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새 없이 움직이는 바쁜 사람들.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가는 빌딩들. 홍수처럼 쏟아지는 새로운 제품과 디자인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디자인과 관련한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와 경험이 일상이 되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아직까지도 뭔가 획기적인 것을 외칩니다. 올해만큼 ‘라이프스타일’이란 단어를 귓속에 박힐 정도로 들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를 관통한 핵심 화두가 라이프스타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메종> 창간 22주년을 기념하면서 준비한 이번 특집에서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현상을 읽어봤습니다. 리빙, 인테리어, 건축, 푸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18명의 전문가들이 라이프스타일의 생생한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1,3 윌리엄 모리스가 디자인한 고전적인 느낌의 식물 패턴 벽지와 영국 앤티크 가구로 꾸민 공간. 2 오르에르의 백미인 뒤뜰에 앉아 있는 김재원 대표.
식물과 공간
요즘 인기 있는 카페의 키워드는 식물이다. 자그마치, 오르에르도 식물 카페로 알려지면서 성수동 핫 플레이스로 등극했다. 사람들이 식물 카페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자그마치와 오르에르를 운영하는 김재원 대표에게 물었다. “오르에르를 찾는 손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옛날 할머니 집 같아요’라는 말이에요. 요즘은 대부분 아파트에 사니까 마당이나 작은 정원을 가진 집을 찾기가 쉽지 않은 거죠. 식사도 포기하고 식물을 감상하며 차를 마시는 직장인들을 보면서 건조한 일상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위안을 얻고 싶어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느꼈어요.” 공간 기획을 하는 스튜디오 ZgMc도 함께 운영하는 김재원 대표는 공간 연출을 할 때 언제나 식물을 염두에 둔다고 한다. “성수동은 공장 지대였기 때문에 특유의 삭막함이 남아 있었어요. 자그마치도 남성적이고 거친 느낌을 중화하기 위해 꽃을 사다 놓기 시작했어요. 또 저는 예쁘게 포장된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꽃은 그 자체로 충분히 예쁘기 때문에 어떤 장식도 필요하지 않죠. 그래서 그냥 툭툭 꽂아두는데 거기서 느껴지는 특유의 자연스러움이 있어요.” 식물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수형이 가지런하지 않아 시장에서 상품성이 없다고 말하는 식물에 더욱 매력을 느낀다. “이국적인 식물들이 유행인데 최근에는 올리브나무나 유칼립투스처럼 페일한 색의 식물이 인기인 것 같아요. 하얗게 물 빠진 듯한 색상이 이색적인 느낌을 주거든요.” 오르에르에도 유칼립투스가 있다. 세 그루를 샀는데 그중 하나만 쑥쑥 자라는 게 신기해서 계속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 새소리, 꽃향기와 열매 등 식물은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많은 것을 선사한다. 식물 덕에 공간이 풍성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1 오스트리아 가구 회사 GTV의 우아하고 실용적인 의자. 2 알루미늄과 아연 도금으로 제작되어 묵직하고 멋스러운 맘마미아 Mammamia 의자. 3 국내에서 잘 접하지 못했던 디자인의 가구, 소품 등을 선별해 소개하는 챕터원 콜렉트. 4 편집숍 챕터원과 자체 브랜드 스틸라이프 Still life를 이끌고 있는 구병준 대표.
취향을 찾는 편집숍
상품 리테일숍이 언젠가부터 라이프스타일 편집숍로 불리더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가 또 그만큼 사라졌다. 몇몇 백화점은 내부를 편집숍처럼 리뉴얼하기도 했는데, 세련된 느낌이라 좋다는 이들과 예전 같은 구성이 더 익숙하다는 사람들로 의견이 갈렸다. 분명한 건 지금 편집숍이라는 형태가 시장에서 아주 중요해졌다는 사실이다. 편집숍 챕터원과 디자인 컨설팅 회사 P/P/S를 운영하는 구병준 대표는 편집숍의 등장 원인으로 유통, 소비 구조의 다양화를 꼽았다. 전에는 남성, 여성, 리빙으로 카테고리를 분명하게 나눴다면 지금 소비자들은 이 카테고리를 훨씬 복합적으로 보고 있는데, 예를 들면 누군가의 분명한 취향이 느껴지는 옷과 가방, 액세서리, 가구를 갖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잘되는 편집숍을 보면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취향이 유행인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편집숍이 트렌드의 지표일까. “아니에요. 인기 많은 물건만 갖다 놓는다고 편집숍이 잘 운영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 숍은 금세 생명력을 잃어요. 편집숍은 잡화점과는 달라요. 여러 물건이 한데 모였을 때 그 숍만의 컨셉트와 스타일이 분명히 전달되어야 해요.” 주인장의 고집스러운 주관이 필요한 편집숍은 시즌마다 유행을 만들어내는 기존 시장과는 성격이 다르다. 개성이 뚜렷하고 확실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면 소비자들은 그 편집숍이 제안하는 삶의 방식에 공감하고 동참한다. 자기만의 영역을 확고히 한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이 많아져 국내 리빙, 인테리어 시장이 더욱 탄탄해지기를 기대해본다.
