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페스티벌은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가 열리는 로 피에라 전시장에서만 개최되는 게 아니다. 밀라노 쇼핑의 중심지인 몬테 나폴레오네, 브레라, 람브라테, 토르토나 등 밀라노 거리 구석구석이 디자인 열기로 휩싸인다. 그곳에서 만난 수백 개의 전시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전시만 모아봤다.
거리 축제, 셀레티 퍼레이드유쾌하고 키치한 디자인 제품을 소개하는 셀레티는 밀라노 시내에서 재미있는 퍼레이드를 진행했다. 퍼레이드는 ‘디자인 프라이드’의 일환으로 진행됐는데, 일반인도 함께 축제처럼 즐길 수 있는 참여형 이벤트로 비가 많이 내렸음에도 많은 이들이 음악에 맞춰 춤도 추며 행진을 이어갔다. 셀레티와 찰떡궁합으로 잘 어울리는 브랜드 구프람과 매거진 <토일렛 페이퍼>, 파비오 노벰브레가 새롭게 해석한 펩시, 이탈리아의 종이 손수건 브랜드 템포도 참여해 흥겨움을 더했다. 특히 펩시는 이모티콘과 결합한 거대한 트럭과 모형으로 펩시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으며, 구프람은 시그니처 제품인 입술 모양의 ‘보카’ 소파와 선인장 모양의 코트행거 등으로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주최 브랜드인 셀레티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미들 핑거’ 오브제를 자동차 위에 장식해 선보였고, 이탈리아 리큐르 브랜드 디사론노가 퍼레이드의 종착점인 피아차 아파리에서 파티를 열고 스튜디오 욥과 협업해 만든 5000개의 리미티드 에디션 유리병도 판매했다.
50개의 만화 의자오키 사토가 이끄는 디자인 그룹 넨도는 일본 만화에서 영감을 얻은 50개의 의자 ‘망가 체어’를 브레라 지역에서 전시했다. 각 의자는 만화에서 추상적으로 표현되는 감정, 말줄임표 등을 상징한다. 넨도는 모든 의자를 거울처럼 비치는 스테인리스 소재로 제작했는데, 이는 만화가 현실을 반영하는 것처럼 의자에 비친 현실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망가 체어는 만화에서 온 의자인 만큼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를 유발하는 다양한 디자인으로 시선을 끌었다. 아이들도 재미있는 의자 디자인을 보며 즐거워했던 야외 전시로, 하얗게 깔린 자갈 위에 전시된 반짝반짝 빛나는 50개의 의자는 한 편의 만화처럼 즐거움을 선사했다.
뻐꾸기시계여, 영원하라람브라테에서 만난 귀여운 전시 하나.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헤드 대학교 학생들의 뻐꾸기시계 전시다. 뻐꾸기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추억의 시계는 학생들의 신선한 아이디어로 재탄생했다. 기술적인 면을 부각한 시계부터 주얼리 같은 디자인, 영상과 결합한 시계 등 뻐꾸기시계의 본고장에서 온 학생들이 선보인 디자인은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며 뻐꾸기시계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했다.
바로비에르&토소 + 파올라 나보네 이탈리아의 유리공예 조명 브랜드 바로비에르&토소는 올해 로 피에라가 아닌 슈퍼 스튜디오 피우에서 파올라 나보네와 인스피레이션 전시
노두스의 반전의 미카펫 브랜드 노두스는 브레라 지역에서도 아름다운 장소로 꼽히는 북부 이탈리아 신학학교에서 신제품 카펫을 소개했다. 고풍스러운 건물 벽에 카펫을 액자처럼 걸었는데, 자연스럽게 다듬어진 정원과 어우러져 마치 그림 작품을 보는 듯했다. 노두스는 공예적인 기술과 디자인으로 오브제 같은 카펫을 선보여왔으며 올해에도 마탈리 크라세, 샘 바론, 세바스티안 젠슨 등의 디자이너와 함께 새로운 카펫을 소개했다. 원주민 사미족의 옷에서 영감을 얻은 ‘노아이디 각티’, 인간의 침입으로 균형이 깨진 자연을 표현한 ‘르 사이클’, 바나나에 관한 추억에서 시작된 ‘땡스 어 번치’ 등 개성 있는 카펫과 클래식한 공간이 어우러져 묘한 반전의 미를 느낄 수 있었다.
