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권의 성지였던 도시, 위험한 폭력으로 가득한 거리를 떠올린다면 그곳은 모스크바가 아니다. 모순된 것들이 만나 빚어 내는 독특한 매력으로 가득한 도시 모스크바로 당신을 초대한다.
도스토예프스키 동상은 일주일에 한 번 샤워를 한다. 동상 뒤에 있는 레닌 도서관의 묵직한 건물에는 고대부터 구성주의까지 여러 건축 스타일이 혼재해 있다. 모스크바의 다른 기념물이 그렇듯 청렴결백에 대한 블라디미르 푸틴의 강박을 엿볼 수 있다.
올해 블라디미르 푸틴은 정치가들과의 열렬한 협력 덕분에 1950~60년대 러시아의 위대함을 상징하는 공원, 베베체 안에 ‘모든 러시아의 실현’을 찬양하기 위해 소비에트 시대의 파빌리온들을 복원해 문을 열었다. 여기 코스모스 파빌리온에는 소치 올림픽의 엄청난 구성주의 구조물이 놓여 있다.
레드 옥토버에 있는 스트렐카 바 Strelka Bar.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이 보이는 이곳은 1960~70년대 이탈리아와 북유럽 가구로 꾸며져 있다. 근처 학교의 학생들과 이 지역 트렌드세터들이 DJ의 흥겨운 음악을 즐기며 늦은 밤까지 시간을 보낸다.
모스코바의 모든 것이 요동치듯 변화하고 있다. 공장 지대에는 신 부르주아의 거리가 들어서고 있고, 시민들은 엄숙한 정치적 통제로부터 점점 자유로워지고 있다. 청렴결백한 이미지로 돌풍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거리의 분위기를 쇄신했고, 모스코바 거리는 1년에 10억달러의 비용이 드는 혁신 정책으로 밝고 환해진 것 이 사실이다. 역사적인 건축물은 신성한 블루에서 연한 그린까지 파스텔 톤으로 새롭게 단장됐고, 수도원과 교회의 금빛 돔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 다시금 반짝이고 있다.
교통 혼잡을 일으키는 수많은 자동차는 물론이고 기갑 사단까지 집어삼킬 정도로 넓은 대로를 따라 보행자들은 힘찬 발걸음으로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알렉 산드르 1세가 건축하고 스탈린이 파괴한, 그리고 다시 푸틴이 세워 문을 연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이 모스크바 강가에 흰색 옷을 입은 거대한 수녀처럼 앉아 있다. 비주얼 아트 디렉터 미샤 가누크킨 Micha Gannouchkine이 디자인한 고리키 Gorki 공원 역시 강변과 스케이트장, 쇠 공을 교대로 굴리면서 표적을 맞히는 게임인 페탕크 놀이장까지 정비해 폐허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개러지 박물관 Garage Museum도 문화계의 미다스로 불리는 거부 로만 아브라모비츠 Roman Abramovich 덕분에 이곳으로 이전해 새로 문을 열었다. 그의 연인인 다샤 주코바 Dasha Zukova가 운영하는 이곳은 낡은 휴게소 건물을 리뉴얼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옛 모스크바의 모습은 농가의 마당과 작은 길목에 남아 있을 뿐이다.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의 ‘피브 바 Piv Bar’를 팝 스타일로 복원한 ‘캄차카’. 신 소비에트 스타일의 잡동사니로 가득한 지하에서 음악을 듣거나 서서 맥주를 마실 수 있다.
디자이너 데니스 시마체브 Denis Simachev의 바. 커튼을 드리운 알코브에 쇼핑을 하러 온 모스크바 젊은이들이 앉아 있다.
굉장히 넓은 ‘아트 하우스 Art House’ 로프트에 마련된 팝업 바 겸 레스토랑&갤러리 ‘도어 19 Door 19’.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스타일로 꾸민 공간에 스트리트 아트를 전시한다. 공장 지대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진행되는 아트크바르탈라 ArtKsvartala 프로젝트의 일환.