1 실내 속 작은 온실처럼 오픈한 라마라마 플라워&가든. 2 과정을 즐길 수 있는 가드닝을 위해 공간을 오픈했다는 정은정 대표. 3 가드닝과 관련된 소규모 도구와 아이템도 구입할 수 있다. 4 라마라마 플라워&가든과 함께 위치한 알렉스더커피의 입구 모습.
과정을 즐기기 위한 가드닝
고양시에 위치한 플랜테이션 내 라마라마 플라워&가든은 식물을 입양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곳 정은정 대표는 이미 플로리스트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실력 있는 전문가다. 틈틈이 화분 식물을 판매하고 작업에 활용하기도 했지만 이번엔 가드닝 전문 공간을 별도로 선보였다.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식물을 집에 들여서 잘 가꾸고 기르려는 이들이 늘고 있어요. 가드닝에 관한 전반적인 것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에요. 셀프로 분갈이를 할 수도 있고, 에그스톤, 지지대, 물뿌리개 등 어디에서 사야 할지 막막했던 아이템을 구입할 수도 있죠.” 정은정 대표는 잘 심어진 식물 화분을 구입해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전했다. “꽃 작업을 할 때도 늘 공간을 함께 생각했고, 그게 라마라마가 가진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집에 어울리는 식물을 추천 받을 수도 있고, 키우는 법도 세세하게 알려줘 누구나 가드닝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남편과 함께 유럽을 다니며 모은 빈티지 컬렉션과 각종 식물이 어우러진 공간은 작은 삽을 들고 화분을 심고 싶을 만큼 편안하고 따뜻하다.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 특히 내가 있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덩달아 식물에 대한 관심도 뜨거운 것 같아요. 식물을 구입할 때는 어디에 둘 것인지가 중요한데, 앞으론 단순히 식물만 구입하는 게 아니라 어떤 공간에 어떤 식물을 두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 올 것 같아요.” 몬스테라와 자이언트 유칼립투스처럼 공간을 큼직하게 채울 수 있는 식물을 좋아하는 그녀는 공간과 식물 연출이라는 또 다른 길을 준비하고 있다.
올프레쉬 조향란 대표
상생을 위한 유통
제철 과일 전문 브랜드 ‘올프레쉬’의 조향란 대표는 소비자와 생산자를 가깝게 연결시켜주면서 착한 유통 구조를 만드는 데 힘쓴다. 생산자에게는 안정적으로 농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서 제대로 된 이익을 돌보고, 소비자에게는 올바른 농법으로 정직하게 재배해 믿을 만한 과일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개하고 있다. “농가를 직접 찾아가서 농부가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해보는 것부터 시작해요.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다면 과일의 품질이 제가 원하는 만큼 완벽하게 나오기 힘들거든요. 그리고 기존의 열악한 유통에 실망감이 컸던 농가에게는 정당한 권리와 이익을 챙겨줍니다. 서로 믿음을 쌓고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죠.” 과일의 출하 시기가 되고 생산량이 많아지면 시장에서는 당연하게도 과일 가격이 떨어진다. 하지만 올프레쉬는 그 시기에도 가격 변동 없이 제값을 유지하기 때문에, 농가는 시장 상황이나 유통 마진에 흔들리지 않고 좋은 과일을 수확할 수 있다. 조향란 대표는 국내 1호 과일 소믈리에로 과일에 대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그가 알려주는 과일 선별법과 제철 과일에 대해 알게 된 사람들은 더 맛있는 과일을 스스로 적극 찾게 된다. 그렇게 소비자가 직접 알고 찾아서 먹을 수 있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그의 목표다. “포도의 경우 구석구석 햇빛이 잘 받기 위해 알을 잘 솎아주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상품 가치를 높이고 알이 크고 실해 보이기 위해 인위적인 방법으로 재배하죠. 결과적으로 당도와 맛이 다릅니다. 사과의 경우 껍질이 거친 것이 좋고 수박은 밑 배꼽이 작은 것이 더 맛있어요. 과일이 온도에 매우 민감해서 올프레쉬 매장에서는 과일에 따라 가장 맛있게 보존되는 온도(보통 약 12℃)로 맞추고 있어요. 이렇게 과일을 제대로 알고 먹을 수 있다면, 농가와 소비자 모두 더 좋은 과일을 찾아가며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움직임 디자인 스튜디오 양재혁 대표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의 디자인