승승장구 디모르 스튜디오디모르 스튜디오는 밀라노 솔페리노 거리에 위치한 디모르 갤러리에서 작년처럼 주거 인테리어 형식의 신제품 컬렉션을 진행했다. 2014년 메종&오브제에서 올해의 디자이너로 선정된 이후 매년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이들은 작년에 비해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의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들의 강점인 믹스매치를 잘 보여준 이번 전시는 디모르 스튜디오가 재해석한 샹들리에 베니니를 비롯해 1960~70년대 풍경에서 영감을 얻은 역사적인 테마를 보여줬고 방문객은 조명, 몰딩, 벽지, 가구를 아파트 내부를 둘러보며 감상할 수 있었다. 짙은 네이비 컬러로 칠한 바닥과 벽, 여성스러운 핑크 포인트와 빈티지한 감성이 어우러져 마치 과거로 돌아가 그 시대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우르키올라!브레라 디자인 디스트릭트를 걷다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 가구가 있다. 전면이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화려하고 청량한 분위기의 가구였다. 갤러리 스파지오 폰타치오에서 전시한 이 가구는 ‘크레덴자’ 시리즈로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와 페데리오 페페가 협업한 컬렉션이다. 크레덴자는 이탈리아어로 ‘찬장’을 뜻한다. 스파지오 폰타치오는 두 명의 디자이너에게 스테인드글라스를 적용한 현대적인 가구를 부탁했고, 그 결과 크레덴자 컬렉션이 탄생했다. 가구는 이탈리아의 장인들이 천년 넘게 다뤄온 스테인드글라스 기술로 제작했으며 가구 내부의 디테일도 실용적이라 실생활에서 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가을 준비 마리메꼬핀란드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마리메꼬는 브레라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F/W 컬렉션을 소개했다. 북유럽의 어느 아파트를 그대로 옮겨온 듯 내부를 공간별로 꾸몄는데, 핀란드를 대표하는 가구 브랜드 아르텍도 참여해 공간의 완성도를 높였다. 마리메꼬는 가을과 겨울철 실내에 적용할 수 있는 특유의 대담한 프린트를 입힌 테이블웨어와 베딩, 쿠션 커버와 같은 다양한 홈 액세서리를 거실과 침실, 서재, 다이닝 공간으로 나눠 실제 집처럼 꾸며 선보였다. 밖은 4월의 봄 날씨였지만 마리메꼬의 아파트는 벌써부터 가을이 기다려질 만큼 충분히 포근하고 따뜻했다.
Triennale Again!올해 트리엔날레 전시장에서는 푸오리 살로네 전시장 가운데서도 화제가 될 만큼 대형 전시들이 열렸다. 근 몇 년간 트리엔날레 전시장에는 한국관만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해왔던 터라 이들 전시가 더욱 반가웠다. ‘21세기의 디자인을 잇는 디자인’이라는 주제 아래 열린 이번 전시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여성 디자이너의 작품을 모두 모은 ‘우먼 인 이탤리언 디자인’을 비롯해 안드레와 브란지와 하라 켄야가 공동 기획한 ‘네오 선사시대’, 한국의 공예의 힘을 만날 수 있었던 ‘새로운 공예성을 찾아가는 공동의 장’, 이탈리아와의 수교 150주년을 기념해 만든 일본관에서는 전통문화와 창의성, 최신 테크놀로지를 동시에 선보였다. 작가 28명의 154점을 전시했던 한국관에서는 장인들의 작품과 더불어 해외에서도 활동하는 박원민, 이광호, 서정화 등 젊은 디자이너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되어 신구 세대를 아우르는 한국의 디자인 파워를 유감없이 세계에 보여줬다. 또한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작가의 철학 등을 담은 영상을 소개해 작가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인지에 관한 문제작년에 큰 성공을 거두어 올해 더욱 업그레이드된 전시로 돌아온 전이 팔라초 리타에서 진행됐다. 이름 그대로 인지, 지각에 관한 철학적인 컨셉트를 지니고 있지만, 디자인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전시다. 입구에 들어서면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디베도 프란시스 케레가 갈대와 나무로 아프리칸 스타일의 ‘코트 야드’를 전시한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가게나우, 리바 1920, 발레리 오브젝트 등의 브랜드 제품과 어우러진 코트 야드는 나무 의자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친 발걸음을 잠시 멈출 수 있는 공간이었다. 실내에서는 영 디자이너와 작가들의 전시가 진행됐는데, 밀라노 폴리테크노 대학의 인테리어 디자인학과 학생들의
예술적인 가구 갤러리, 닐루파 데포이탈리아의 하이엔드 가구 시장을 좌지우지할 만큼 영향력 있는 갤러리스트이자 가구 수집가로 활동하는 니나 야사르. 그녀가 작년에 오픈한 닐루파 데포는 과거 은 식기 공장을 개조해 만든 1500㎡ 규모의 초대형 갤러리로, 입구에서 3개 층이 한눈에 보이는 웅장함으로 관람객들을 압도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20세기 초반의 목제 가구부터 1940~50년대의 가구와 조명 그리고 신진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과감히 믹스매치한 공간을 연출했다. 데이비드 니콜라스, 마르티노 감페르, 네르 메이리 등 20여 명의 디자이너가 합작해 만든 공간을 보고 있노라면 동양과 서양, 빈티지와 컨템포러리 가구들을 믹스매치하는 닐루파만의 남다른 감각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지오 폰티의 초기작과 린지 에델만 조명이 조화를 이룬 공간, 프라다와 미우미우 매장을 설계하고 디자인한 건축가 로베르토 바키오치가 연출한 거울의 방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비아 스피가 거리에 위치한 닐루파 갤러리에서는 1940~70년대 활동했던 브라질 디자이너들의 작품 40여 점이 전시됐다.
