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던 ‘에르메스
1 프랑스의 디자이너 겸 조각가 위베르 르 갈. 2 전시장 관람의 필수품인 지팡이. 끝에 달린 편광 렌즈를 통해 색다른 이미지도 볼 수 있다. 3 회전하는 광고판 모리스 칼럼 안에서 에르메스의 가방이 천천히 돌아가고 있다. 4 파리의 아케이드에서 만난 포슬린 상점. 5 산책 중 휴식을 선사하는 카페. 6 위고 가토니의 평면 흑백 드로잉 위에 비디오 아티스트 시그마식스가 3D 효과를 입힌 ‘집으로 가는 길’. 7 제이플로우가 표현한 유머러스한 파리의 지하철 내부.
도시를 거니는 행위 자체가 아름답고 자유로운 예술입니다. 이는 19세기에 탄생한 에르메스를 대표하는 본질이기도 하지요.” 에르메스 총괄 아티스틱 디렉터 피에르-알렉시 뒤마 Pierre-Alexis Dumas는 지난 2015년 에르메스의 테마이기도 한 플라뇌르 Flanerie(산책)를 발표하며 전시를 함께 기획했다.
당신은 디자이너 겸 조각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노그래퍼로 참여했는데 개인적으로 어떤 활동을 해왔나?
가구나 오브제를 만드는데 조형미술 작업이라고 보면 된다. 형태, 빛, 색상을 자유롭게 활용해 나무, 레진, 유리, 세라믹 등 다양한 재료를 작품에 녹여낸다. 파리의 아방센 갤러리의 전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간 만들었던 여러 작품은 몬트리올 미술관, 릴르 장식미술관 등 프랑스와 전 세계 미술관에 영구 소장되어 있기도 하다.작품들은 어디에서 만나볼 수 있나?
작품의 스타일이 독특해서 희소성이 있어서인지 갤러리에서 러브콜을 받는다. 뉴욕의 트웬티 퍼스트, 파리 아방센 갤러리, 런던 88갤러리 등 전 세계 10여 곳의 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서울 방문이 두 번째라고 들었는데, 어떤 도시 같나?
삼성 리움미술관을 가보고 많이 놀랐다. 건축적인 미학과 기술적인 면 그리고 전 세계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조화를 이루는 훌륭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옛것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는 경복궁도 인상적이었다. 현실 세계에서 19세기 산책에 대한 향수를 불러들이는 이번 전시와 닮아 있는 듯했다.파리지앵의 산책은 에르메스의 아티스틱 디렉터 피에르-알렉시 뒤마와 큐레이터 브뤼노 고디숑 그리고 당신의 합작품이다. 전시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 나는 부모님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웃음) 그들의 뜻에 따라 경영, 회계를 전공했는데 내 관심사는 온통 그림이나 건축 그리고 가구였다. 독립할 수 있을 즈음 꿈꿔왔던 직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분야는 다르지만 다른 경험을 해왔던 터라 오히려 사물을 현명하게 바라보는 능력이 생겼고 나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남들과 다른 작업 세계를 좋아한 것 같다.당신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피에르-알렉시 뒤마는 2015년 에르메스의 테마를 플라뇌르로 결정했다. 우리의 여정은 그 주제부터 시작됐는데 쉽게 말해 피에르-알렉시 뒤마는 큰 틀을 짰고 큐레이터인 브뤼노 고디숑은 시나리오를 썼다. 그리고 나는 시나리오의 여정을 풀어나갈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전시는 각자의 경험과 노하우가 집약된 진정한 콜라보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시노그래퍼로 일할 때와 작가로 일할 때의 차이점이 있나?
시노그래퍼로 일할 때는 에고를 낮춰야 한다. 이런 것도 내겐 흥미로운 일이다. 작가로서 작품을 만드는 것은 내 안을 채우는 작업인 반면, 시노그래퍼는 여태껏 채워놓았던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전시장에 에밀 에르메스 박물관에서 수집한 유서 깊은 아카이브 제품과 에르메스를 대표하는 과거와 현재의 컬렉션을 소집했다. 에밀 에르메스의 수집품들은 에르메스 DNA의 원천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아카이브 컬렉션을 보고 에르메스 뒤에는 어마어마한 역사가 존재하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작업할 때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다른 전시보다 쉬웠던 것은 주제가 산책이었기 때문이다. 뭔가를 특별하게 찾기보다 평소 해왔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고 세 명이 생각하는 산책에 대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대화했기 때문에 정말 즐거운 작업이었다. 우리가 즐겁게 일했기 때문에 관람객들도 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당신의 산책 코스가 궁금하다. 생제르맹 데프레에 있는 앤티크 가게들을 자주 찾는다. 그곳에 가면 현실을 떠나 그 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
전시장을 채운 11개의 방은 단순히 ‘걷는 산책’이 아닌 꿈속의 세계로 들어간 느낌이다. 11개의 방이 모두 리치하고 초현실적이면 재미가 없다. 마치 영화처럼 리듬감이 있어야 했다. 전시의 처음과 끝은 일관성 있게 통일했고 중간 여정에 강약을 줬다. 초현실로 갔다가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재미있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방은?
지팡이를 그래픽적으로 표현한 방.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이번 전시는 런던, 두바이, 파리에 이어 네 번째로 열렸다. 방문한 도시의 이미지를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나? 런던 럭셔리 Luxury, 파리 차밍 Charming, 두바이 판타스틱 Fantastic, 서울 퓨처리즘 Futur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