움직임은 파리 봉마르셰 백화점을 비롯해 미국의 디자인 매장 ABC홈에 한국 업체로는 처음으로 진출하면서 한국 디자인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린 젊은 디자인 그룹이다. 양재혁 대표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 동기 5명이 모여 결성한 움직임은 그 시작부터 출발이 남달랐다. “공학을 바탕으로 한 디자인은 일반 디자인과 생각의 출발점부터 달라요. 디자이너들은 제품의 모양이나 소재의 미적인 면을 먼저 고민한다면, 공학 디자인은 인체공학적으로 제품을 이용하는 방식을 우선으로 생각해 디자인합니다.” 움직임을 알리게 된 첫 작품은 책이 쓰러지지 않는 기능을 추가해 만든 ‘북스택’으로 비스듬히 사선 형태로 제품을 만들었다. 이후 이탈리아 로산나 오를란디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거울 ‘룩앳미’는 이탈리아인의 삶의 태도와 철학을 이해해 만든 작품으로 움직임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다. “시작부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 작업과 마케팅을 했어요. 처음엔 우리의 디자인을 이해해줄까 하는 조바심도 있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우리가 이렇게까지 성장하기까지는 운명적인 인연도 한몫했죠.” 양재혁 대표가 이탈리아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던 시절, 옆집에 살던 건축가 다리오 페라리(현재 <토일렛페이퍼> 디렉터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온 청년들에게 자신의 디자이너 친구들을 소개해주면서 아무 대가 없이 물심양면 도와주었다. 그때 만난 이가 갤러리스트 로산나 오를란디였다. “저희들의 무지막지한 모험심이 지금의 움직임을 만든 셈이죠. 조만간 컨셉트가 다른 두 개의 브랜드 ‘에스카페이드’와 ‘데스크랩’을 론칭할 계획이에요. 특히 데스크랩은 성장하는 아이들을 위한 가구 브랜드인데, 좋은 가구를 경험해보지 못한 기성세대들을 설득하기보다는 20년 후 나라의 중심이 되는 세대들의 라이프스타일 안으로 들어가보려고 해요. 이 아이들을 통해 국내 가구 시장을 바꾸어 보고자 하는 꿈도 담겨 있습니다.”
스튜디오 트루베 조규진 대표
1 네덜란드 출신 신진 작가 테사 쿠트의 의자. 2 파리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장 프루베의 의자.
생활 공간 속 아트피스
남산 스테이트 타워의 젠틀맨스 클럽과 남해 사우스케이프의 가구 디스플레이를 담당했던 조규진 대표는 상업 공간뿐 아니라 집 인테리어에 예술적인 감성을 불어넣는 이들 중 단연 독보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 점점 평준화되어 가고 있는 인테리어에서 나만의 가치를 불어넣을 수 있는 키워드는 ‘작품 인테리어’라고 단언한다. 흔히들 그림 작품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조규진 대표는 생활과 공예 가운데 있는 아트피스를 찾는 데 남다른 혜안이 있다. “예술적인 가구와 신진 작가들의 작품에 평소 관심이 많았어요. 고객을 만날 때 그들의 감성을 녹여서 디자인을 해야겠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드리고 설득합니다. 클라이언트의 성향을 파악한 뒤에 그것을 덧입히는 일이 곧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조규진 대표는 회사 이름도 불어로 ‘찾았다’를 뜻하는 ‘트루베’를 썼을 만큼 아티스틱한 작품을 찾아다니는 것을 소명으로 생각한다. 남해 사우스케이프에서 보았던 톰 프라이스 의자나 린지 아델만 조명, 리바의 화석 같은 원목 테이블도 그녀의 안목 덕에 만날 수 있었던 것. 지난 15년간 밀라노 가구 박람회를 꾸준히 참관해온 그녀는 해외 출장 시 자주 찾는 숍과 갤러리 리스트도 공개했다. “뉴욕 소호의 BDDW, 로렌힐, 카펜터스 워크숍 갤러리, 밀라노에서는 닐루파, 로산나 오를란디부터 최근에는 다른 지역과 빈티지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데, 벨기에에 있는 빈티지 쇼룸이나 파리의 벼룩시장, 가구 갤러리 등에 자주 갑니다.” 조규진 대표가 인테리어한 공간은 미니멀한 스타일을 추구하지만, 그곳에는 집주인의 성향과 어울리는 아트피스들이 늘 존재한다. “최근에 작업한 집인데 여리고 하얀 피부를 가진 집주인에게 어울리는 줄리언 오피의 핑크빛 작품을 찾아 집 안에 포인트를 주었어요. 집주인의 자부심을 나타낼 수 있는 아트피스들은 자신만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집 안의 오브제가 됩니다.”
1 오보이 커뮤니케이션 센터에서는 동물 복지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와 책을 둘러보고 구입할 수도 있다. 2 유기견이었던 뭉치와 가족이 된 김현성 실장. 산책을 좋아하는 뭉치는 아빠 얼굴만 보면 나가자고 조른다. 3 센터 2층 편집숍에서는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브랜드 제품과 친환경 제품 등을 소개하고 있다.
