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감성과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호텔28 명동이 오픈했다. 디자인을 앞세운 부티크 호텔에서 한발 넘어서, 문화 콘텐츠와 섬세한 배려로 무장한 이곳에서 영화 같은 하룻밤을 기대해본다.
독특한 구조감을 지닌 디자이너 린지 에델만의 조명이 포인트 역할을 하는 라이브러리.
1,4 도시적이고 젊은 감각의 로비 층. 엘리베이터에 호텔 이름인 28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28은 신영균 명예회장이 태어난 해인 1928에서 따왔다. 호텔28 명동은 국내 최초로 ‘SLH(small luxung hotels of the world)’를 인증 받았다. 2 오픈 이후 거의 매일같이 호텔을 찾으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는 신영균, 신언식 부자. 3 에르메스 디렉터스 체어가 놓인 공간. 바로 옆으로 호텔에 하나뿐인 디렉터스 스위트룸이 있다.
서울의 중심부인 명동은 과거 문화와 예술인들의 교류의 장이자 근대 문화의 중흥기를 이끈 역사적인 장소다. 그러나 현재의 명동은 과거의 멋과 낭만이 많이 퇴색한 모습이다. 한국 문화 예술의 태동을 이끌었다고 평가되는 명동 예술극장은 고요하고, 수많은 브랜드숍과 레스토랑이 골목 구석구석을 빽빽하게 점령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명동은 여전히 생기 넘치는 거리다. 길을 걷다 보면 한국말보다는 영어와 일본어, 중국말이 더 많이 들려올 정도로 수많은 관광객이 명동을 찾고 있고, 한류의중심을 이끌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최근 명동에는 과거의 문화적 번성과 영광을 다시 한번 되살리겠다는 포부를 지닌 ‘호텔28 명동’이 새롭게 들어섰다. 호텔28 명동은 한국 문화 산업의 선두주자이자 원로 배우인 신영균 명예회장이 뜻을 세우고, 이를 이어받은 아들 신언식 회장이 완성한 곳. 지금은 온갖 상업 시설에 가려져 있지만 명동에 내재돼 있는 문화와 예술적 감성을 경험할 수 있는 시설과 한류 콘텐츠를 융합시켜 명동의 과거와 현재를 경험할 수 있는 차원이 다른 호텔을 만들고자 했다.
5 트라토리아 3브릿지스 안쪽의 테이블. 그린 톤으로 베리에션을 주고, 골드 컬러 조명을 포인트로 적절히 활용해 세련되고 아늑한 느낌을 자아낸다. 6 블랙 앤 화이트 컬러를 사용한 화장실 또한 모던하고 멋스럽다. 7 호텔28 명동의 오픈으로 명동에 새로운 문화 열기를 일으키겠다는 포부를 내비치는 신언식 회장.
디자인과 효율성을 앞세운 여타의 부티크 호텔과 달리 호텔28 명동은 세련된 디자인과 컨셉트를 기본으로 하되, 신영균 명예회장이 살아온 인생의 궤적을 한 편의 흑백영화처럼 감상할 수 있도록 컨셉트를 잡은 것이 남다르다. 시종일관 수많은 사람이 바쁘게 오가는 명동의 한복판에 위치한 호텔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1900년대에 사용됐을 법한 빛바랜 영사기가 벽면에 흑백영화를 투사하는 고전적인 모습으로 첫인사를 건넨다. “근사한 호텔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요. 하지만 스토리와 문화적인 요소를 응축한 호텔을 만드는 것은 아주 많은 노력과 기획력을 필요로 합니다. 배우로서 지난 50년간 영화에 바쳐온 아버님의 삶 속에 투영된 영화와 문화적인 요소를 건물 외관을 비롯한 공간 곳곳에 자연스럽게 담아내고자 노력했어요.” 호텔28 명동은 다이아나그램의 송규만 교수가 공간의 컨셉트부터 브랜드, 설계를 비롯해 호텔의 사이니지 Signage, 내부 소품 등 세세한 영역까지 디자인을 담당했다. 그는 무엇보다 신영균, 신언균 부자의 뜻에 부합해 영화를 비롯한 문화적인 요소를 호텔 곳곳에 녹여내고자 했고, 그래서 작업도 도면이 아닌 ‘호텔 시나리오’라는 컨셉트 북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다. 호텔28 명동은 디테일을 살린 외관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저층부는 영화가 가장 부흥했던 시기를 떠올릴 수 있도록 빈티지한 고벽돌로 마감하고, 상층부는 영화의 본질인 ‘빛’이 건물 전체를 발하도록 글라스와 내부 LED 조명을 이용한 아이디어가 독특하다. 호텔 외관이 영화 자체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면 호텔 내부는 영화 제작 소품들을 곳곳에 배치해 영화 프로덕션의 느낌을 살렸다. 카메라의 조리개를 디자인에 적용한 객실 넘버, 슬레이트 모양의 층별 안내 사인 등 호텔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재미가 톡톡하다.