헤이 테라스헤이는 아웃도어 테라스와 카페, 구획을 나눈 부스 공간이 합쳐진 멀티풀한 전시를 꾸몄다. 부훌렉 형제의 아웃도어 가구인 ‘팔리사드’를 야외에 두어 테라스 같은 공간으로 꾸몄고, 내부는 칸막이로 나눈 10개의 공간마다 제품을 디스플레이해 미로처럼 다니면서 구경할 수 있었다. 헤이는 전시에서 팔리사드 외에도 슈홀텐&바이엥스의 새로운 조명을 비롯해 잉가 상페의 거울 등 신제품을 소개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또 밀라노 디자인 위크 동안 헤이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팝업 미니 마켓과 카페도 오픈해 전시도 감상하고 쇼핑도 하고 잠시 앉아 목도 축일 수 있는 원스톱 전시로 큰 호응을 얻었다.
지겨움을 던져버려!네덜란드 가구 브랜드 렌즈벨트는 람브라테에서 인상적인 전시를 보여줬다. 참여형 전시로 이뤄진
심플한 조합구조적인 라인 조명을 선보여온 미카엘 아나스타시아데스가 조명이 아닌 가구 컬렉션을 허먼 밀러를 통해 처음 발표했다. 허먼 밀러의 밀라노 쇼룸에서 선보인 그의 가구는 스툴이다. 그가 선보였던 거대한 펜던트 조명과 어우러진 스툴은 아나스타시아데스와 허먼 밀러의 장점을 조화롭게 담아냈다. 월넛과 오크 소재로 만나볼 수 있는 스툴은 원형 상판과 다리, 브라스 다리로 이뤄진 정갈한 디자인의 가구로 바 스툴부터 낮은 스툴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원형과 직선의 조합만으로도 이렇게 갖고 싶은 스툴이 탄생하다니! 조명 디자이너의 또 다른 가구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신예 디자인 파워, 세컨돔밀라노의 디자인 갤러리 세컨돔에서는 ‘레이디스&젠틀맨’이라는 주제 아래 소속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세컨돔은 5.5 디자이너, 마테오 시빅, 샘 바론, 키키 판 에이크 등의 유명 디자이너가 활동하는 갤러리로 액세서리와 가구 소품 등 실험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작품을 소개한다. 올해 전시장에서 시선을 사로잡았던 가구는 타이다이 기법으로 물들인 벨벳과 금속 소재를 조화시켜 만든 ‘어웨이팅’과 나무를 손으로 구긴 듯한 독특한 질감의 ‘뷔페’ 수납장. 두 가지 작품 모두 이탈리아의 신진 디자이너가 만든 것으로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
토르토나를 빛낸 LG하우시스매년 한국을 대표하는 굵직한 브랜드에서 꾸준히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참가해 코리안 디자인을 세계인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타지에서 만나는 한국 브랜드는 더욱 반갑기 마련인데, LG하우시스는 올해로 연속 6년째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 참가해 밀라노 토르토나 지역에 위치한 슈퍼 스튜디오 피우에서 자동차 부품, 인조대리석, 창호, 바닥재, 인테리어 필름 등을 활용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서 LG하우시스는 개성 있는 전시 부스로 LG하우시스만의 최신 제품을 소개했다. 인조대리석인 ‘하이막스’로 제작한 5개의 웅장한 기둥에 자동차 부품과 표면 소재, 창호, 바닥재, 인테리어 필름 등 주요 제품을 소개했는데 방문객은 기둥에 전시한 제품을 자연스러운 동선에 따라 구경할 수 있었고, 360도로 돌아가면서 바라볼 수 있는 독특한 전시 구성은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빛의 투과가 가능해 내비게이션과 같은 자동차 전자 부품과도 결합이 가능한 자동차 원단 ‘디스플레이 스킨’, 천연 대리석으로는 불가능한 3D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는 인조대리석 제품 등이 주목받았다. 또 대형 디스플레이 화면을 통해 LG하우시스 주요 제품의 디자인 패턴이 전시 공간 전체에 반사되는 디자인 영상물도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인 알레산드로 멘디니, 카림 라시드, 벤 판 베르켈, 스테파노 지오반노니, 마르셀 반더스와의 협업을 통해 출시한 제품은 밀라노 현지에서도 큰 관심을 받아 세계적인 디자인 전시의 중심에서 LG하우시스는 디자인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다. 디자인 역량을 지닌 브랜드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자신들의 기량을 뽐낼 수 있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당당하게 한국 브랜드의 디자인과 기술을 알린 것만으로도 한껏 뿌듯했던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