반려동물과 눈을 맞추다
패션 포토그래퍼이기도 한 매거진 <오보이 Oh Boy>의 김현성 편집장은 매거진을 통해 동물 복지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전하고 있다. 캠페인처럼 많은 이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오보이> 매거진은 올해로 7주년을 맞았다. “동물 학대는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보다는 동물을 좋아했던 사람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아요. 좋아했기 때문에 동물에게 실망해서, 싫어져서 해코지를 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동물을 아끼는 사람들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굶어 죽는 사람도 있는데 동물 복지가 웬 말이냐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 분들에게 동물이 행복한 나라라면 사람의 행복은 말할 것도 없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김현성 실장은 상수동에 오보이 커뮤니케이션 센터를 오픈해 동물 복지에 관한 자료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으며,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브랜드 제품과 반려동물 관련 제품도 판매한다. 유기견이었던 뭉치와 유부 그리고 얼마 전에 식구가 된 고양이 도로와 함께 사는 그는 동물 복지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육식을 줄이는 것임을 힘주어 말했다. “육류 소비가 늘면서 소를 대량으로 키우게 됐고, 그래서 막대한 곡물과 물을 사용하게 됐어요. 가축이 내뿜는 메탄가스는 자동차 배기가스보다도 심하고요.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육류 소비부터 줄여야 해요.” 그는 반려동물의 입장과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그에 맞는 법 제정이나 반려동물 문화가 정립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 마리의 반려동물이 한 명의 주인과 평생 사는 경우가 정말 드물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반려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화려한 옷이나 비싼 사료, 사후의 대단한 장례식보다는 사랑하는 주인과 한평생을 함께하는 것이 가장 행복할 것이다. 긍정적인 변화의 속도보다 동물 복지가 악화되는 속도가 훨씬 빨라서 때로는 씁쓸하다는 김현성 실장은 반려동물 입양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건 3살 정도 되는 아기를 평생 돌보는 것과 같아요. 우리의 결정으로 생사가 갈리는 연약한 존재이기도 하죠. 충분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신중히 결정하길 바랍니다.”
1 책이 많은 의뢰인을 위해 집을 에워싸는 거대한 책장을 함께 만든 파주 흐르는 집. 2 주변 풍경과 어우러지도록 단정하게 지은 단층집. 3 준아키텍츠 김현석 대표.
생활 방식에 따른 집 짓기
건축을 공부하고 경력을 쌓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프랑스에서 준아키텍츠 김현석 대표는 저예산으로 집주인의 라이프스타일에 꼭 맞는 집을 설계하는 건축가로 유명하다. 정해진 금액이라고 해서 겉보기에만 그럴싸하게 짓는 게 아니라 사는 사람의 생활 패턴을 고려한 구조를 고안하는데, 건축적으로도 완성도가 훌륭해서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2016 올해의 젊은 건축가상을 받기도 했다. “최근 집을 의뢰하는 분들을 보면 어린아이를 키우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 부부가 많아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원하는 분들이 주로 집을 짓고 있죠.” 예전에는 단독주택이 몇 가지 타입으로 획일화되어 있거나 예술적인 감성의 고급 주택 두 가지 부류로 나뉘었다면, 지금은 사는 이의 생활 방식에 따라 공간 구조를 설계하는 추세다. “건축은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거예요. 대가족, 혼자 사는 사람, 아이 없이 부부만 함께 사는 2인 가족 등 가족 구성원이 다양해지고 재택근무나 개인 사업같이 여러 방법으로 일하는 사람도 많아서 그에 맞는 집이 필요해진 거죠.” 또 하나의 변화는 집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다. 남은 삶을 보낼 생각으로 집을 짓는 게 아니라 요즘은 ‘아이들이 몇 살 될 때까지 여기서 살 거예요’라며 특정 기간에만 머물기 위해 주택을 마련하는 것이다. 자금이 넉넉해서라기보다 잠깐뿐이라도 삶의 질이 높은 생활을 영위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주택이 늘어나고 있다.
빌트바이 임성빈 대표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보다 세심한 디자인
건축사무소 빌트바이의 임성빈 대표는 자신의 4평짜리 신혼집을 20평대로 보이게 설계해 화제가 된 인물이다. tvN <내방의 품격>, JTBC <헌집줄게 새집다오>에 출연해 생활에 불편한 곳을 고쳐줄 뿐 아니라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주거 형태를 제안하는 방송 패널로 활동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삶의 질을 인테리어를 통해 높이려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어요. 셀프 인테리어를 하는 인구도 생각보다 많을 뿐 아니라 이들에게서 아이디어를 배우기도 합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인테리어를 젊은 감각으로 해석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임성빈 대표는 달라지고 있는 인테리어 시장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이 조금 더 세심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가 설계한 가평 주택이 예가 될 수 있는데, 설계하는 데만 8개월이 걸렸어요. 가족 구성원이 복잡한 3대가 사는 집인데 구성원의 라이프스타일이 제각각이고 사는 방식도 달랐죠. 이 집은 또 한번 바뀔 예정이에요. 사는 이들의 생활 패턴이 달라질 때마다 바뀌는 집. 겉으로 화려함을 치장하기보다는 사는 이를 편하게 하는 공간 디자인이나 데커레이션이 롱런할 수 있는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4평짜리를 20평으로 환골탈태시킨 디자인 역시 임성빈 대표가 평소 생각하고 있는 생활 패턴에 따라 달라지는 집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1,3 아티초크에서만 만날 수 있는 희귀한 빈티지 포스터. 포스터들은 다년간 액자를 만들어온 갤러리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제작되어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테리어를 할 때도 유용하다. 2 아티초크 갤러리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작품. 4 아티초크 갤러리 김아린 대표.