주황색의 안토니오 치테리오 소파, 피파 컬렉션의 테이블, 엔조 아리 체어 등 가구부터 슈발도리앙 라인의 테이블웨어 등의 소품까지 에르메스 제품으로 채운 디렉터스 스위트룸.
조식 뷔페는 물론 유러피언 퀴진을 만날 수 있는 트라토리아 3브릿지스.
지상 5층 규모에 83개의 객실로 이루어진 호텔은 남다른 구조와 모던한 인테리어를 표방한다. 호주 및 싱가포르 등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24개의 지사를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디자인 그룹인 HBO+EMTB이 객실 레이아웃 전반과 인테리어를 진행했으며, HBO+EMTB은 이곳의 객실을 인근의 어떤 호텔보다 더욱 돋보일 수 있도록 기능과 디자인 등에서 다각도로 노력했다. 특이한 점은 각 객실의 세면대가 욕실과 분리돼 외부에 있다는 점. 또 샤워룸의 전체 벽면에 투명 유리를 적용해 공간감을 극대화했다. “오픈 전 객실마다 일일이 돌아다니며 마감재와 동선을 체크하고, 직접 투숙을 해보는 등 손님의 입장에서 호텔을 객관적으로 느껴보고자 노력했어요. 제가 편해야 투숙객도 편할 수 있잖아요.” 모든 객실의 벽면에는 복고풍의 흑백영화 스틸이 걸려 있다. <횃불> <빨간 마후라> 등 신영균 명예회장이 출연했던 영화의 한 장면으로 영화들의 내용을 짐작해보는 것만으로도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또 호텔에는 에르메스의 가구 및 소품들로 채워진 단 한 개의 ‘디렉터스 스위트룸’이 마련되어 있어 이목을 끈다.
8 조리개를 차용한 디자인의 룸넘버. 9 호텔 곳곳에 필름통 등 영화 소품을 활용해 장식했다. 10,11 고깃집인 삼거리 푸줏간, 카페인 3버즈, 맥주를 마실 수 있는 K펍 등으로 이루어진 YG 리퍼블리크에서는 취향에 따라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12 트라토리아 3브릿지스에서 만날 수 있는 맛깔스러운 스테이크. 13 2층에 위치한 신언식 회장의 집무실.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의 집무실만 봐도 그의 세련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지난 2012년 신영균 명예회장은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의 밤’에서 한국 영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에르메스로부터 ‘디렉터스 체어’를 헌정 받았다. 디렉터스 체어는 작고한 장 루이 뒤마 에르메스 전 회장의 부인인 르나 뒤마가 직접 디자인한 의자로 배우 신영균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이것을 모티프로 한 디렉터스룸은 에르메스의 벽지로 마감하고 소파와 테이블, 식기까지 모두 에르메스 제품으로 채워져 격조 높은 하룻밤을 선사한다. 호텔28 명동만의 색다른 경험은 각 층에 포진한 식음 공간에서도 빛을 발한다. 먼저 호텔의 1층에는 YG 엔터테인먼트와의 협업으로 ‘YG 리퍼 블리크’를 오픈했다. 호텔 2층에는 유명 딤섬 맛집이 딘타이펑이 위치하며, 3층에는 호텔에서 직접 운영하는 트라토리아 3브릿지스가 조성돼 있다. 뷔페를 비롯해 브런치 메뉴, 파스타, 스테이크, 피자 등을 주로 선보이는 이곳은 요즘 신영균, 신언식 부자가 자주 찾는 곳이다. 멋쟁이로 통하는 두 부자는 이곳에서 마주 앉아 편안하게 식사를 하며 사업을 비롯한 소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1970년대 초반, 이 건물에는 음악 감상실인 ‘로즈가든’, 볼링장인 ‘신스볼링’ 등이 있었어요. 이곳에서 어니언스라는 가수가 활발하게 활동했고, 또 청바지 문화도 탄생했죠. 과거의 문화 중심지였던 명동을 현대에 맞게 업그레이드해서 새로운 문화 코드를 선도하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지금의 명동은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이지만, 이 모든 사람을 포용할 만한 제대로 된 문화 코드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명동은 오랜 시간 서울의 중심을 지켜온 내공 있는 장소다. 신영균 명예회장은 호텔28 명동을 통해 이곳에 내재해 있는 힘을 일깨우길 오늘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