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람객이 그린 동식물에 생명이 부여되는 ‘그래피티 네이처’. 2 빛의 조각들이 모여 소우주를 만드는 ‘크리스탈 유니버스’. 3 공을 두드리거나 굴리면 색과 소리가 변하는 ‘라이트 볼 오케스트라’.
첨단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무력화시킨다고 하지만, 새로운 상상력으로 고차원의 세계로 이끌기도 한다. 일본의 디자인 집단 팀랩 TeamLab은 바로 그런 세계를 만들어주는 디자이너다. 스스로를 ‘울트라 테코놀로지스트 Ultra-Technologists’라 이름 짓고 예술과 과학, 기술, 창작이 조화를 이룬, 이제껏 경험할 수 없었던 디지털 영상 아트 작품을 선보인다. 그들을 알게 된 건 작년 봄 싱가포르 출장에서였다. 빅뱅 탑과 함께 싱가포르 시내에 있는 전시장을 돌다 이칸 갤러리에서 맞닥뜨린 팀랩의 전시를 보고, 그는 꽃밭 같았던 전시장 바닥에 누웠고 스태프들 역시 한동안 아이처럼 꽃을 만지고 뛰어다니며 전시를 감상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디지털 영상 아트라는 생소한 장르였지만 작품을 보는 순간부터 동화될 수밖에 없을 만큼 강한 마력을 지닌 전시로 기억된다. 팀랩의 수장 이노코 토시유키는 도쿄 대학에서 계수공학을 전공한 공학도로, 대학 시절 학교 벤처로 팀랩을 결성했다. 시작부터 예술가,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CG애니메이터, 수학자, 건축가, 웹 디자이너, 에디터, 그래픽디자이너, 화가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모아 새로운 예술 세계를 펼친 이들은 15년 만에 직원이 400여 명으로 늘어날 만큼 성공한 디자인 그룹으로 불린다. 이들의 성장 가도에 날개를 달아준 건 감성인간공학이 밑바탕이 됐기 때문. 쉽게 말하면 모니터에서 빠져나온 다양한 캐릭터들이 현실에 존재해 인간의 감각과 감성을 자극해 관람객들은 작품과 소통하고 곧 감동하게 된다.
4 100년 동안 상영될 ‘백년해도권’의 시간을 단축해 직관적으로 표현한 ‘백년해도권 애니메이션 디오라마.’ 5 계절적 흐름에 맞춰 꽃들이 피고 지며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꽃과 사람’. 모니터로 보이는 작품은 꽃의 탄생과 죽음의 순환이 반복됨을 그린 ‘증식하는 생명 Ⅱ’이다.
2015년은 팀랩이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핫한 디자이너임을 확인시켜주는 해였다. 9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메종&오브제 20주년 기념전에 초대 받아 2만여 송이의 꽃으로 연출한 ‘Floating Flower Garden’을 만들어 화제가 됐고, 밀라노 엑스포 일본 파빌리온 부스에서는 자연의 싱그러움을 만지며 교감할 수 있는 ‘Harmony’를 선보여 밀라노 엑스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에게 주는 ‘베스트 프레젠테이션’상을 수상했다. 올해 2월에는 예술에 배타적인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3월부터는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에 이어 서울에서도 상설전을 개최했다. 이노코 토시유키는 기자 간담회에서 “우리가 만드는 작품을 통해 인류가 한층 창조적이고 지적으로 진화해 평화로운 세상이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예술을 통해 그런 세계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라고 말했다.
서울 롯데월드에 들어선 팀랩 월드는 1700㎡에 14개의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전시 공간은 미디어 아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댄스 아트 뮤지엄’과 체험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며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런&플레이! 퓨처파크’로 구성되고, ‘댄스 아트 뮤지엄’은 6개의 아트 작품으로 선보인다. 우주 공간을 표현한 ‘크리스탈 유니버스’는 수많은 LED로 표현된 빛의 집합이 입체적인 조각을 만들어 화려함과 장엄함을 자아내 번쩍이는 소우주를 경험할 수 있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꽃이 피고 지며 변화하는 ‘꽃과 사람, 통제할 수 없지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1년에 1년을’이라는 작품은 작품 속 꽃을 만지거나 밟고 걸어다니는 등의 행동을 인식해 매 순간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또 세계자연기금이 2009년 발표한 보고서의 예측 데이터를 바탕으로 100년 동안의 해수면 변화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백년해도권’과 이를 단축해볼 수 있는 ‘백년해도권 애니메이션 디오라마’ 등의 예술 작품을 경험할 수 있다. 8종의 아트 어트랙션으로 구성된 ‘런&플레이! 퓨처파크’는 체험자들이 함께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방식으로, 미래형 파크를 엿볼 수 있다. 특히 ‘그래피티 네이처’에서는 관람객이 직접 그린 물고기 스케치가 눈앞의 공간에 뛰어들어 힘차게 헤엄치는 디지털 수족관이 만들어지는 마술 같은 세계가 펼쳐진다. 전시를 관람하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니 너도 나도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 있다. 이노코 토시유키가 말한 평화로운 세상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