문턱 낮춘 갤러리의 시대
한남동에 위치한 아티초크 갤러리는 일반 갤러리 하면 연상되는 고급스러움과 우아함을 벗어 던졌다. 이 공간을 만든 이는 브랜드 컨설팅 회사 비 마이 게스트의 김아린 대표. “대부분의 사람이 아트를 집 안에 들이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는 것 같아요. 아티초크는 ‘얼마예요?’라고 가볍게 말 걸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합니다.” 프린트 작품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크지 않았던 5년 전 한남동 뒷골목에 들어선 가라지 Garage 스타일의 갤러리는 신선한 공간이었다. 데미안 허스트, 아니시 카푸어 판화, 프랑스의 젊은 작가 프랭크 보보, 빈티지 포스터는 불규칙적으로 벽에 붙어 있거나 바닥에 놓여 있어 으레 갤러리에 가면 무거웠던 마음을 입구에서부터 가볍게 무장해제시킨다. “아티초크는 채소 이름이지만 ‘아트에 촉이 있다’라고 해석해 봤어요. 우리의 촉을 믿고 모아두면 나중에 가치 있는 작품으로 남게 된다는 의미도 담고 있어요.” 아티초크를 오픈하게 된 것은 ‘수집’에서 시작됐다. 프랑스 액상 프로방스에서 살았던 시절, 마그재단에서 판매하던 미로나 칼더 등 1920~30년대 빈티지 포스터들은 아티초크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얼굴이 되었다. “갤러리를 오픈하면서 많은 것을 고민했는데, 첫 번째는 이 거리에 빛이 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두 번째는 패밀리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갤러리를 생각했죠. 지금 아티초크의 컨셉트는 아직 꼬마인 저의 아들이 장성해서도 물려받아 이끌어갈 수 있는 스토리가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래드라이브 호텔 1층에서 만난 디플랏 이세현 대표
상업 공간의 묘미
이태원 타이거에스프레소, 한남동 언더프레셔 그리고 지금은 문을 닫은 카페 보통 등 이슈가 됐던 상업 공간을 선보여온 디플랏 D:PLOT 이세현 대표를 글래드라이브 호텔 라운지에서 만났다. 글래머러스하면서도 여성스러운 포인트를 갖고 있는 글래드라이브 호텔의 1, 2 ,3층 공간도 그의 최근 작업이다. “상업 공간의 매력이요? SNS에 사람들이 올린 사진을 보며 놀랄 때가 있어요. 의도했던 부분이 아닌데, 사진에 계속 찍히는 공간이 있거든요. 그렇게 예상치 못한 포인트를 배우기도 하고 다음 공간은 어떤 부분이 주목받을지 기대도 되죠.” 그는 매번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기존과 조금이라도 다른 공간을 보여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디자이너다. 그 과정에서 고객을 설득하는 일이 어려운 숙제이기도 하지만 디플랏이 작업한 공간은 한눈에 그들의 특징이 느껴지면서도 각기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한창 대세인 대리석과 금속의 시대가 가면 어떤 스타일이 인기를 얻을까. “식물이 주요 요소가 된 공간이요. 가까이에서 식물을 즐기고 싶어하는 욕구는 계속 증가할 것 같거든요. 그리고 남성적인 공간보단 페미닌한 요소가 있는 공간이 인기를 얻을 것 같아요.” 그는 좋아하는 디자이너로 ‘푸하하하’를 꼽았다. “하남 스타필드에 오픈한 빈브라더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공간을 이렇게도 풀어낼 수 있구나. 아티스트 같다는 느낌을 받았죠.” 이세현 대표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내실을 다지고 있었다. 어떤 공간이든 그가 다음에 보여줄 작업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수요미식회> 이길수 피디
미식을 위한 길
수요일 밤마다 침샘을 자극하는 방송 <수요미식회>를 만드는 이길수 피디는 어느덧 업계에서 일한 지 15년 차다. <맛있는 티비>의 막내 조연출로 시작해 많은 예능 프로그램을 거쳐 <수요미식회>를 통해 그가 늘 꿈꿨던 음식 콘텐츠를 만들게 됐다. “다른 방송과 다르게 음식에 관한 역사나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 있게 다루기 때문에 너무 교양 방송처럼 되지는 않을까 고민도 많았어요. 대중적으로 누구나 다 좋아해주는 방송은 아니더라도, 저처럼 음식에 관심이 많고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테니 그런 사람들을 위한 방송을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렇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작한 <수요미식회>는 이제 많은 사람이 즐겨 보며 몰랐던 지식을 공유하고 새로운 맛을 찾아갈 수 있게 해주는 기준이 됐다. 출연진 외에 숨은 공로자도 많은 편이다. 자문단에게 맛집을 추천 받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사실을 검증하는 모든 과정이 철저하게 이루어진다. “시청자들이 가보고 실망하지 않을 만큼 진짜 맛있는 곳을 선정하는 것에 집중하고,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도 매번 고민하고 있어요. 정보를 많이 주는 것보다 그동안 생각해보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중요해요. 음식 문화나 식생활을 개선할 수 있도록 다양한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 저의 목표예요.” 방송을 만들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발품을 팔며 맛집을 다닌 내공이 있는 이길수 피디에게 더 성공적으로 맛집을 찾기 위한 노하우을 들어봤다. “일단 음식 사진만 봐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인지 어느 정도 견적이 나와요. 블로그나 SNS도 무작위로 보기보다는 나와 맞는 것을 찾아봐야 해요. 블로그를 보고 직접 가봤을 때 그 리뷰가 ‘이 부분은 정확하고 이 부분은 과한 칭찬을 했구나’ 하고 알아가는 거죠. 나중엔 나와 어느 정도 취향도 맞으면서 믿고 보는 블로그들이 생기게 됩니다. 무조건 앞뒤 없이 맛있다고 하는 것보다는 <수요미식회>가 그렇듯이 각 음식의 장단점을 일리 있게 알려주는 리뷰를 참고하는 것이 좋아요.”
