계적으로 통하는 친근함을 사랑한다. 핸드메이드 제품은 산업적으로 만들어진 것과는 다른 특별함을 갖고 있다. 이탈리아는 이런 핸드 크래프트에 우수한 전통을 갖고 있는데, 오늘날 아주 중요한 요소이며 내게는 창의적인 원동력이 된다.
도전해보고 싶은 디자인 분야가 있다면? 전 세계에 디자인 호텔을 설계하는 것이 재미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도 호텔을 디자인해보고 싶다. 많은 이가 친근하게 즐길 수 있는 인테리어와 주변 환경과도 잘 어우러지는 호텔로, 여기에 한국적인 감성까지 물씬 느낄 수 있다면 상당히 재미있는 도전이 될 것이다.
5 ‘넥스트’ 컬렉션의 소파와 사이드 테이블. 6 세락스와 협업한 ‘피시&피시’ 컬렉션.
꿈꾸는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
하이메 아욘은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고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하는 디자이너다. 점잖기만 할 것 같던 프리츠 한센은 하이메 아욘을 만나 고급스럽지만 캐주얼하게 즐길 수 있는 홈 액세서리를 선보였다.
만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유쾌한 성격의 스페인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 그는 프리츠 한센의 밀라노 쇼룸에서 새로운 홈 액세서리 라인인 ‘오브젝트 Object’ 컬렉션 중 캔들 홀더와 꽃병 시리즈를 선보였다. 오브젝트 컬렉션은 쿠션과 블랭킷, 티 트레이, 캔들 홀더와 거울, 꽃병 등으로 다채롭게 구성된 노르딕 스타일의 홈 액세서리 라인이다. 프리츠 한센의 점잖은 북유럽 스타일과 통통 튀는 개성적인 디자인을 선보여온 하이메 아욘은 자칫 상극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프리츠 한센은 하이메 아욘의 유머와 재치를, 하이메 아욘은 프리츠 한센의 실용적인 디자인과 고급스러움을 겸허히 받아들여 로 체어에 이어 또 한번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를 것 같은 소품 컬렉션을 선보였다. 밀라노 쇼룸에서 하이메 아욘을 만나 오브젝트 컬렉션에서 선보인 제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1 프리츠 한센의 ‘오브젝트’ 컬렉션에서 캔들 홀더와 꽃병을 선보인 하이메 아욘. 2 브라스로 제작한 구조적인 디자인의 캔들 홀더.
프리츠 한센의 오브젝트 컬렉션에서 선보인 ‘이케바나’ 꽃병에 대해 소개해달라. 이케바나는 일본 꽃꽂이에서 영감을 얻은 꽃병이다. 투명한 꽃병 안에 핀을 꽂고 거기에 꽃을 꽂으면 밖에서도 꽃의 뿌리와 줄기를 모두 볼 수 있다. 그런 자연스럽고 정직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 디자인하게 된 꽃병이다. 꽃병은 물을 갈아줘야 하는데 기존의 방식은 물을 갈 때마다 번거로워서 이케바나를 디자인할 때 브라스로 된 넓은 패널을 꽃병 안에 끼워 물을 쉽게 갈 수 있다.
BD바르셀로나를 비롯해 지금까지 선보인 꽃병과 달리 섬세하고 퓨어한 디자인의 꽃병을 선보였는데 취향의 변화인가? 하하. 물에서 보이는 뿌리와 줄기 모습에 관심이 생겼다. ‘로&하이’ 꽃병의 보디는 유리를 입으로 불어서 만드는데 어느 정도 볼륨이 생기면 커팅을 한다. 그대로 두면 기우뚱거려 세워둘 수 없기에 삼나무로 받침대를 만들었다. 받침대의 냄새를 꼭 맡아보길! 아주 자연적이다.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꽃을 바라보고 싶었고, 꽃병 디자인도 그러길 바랐다. 또 별도의 모양을 만들지 않고 받침대만 있으면 되니까 비용도 절감됐다.
2년 전 서울을 찾았을 때 집을 공사한다고 했는데 마무리가 되어가나? 전혀! 3년째 진행 중이다. 알다시피 난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쓴다. 지금도 충분히 멋지지만, 내 집을 위해 디자이너를 초빙해야 할 지경이다. 집이다 보니 공을 많이 들이게 된다.
프리츠 한센과 일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무엇인가? 몇 번 합을 맞추다 보니 서로 원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기 쉬워졌다. 프리츠 한센은 모든 면에서 진지한 면이 있고, 원하는 방향이 확실하며 솔직하다. 여러 개의 프로토타입 제품을 만들고 실제로 출시되는 제품은 별로 없는 브랜드도 많은데, 프리츠 한센은 그런 거드름을 피우는 브랜드와는 사뭇 다르다.
이번엔 가구가 아닌 소품을 디자인했는데, 가구와 소품 디자인의 접근은 어떻게 다른가? 디자인할 대상의 크기가 작으면 쉬워 보이지만, 너무 작아지면 더 어려워진다. 내 손목에 찬 시계를 보라. 생각만 해도 어지럽다. 작은 소품은 가구에 비해 패키지나 조립에 더 신경 써야 한다. 또 기능적인 테스트도 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 이번에 선보인 브라스 소재의 캔들 홀더는 자칫 여러 개의 초를 켰을 경우 서로 엉겨서 불이 날 수도 있기 때문에 간격을 계속 테스트했다. 반면 가구는 몸과 관련된 편안함에 신경 쓴다. 앉았을 때 불편한 의자는 정말 재앙이다.