새로운 도시의 모습은 어수선한 공업 지구에서도 발견된다. 예전에는 강철과 유리를 다루는 공장이 즐비했던 이곳에 레드 옥토버 Red October, 빈자보드 Winzavod, 플라콘 Flakon, 아르마 Arma 같은 문화 공간이 자리 잡고 새로운 세대 노동자들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열기를 담아낸다. 아티스트들은 폐자재의 잔해 속에서 자신의 아틀리에를 정비하고, 바로 옆 갤러리들은 화제의 전시를 이어간다. 바둑판 무늬의 셔츠를 입은 힙스터들은 으스대며 주변을 돌아다닌다. 부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영민한 장난꾸러기들이 부자 동네에 저렴한 물건을 판매하는 가게를 차려 맞불을 놓는다.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의 선술집 분위기가 나는 바 Bar ‘캄차카 Kamchatka’와 차고를 개조해 젊고 시크한 모터 사이클족을 위한 스낵 바로 새롭게 단장한 ‘엔투지아스트 Entusiast’가 그런 곳이다. 아침식사부터 새벽녘 마지막 술잔까지 음악과 DJ의 퍼포먼스를 비롯해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소비의 장소들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옐친 시대의 무질서함과 취기를 ‘자랑스럽게’ 되찾았다. 이곳에는 소비에트 시대의 종말에 대한 희미한 노스탤지어가 스며 있다. 어린 시절, 속을 꽉 채운 러시아식 라비올리인 ‘펠메니 Pelmeni’와 서투르고 투박하지만 정겨웠던 그 시대의 취향을 되찾고 싶어하는 분위기가 분명하다.
과도하게 뒤죽박죽 섞인 ‘스탈린 제국’의 스타일조차 시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강제노동수용소의 근로자들이 건설한 장중한 마천루 ‘세븐 시스터스 Seven Sisters’가 좋은 예다. 역사적인 건축물에서 차용한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일곱 개의 고층 건물은 슬라브족의 자존심을 충족시키고 있다. 그런가 하면 붉은 광장을 바라보는 거대한 모스크바 호텔 Moskva Hotel(최근 포시즌스 호텔 Four Seasons Hotel로 바뀌었다)에서는 자신에게 집중된 권력을 상징적으로 건축에 담고자 했던 스탈린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사회주의국가의 풍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거대한 동상. 한때 찾는 이가 없었던 베베체(VVT) 공원은 ‘노동자와 콜호스 여성’ 동상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대통령의 의지가 적극 반영된 도시 미관, 사회주의 시절에 대한 향수, 예술가들의 활동 거점의 확대 등 얼음의 도시 모스크바는 용광로 처럼 뜨거운 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건축가 세르게이 스쿠라토브 Sergey Skuratov가 디자인한 ‘아트 하우스 세레브리아니체스카야 Art House Serebryanicheskaya’ 프로젝트 건물. 야우자 Yauza 강가에 있는 이 건물은 부와 예술적 창의성을 두루 갖춘 ‘신 모스크바 시민’을 위해 보수 중인 동네의 공장 건물에 대한 오마주다.
박물관이 된 컨템포러리 아트 센터 ‘개러지’의 방황은 러시아 건축가 멜니코프 Melnikov의 구성주의 차고에서 시작됐다. 그 뒤 시게루 반 Shigeru Ban이 생분해성 판지로 만든 멋진 기둥이 있는 이 임시 파빌리온을 거쳐 렘 쿨하스 Rem Koolhaas가 레노베이션한 옛 소비에트 레스토랑으로 이사했다.
옛 초콜릿 공장 레드 옥토버의 초콜릿 포장실에 자리한 아트와 패션 스쿨. 옛날 느낌이 물씬 풍기는 데커레이션이 눈길을 끈다.
막심 고리키는 1932년 스탈린의 초대로 이곳에 머물렀다. 러시아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프란츠 알버트 셰흐텔 Franz Albert Schechtel의 아르누보 명작인 스테인리스글라스와 대리석 파도가 아름다운 이 건물은 1902년에 지어졌고 1917년 거부 후원자 리아부친스키 Riabouchinsky에게서 몰수했다.
CREDIT
포토그래퍼
야닉 라브루스 Yannick Labrous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