1 지난 9월 전시로 큰 호응을 얻었던 강민경 작가의 꽃병. 2 강희성 작가의 스테인리스 소재 커트러리. 3 수공예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는 이종은 실장. 4 나무 도마 위에 올린 김남희 작가의 세라믹 접시들. 5 박수이 작가의 옻칠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 에리어플러스의 숍. 6 옻칠 플레이트에 올린 작은 찻잔들.
일상으로 들어온 공예
말갛고 깨끗한 인상의 이종은 실장은 에리어플러스의 멤버 중 한 명이다. 에리어플러스는 여러 명이 합심해 설립한 프로젝트 회사로, 회사에는 공간을 작업하는 인테리어팀이 따로 있고 이종은 실장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숍을 맡고 있다.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하면서 브랜드 가구와 국내 작가의 가구나 소품을 매치하곤 했어요. 고객의 반응도 좋았고 작가의 작품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죠.” 에리어플러스에서 운영하는 숍은 단순한 숍이 아니다. 매달 작가를 선정해서 소규모지만 작품을 전시하고, 그동안 협업해온 작가의 작품도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다. “작가의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영감을 주고 싶어요. 기성품과는 다른 내공이 있거든요. 믹스매치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요즘, 다른 숍과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가 우리의 안목으로 고른 작가의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종은 실장은 많은 고민과 정성이 깃든 수공예 작품을 좋아한다. 그런 작품은 쉽게 유행을 타지 않으며 공간에 자신의 취향을 확실히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작품을 경제 논리로 따지면 설명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작품에 들인 노고와 가격대의 접점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거든요. 그래도 가치 있고, 실용적인 공예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싶어요.” 더 많은 이들에게 공예 작품을 알리기 위해 최근엔 온라인 홈페이지도 만들었다. 그녀의 바람대로 에리어플러스는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경험하고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성장할 것이다.
1 원사 염색부터 직조까지 모든 과정을 키티버니포니가 직접 검수해 제작한 타월. 2 키티버니포니 김진진 대표. 3,4,5 모던한 패턴과 감각적인 색상이 돋보이는 키티버니포니의 쿠션들.
패브릭 한 장으로 달라지는 인테리어
핀란드에 마리메꼬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키티버니포니가 있다. 국내 패브릭 시장을 성장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키니버니포니. 올해 1월, 합정동에 사옥 겸 쇼룸 ‘메종 키티버니포니’를 열며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장시킨 김진진 대표를 만나 국내 패브릭 시장에 대해 이모저모를 전해 들었다. 이사를 하거나 수명이 다했을 때만 바꾸는 가구와 달리 계절에 따라 교체하기도 하는 홈 드레싱 패브릭은 유행에 비교적 민감한 아이템이다. 그래서 인기를 끄는 패브릭 패턴을 보면, 요즘 사람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클래식이나 모던, 양 극단만이 있는 게 아니라 절충된 영역에서 고를 수 있는 패턴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이제는 유행과 상관없이 각자 원하는 대로 고르는 편인 거 같아요. 개인의 취향이 확고해진 거죠.” 한 가지 스타일보다는 믹스매치하는 것이 추세. 실패하지 않는 믹스매치 방법은 색을 이용하는 거다. 여러 패턴을 섞어놓아도 색상이 통일되면 난잡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가정에 있는 소파는 갈색, 검은색, 회색 세 가지로 압축된다. 무채색 소파는 무엇이든 다 어울려서 괜찮지만, 갈색 가죽 소파는 쿠션 고르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닌데, 이때는 소파보다 진한 브라운 계열로 힘있게 잡아주는 것이 무난하다. 스타일뿐만 아니라 소재도 다양해졌다. “한창 인기였던 리넨은 소재의 특성상 먼지가 많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거나 비염이 있는 사람에게는 권하지 않아요. 요즘에는 리넨의 터치감을 그대로 살린 폴리에스테르 100% 원단 등 신소재가 많이 등장하고 있어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졌죠. 또 세탁을 유독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패브릭을 고를 때 패턴보다 소재를 더 많이 고려하는데요. 합성섬유는 관리하기 편하고 자주 빨아도 손상이 적어서 일상에서 사용하기 더욱 적합하죠.” 품질 좋은 합성섬유가 순면, 리넨 등 천연 소재를 대신해 집 안을 채울 날이 곧 올지도 모르겠다.