제품을 디자인할 때 디자이너의 개성과 브랜드의 철학을 어떻게 조합하나? 요즘은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입김이 70대30인 것 같다. (웃음) 좋은 협업이란 잘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듯하다. 조합의 문제다. 어떤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의 디자인을 강요한다. ‘내가 디자인했으니 그대로 따라!’ 이런 식이다. 이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귀를 기울일수 록 결과물은 더 멋지다. 바카라와 협업 때도 그 부분을 느낄 수 있었다.그들의 조언을 받아들이니 결과가 좋았다. 물론 BD바르셀로나처럼 나의 유난한 개성을 마구 펼칠 수 있게 해주는 브랜드도 있다.
3 꽃을 한 송이씩 꽂을 수 있는 ‘이케바나’ 꽃병. 4 유리 블로잉 기법을 자연스러운 형태로 살린 ‘로&하이’ 꽃병.
에르메스가 건축한 비밀의 사원
밀라노 시내에 위치한 테아트로 베트라에서는 마치 역사와 비밀을 품고 있는 사원이나 궁전을 연상케 하는 신비로운 전시 공간이 마련됐다.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구웠다는 독특한 질감의 벽돌과 낮은 조도의 조명 아래 펼쳐진 새로운 홈 컬렉션은 에르메스의 새로운 아트 디렉터 샬롯 마커스 펄맨과 알렉시스 파브리의 지휘 아래 가구, 오브제, 퍼니싱 패브릭 및 벽지 컬렉션을 전시했다. 도르래를 이용해 공중에 떠 있거나 삐딱하게 놓여 있는 디스플레이는 에르메스의 창의성과 오브제의 균형감을 표현한 것으로,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에르메스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전시였다. 올해 새로 부임한 아트 디렉터 샬롯 마커스 펄맨과 알렉시스 파브리에게 이번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1 완벽한 비례감의 ‘셀리에’ 소파. 2 에르메스 파빌리온의 모습. 3 ‘플레이드 더블 홀스’ 원단.
파빌리온 디자인이 역사를 품은 사원 같은 느낌이다. 이번 전시의 컨셉트는? 멕시코 출신의 건축가 마우리치오 로샤 Mauricio Rocha와 가브리엘 카릴로 Gabriela Carrillo가 디자인한 파빌리온이다. 굳은 흙처럼 보이는 화산 응결물인 투포 Tofo 블록 1만7000개로 완성되었다. 파빌리온 안에는 4개의 방이 중앙 파티오를 둘러싸고 있으며, 73개의 3.7m 기둥이 자리한다. 에르베 소바주 Herve Sauvage의 지시로 배치된 오브제들은 딱딱하고 기하학적인 파빌리온 구조에 약간의 색감과 가벼움을 가미해 공간을 연결하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오브제를 연결해주는 고리는 무엇인가? 균형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모든 컬렉션에 있어 오브제가 아무리 많아도 서로의 매력을 숨기지 않도록 한다. 예를 들어 ‘이퀘빌레 Equilibre’ 컬렉션의 모든 오브제는 각각 정해진 위치에서 일관성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이젤 피크의 일러스트 작업은 다양한 색채와 질감도 흥미롭지만, 스토리를 가진 작업이라는 점이 돋보인다. 그와의 작업 얘기가 궁금하다. 나이젤 피크 Nigel Peake의 기교, 즉 형상과 추상적인 요소의 사이를 계속 오가는 디자인은 정말 감탄을 자아낸다. 그는 성공적으로 환상과 엄격을 결합하며 이 컬렉션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파트너 역할을 해주었다.
건축가 라파엘 모네오의 오리아 체어로부터 영감을 받은 ‘오리아 데르메스’ 컬렉션은 직선과 곡선, 절제와 표현 등 균형의 문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의자에 관해 설명해달라. 이미 알 수 있겠지만, 1960년대 초반에 라파엘 모네오 Rafael Moneo가 ‘오리아 Oria’ 의자를 제작했고, 그것이 오리아 데르메스 Oria d’Hermes 컬렉션의 영감이 되었다. 이 컬렉션은 균형과 조화의 개념을 넘어 에르메스의 노하우와 최고급 소재를 통해 안락함을 제공한다. 벨벳 느낌의 가죽 소재를 사용한 등받이는 가슴 아래에서부터 몸을 받쳐주고 인체에도 반응하여 의자의 기본 형태와도 잘 어우러진다. 진지하고 순수한 이번 컬렉션의 의자와 안락의자는 보여지는 선들의 유동성과 이것을 그린 손의 능숙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번 컬렉션은 에르메스에 부임한 이후 처음 선보이는 것이다.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고 준비했는지, 앞으로 어떤 작업을 기대하면 좋을지 궁금하다. 아쉽게도 지금은 밝힐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밀라노에서 공개한 컬렉션에 큰 관심을 가져준 만큼, 향후 프로젝트도 마음에 들길 바란다.
4 아트 디렉터 샬롯 마커스 펄맨과 알렉시스 파브리.
5 가죽 소재 병풍 ‘파라벤트 피파’. 6 건축가 리파엘 모네오의 ‘오리아’ 체어. 7 소파 겸용 침대 ‘메리디엔 피파’.
1 프리츠 한센의 ‘오브젝트’ 컬렉션에서 캔들 홀더와 꽃병을 선보인 하이메 아욘. 2 브라스로 제작한 구조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