1 화이트 오크 테이블. 의자 다리의 모양을 테이블에 접목시킨 것으로 한번 꺾이는 디자인이 매력적이다. 2 710퍼니처 목수 윤여범 작가. 3 월넛으로 제작한 책상은 앉아서 작업했을 때의 자세를 고려해 상판을 비스듬하게 만들었다. 황동은 디자인 요소도 있지만 고리를 연결해 가방을 걸 수도 있는 기능을 첨가했다. 4 일반적인 사이드 테이블의 다리 형태를 벗어나 다리를 가운데로 모은 형태의 오크 사이드 테이블.
목수가 만드는 웰메이드 가구
기성품이 아닌 공방에서 가구를 산다고 생각했을 때 디자인보다는 만든 이를 더 보게 된다. 그 이유는 만드는 사람과 만든 물건은 닮기 때문일 게다. 단순한 오브제 용도의 가구가 아닌 사용자가 직접 생각하는 이미지와 형태, 느낌, 용도에 맞게 디자인하는 오더메이드 가구를 만드는 710퍼니처의 윤여범 작가는 쓸수록 더 좋아하는 가구를 만들어 지난 6년간 한결같이 신뢰를 쌓아온 목수이자 가구 디자이너다. 섬세한 손길로 탄생한 수제의 매력에 이끌려 공방을 여는 이들이 하나 둘씩 늘어날 때 취미로 배운 목공이 지금의 710퍼니처의 윤여범 작가를 만들었다. “목공 일이 적성에 잘 맞았어요. 가구를 만들 때 혼자 계획하고 단계별로 이뤄나가고 결국 완성된 가구 결과물을 탄생시키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그가 여러 해 동안 공방을 운영하면서 터득한 것은 시간이 갈수록 가구 자체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 “공방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오픈하는 곳들이 많았어요. 좋은 면만 보다가 도중에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공방 가구 시장이 크지 않을 뿐 아니라 소비자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턱없이 부족해요. 가만히 앉아서 오는 손님만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를 홍보할 수 있는 채널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차별화를 둘 수 있는 브랜드만의 색깔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조언한다. 디자인부터 제작, 납품에 이르기까지 혼자 도맡아 많은 업무를 소화할 수 없지만 윤여범 작가는 매일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 요즘에는 원목에 황동이나 철재 소재를 접목시킨 가구를 만드는 데 매진하고 있다.
제로컴플렉스 이충후 셰프
좋은 재료의 재미있는 조합
서래마을에 3년 넘게 자리 잡고 있는 제로컴플렉스의 이충후 셰프는 네오 비스트로의 재기발랄함이 느껴지는 프랑스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10년 전 무작정 프랑스로 떠나 언어부터 시작해서 문화와 요리까지 제대로 배워 온 젊은 셰프다. 그곳에서 처음 만나는 세계는 그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음식을 대하는 생각과 태도 자체가 가장 달랐던 것 같아요. 그곳에서는 다양한 맛과 모험적인 시도를 좋아하고 인정해주는 편이에요. 새롭게 시도하는 것 자체에 큰 박수를 보내니까 새롭고 다양한 음식이 발달할 수밖에 없어요.” 비록 다이닝 문화에 차이는 있지만 돌아와서 제로컴플렉스를 오픈한 그는 계속해서 실험적이고 재미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게다가 몇 년째 함께 협업하고 있는 농부에게서 다양한 식재료를 공수하는 만큼 좋은 재료에 대한 고집이 느껴진다. “재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와 뜻이 맞는 농부와 함께 일하고 있어요. 저는 구하기 힘든 좋은 재료를 얻어서 좋고, 그분은 정성스레 일군 작물이 사람들에게 빛을 발하면서 제대로 쓰일 수 있는 곳을 찾으니 서로 좋겠지요.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수확도 해오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제로컴플렉스의 메뉴판은 사진도, 메뉴 이름도 없이 오직 재료만 적혀 있다. 매번 제철 재료가 나올 시기에 따라 메뉴도 바뀐다. 이 재료들을 어떻게 조리하고, 어떻게 조화를 이뤄 완성될지 손님들이 직접 상상해볼 수 있다. “내가 새롭고 재미있는 음식을 소개함으로써 사람들이 더 다양한 음식을 접하고, 자신의 입맛을 알아가는 것이 좋아요. 결과적으로 다이닝에 있어서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문화로 발전하길 바랍니다.”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의 김태경 대표와 스티븐 박
맥주 덕후들의 의기투합
맥주 맛 하나로 성수동의 자랑으로 떠오른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는 두 명의 전문가가 운영하고 있다. 국제공인 맥주전문가 Certified Cicerone인 김태경 대표와 수많은 맥주대회에서 연이어 우승하며 유명해진 스티븐 박 Steven Park 브루마스터의 조합은 맥주 좀 안다는 사람들에겐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스티븐은 원래 홈브루잉 커뮤니티에서 유명했고, 내가 심사하는 맥주대회에서도 워낙 이름을 날려서 알고 있었죠. 함께 맥주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해서 지금 함께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를 운영하고 있어요. 분기마다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에 출장을 다녀오면서 브루어리를 방문하거나 새로운 맥주들을 테이스팅하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도 새롭게 문을 연 펍들을 모두 돌아다니면서 맛보고 연구해요.(태경)” 수제 맥주 붐이 일어나고 수제 맥주를 마실 곳은 많아졌다. 하지만 이렇게 깊이 있게 맥주를 연구하고 생산의 전 과정이 이뤄지는 곳은 많지 않다. “이곳에서 보리 파쇄부터 당화 과정, 홉을 끓여 여과시키고 발효 과정을 거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제가 직접 담당하고 있어요. 나무 주걱으로 휘젓는 과정까지 사람이 직접 합니다. 뭐든지 만드는 것이라면 다 좋아해서 맥주 만드는 데 쓰이는 기계도 직접 만들었고요.(스티븐)” 기계까지 손수 만들고 이취나 이미가 생기지는 않았는지, 조금이라도 오염되지는 않았는지 늘 신경 써가며 만드는 맥주이기에 그 품질에 믿음이 간다. 오너가 얼마나 맥주에 대해 잘 알고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가 좋은 펍의 기준이 된다고 말하는 그들에게 수제 맥주를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맥주에 대해 궁금한 점은 바로 물어보면서 직원들을 귀찮게 하는 게 좋아요. 지식과 경험을 공유해야 더 재미있거든요. 그리고 어떤 사람에겐 특정 맥주가 입에 안 맞을 수도 있어요. 그럴 때는 포기하지 말고 내 입맛에 맞는 맥주를 추천 받아 이것저것 도전해보세요. 다양한 맛의 맥주를 마셔보면서 내 취향의 맥주를 찾아가는 걸 즐기다 보면 수제 맥주의 매력에 빠지게 될 거예요.(스티븐)”
1 지난 10년간 국내에 여러 북유럽 브랜드를 소개해온 이노메싸 마재철 대표. 2 다양한 북유럽 브랜드 제품으로 꾸민 이노메싸 쇼룸. 3 프렌즈&파운더스 Friends&founders의 철제 가구들. 4 스트링 선반과 루이스 폴센 등으로 꾸민 쇼룸.
북유럽 디자인의 어제와 오늘, 내일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헤이, 무토, 케흘러 등의 브랜드를 우리나라에 상륙시킨 이노메싸의 마재철 대표는 국내에 북유럽 디자인 브랜드를 소개한 지 10년째다. 북유럽 디자인이 뿌리를 내리기 전부터 시작해 국내 리빙, 인테리어 시장에서 주요 키워드가 되기까지 함께해온 그에게 북유럽 디자인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큰 브랜드가 된 무토가 2006년부터 시작했으니 이노메싸의 역사와 함께합니다. 그동안 북유럽 브랜드도 많이 변화했죠. 가장 크게 보자면 예전에는 한정적이던 소재가 많이 다양해졌다는 거예요. 철강석을 생산하는 스웨덴은 철로 제작된 가구와 조명, 덴마크는 너도밤나무와 쉽게 구해올 수 있었던 독일산 오크로 만든 가구, 핀란드는 자작나무 소재의 가구가 대표적이었다면 이제는 그 정도로 국한되지 않죠.” 또 정통을 고집하던 북유럽 가구 브랜드들이 개방적으로 바뀌었다. 북유럽 브랜드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삼으면서 북유럽 디자이너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실력 있는 디자이너들과 협업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츠 한센은 스페인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과 함께 첫 액세서리 제품을 출시했고 이케아도 헤이, 톰 딕슨과 신제품을 개발하며 디자이너가 아닌 타 회사와 협력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북유럽 디자인이 너무 유행을 끌면서 어느 집이나 인상이 비슷해진 부분은 마재철 대표 역시 아쉽다. “예전에는 단순히 트렌드를 따라갔다면 지금은 북유럽 브랜드에 대해 인지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났다는 점에서 달라졌어요. 특정 브랜드, 인기 제품을 사다 놓으면 트렌디한 감각의 집으로 여겨지는데 어디까지나 그건 오인인 거 같아요. 북유럽 디자인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다양하거든요.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과감한 색상이나 흔하지 않은 디테일 등을 선택하면서 공간을 자유롭게 상상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해요. 북유럽 디자인이 포화 상태라지만 아직도 성장 가능성이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