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을 좇기보다 자신의 스타일을 찾는 것이 중요한 시대다. 이를 몸소 실천하며 보여주는 두 여자가 있다. 그들의 일상을 일컬어 블룸앤구떼 스타일이라 부른다.
©임태준 유럽의 스타일리시한 카페를 연상시키는 블룸앤구떼.
블룸앤구떼의 조정희, 이진숙 대표.
물을 듬뿍 주고 완전히 시든 잎만 떼어내는 것이 블룸앤구떼의 가드닝 스타일이다.
유행이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먹고 입고 보고 재빨리 SNS에 포스팅하며 유행에 뒤처지지 않았음을 증명 하느라 바쁘다. 소위 트렌디하다는 것을 그렇게 급히 좇는다. 그러나 화려하고 재미있는 유행은 정작 문화로 정착하지 못한 채 잊혀지는 경우가 많다. 그 뒤를 이어 또다시 새로운 유행이 등장하고, 이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 쫓아 달린다. 이런 문화의 악순환 속에서 고유의 스타일을 발전시키는 멋진 사람들도 있다. 카페 블룸앤구떼를 운영하는 파티시에 조정희와 플로리스트 이진숙이 그렇다. 그리고 자신들의 멋스러운 취향을 카페 블룸앤구떼에 잔뜩 풀어놓았다. 블룸앤구떼는 이진숙의 플라워 스튜디오 블룸 Blooom과 조정희의 케이크 스튜디오 Go u t e를 합친 단어다. 가로수길이 지금처럼 유행을 좇지 않고 색색의 은행나무와 아기자기한 가게들로 가득했던 2004년 처음 문을 열었다. 블룸앤구떼는 파리의 카페처럼 어두운 어닝을 치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꽃을 밖으로 진열해놓은 멋스러운 카페였다. 주방에서는 달콤한 프렌치 케이크를 구웠고, 월드 뮤직과 짧은 클래식, 재즈 등이 울려 퍼졌다. 그 공간을 문화,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가득 채웠다. “프랜차이즈와 힙스터들이 몰리는 카페들 틈에서 13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억지로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연스레 우리만의 취향과 감각을 선보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세로수길, 반포동 매장에 걸쳐 13년 동안 카페를 운영할 수 있었던 비법을 묻자 조정희 대표가 답했다. 자유분방하게 피어난 테라스의 식물과 갈색 병에 장식한 아름다운 꽃, 멋진 프렌치 케이크 등 블룸앤구떼를 대표하는 스타일은 그 시간을 따라 함께 무르익었다.
조정희 대표는 매장뿐 아니라 집에서도 앞치마 입기를 즐긴다.
여러 가지 토마토를 잘라 소금에 15분간 절인 뒤 리코타 치즈와 함께 먹는 블룸앤구떼의 샐러드.
케이스나 서양식 볼 같은 생활 용기에 꽃을 꽂아 블룸앤구떼 스타일을 연출해보자.
담백한 크래프트지로 꽃을 포장하는 방식은 2002년부터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잡지 기자 출신인 그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1999년 회사를 그만두고 런던으로 갔어요. 프랑스로 갔어야 했는데, 불어에 자신이 없었거든요(웃음). 하지만 영국은 왕실이 있는 나라이니 꽃꽂이가 발전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영국은 자연과 가드닝, 꽃이 발달한 나라거든요. 날씨가 흐려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이진숙 대표의 설명이다. 그녀에게 런던은 도시 자체가 거대한 학교였다 . 하루 3~4시간씩 걸으며 실생활에서 문화적 영양분을 흡수했다. 잔디밭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런던 공연을 보거나 로열필 하모닉, 런던필하모닉, 정명훈과 길 샤함 등 다양한 아티스트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신기했던 것은 런던의 일상에는 너무나 자연스레 꽃과 식물이 녹아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가게와 사무실, 건물, 정원에는 어디든지 꽃으로 가득했고, 로비에 들어서면 커다란 꽃 장식이 있었다. 그녀의 스타일은 블룸앤구떼의 테라스에서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블룸앤구떼의 테라스는 재미있게도 특별히 공들여 가꾼 흔적이 없다. 덕택에 식물이 피어나는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매일 다른 면면을 보여주는 공간이 되었다.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체리 세이지 줄기가 자라 있고, 나비가 지나간 자리엔 재스민 꽃이 피어나 있다. 그렇게 얼기설기 생명력을 품고 있는 테라스에서 신선한 식물을 채취해 카페를 장식한다. 로즈마리로 미니 부케를 만들고 , 길게 자란 민트 줄기는 센터피스로 쓴다. 다듬지 않고 키운 식물을 곁들이는 것만으로도 부케나 꽃바구니가 한결 자연스러워진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스타일이다.
노란 카탈리나 장미, 섬담쟁이, 심비디움, 미모사, 연둣빛 애정나무로 만든 미니 꽃다발.
플로리스트 이진숙의 책장. 10년 전 단골 목수였던 오반장님이 만들어준 것이라고.
이진숙 대표가 종종 즐겨 만드는 압화. 그녀의 감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박정환 작가의 ‘Peace’와 심플한 화병으로 장식된 공간.
이진숙 대표와 달리 조정희 대표가 프랑스 남동쪽 엑상프로방스로 간 것은 파티시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단순히 6개월간 시골에서의 삶을 즐겨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화실에 가서 그림도 배우고, 동네 할머니들에게 퀼트의 일종인 부티 수업도 받고, 시크한 프랑스 여자에게 요리 수업도 들었다. “잠깐 왔다 가는 관광객보다는 그 도시의 주민처럼 살고 싶었어요. 그러다 파리로 거처를 옮겨서 르 꼬르동 블루에 입학하게 되었죠.” 그녀는 학교에서 파티시에 초급, 중급, 고급 과정을 배운 뒤 요리와 빵, 케이터링도 배웠다. 그와 동시에 자연스레 장 폴 에방이나 스토레, 라 메종 드 쇼콜라 , 라 뒤레 등 파리지엔이 사랑하는 베이커리에 드나들었다. 그리고 국내로 돌아와 청담동 한적한 골목길에 작업실을 오픈했고, 플로리스트 이진숙과 함께 블룸앤구떼를 오픈했다. 무항생제 달걀과 국내산 유기농 밀가루를 쓰고, 화학첨가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건강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한 케이크를 만들었다.
조정희 대표가 만든 블룸앤구떼 케이크.
평범한 앞치마를 목과 허리끈이 엑스가 되도록 묶으면 새로운 느낌이 난다.
여행 갈 때마다 하나씩 사서 모은 티스푼과 포크들.
특히 라자냐와 키시, 파니니는 지금까지 꾸준히 인기있는 블룸 앤구떼의 시그니처 메뉴다. “누구나 쉽게 들어와 편안히 있다 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마치 오래 입은 옷처럼요. 그래서 그에 어울리는 편안한 그런 음식을 찾다 보니, 이러한 메뉴을 내게 된 거죠.” 조정희 대표가 웃으며 덧붙였다. 반포에 있는 블룸앤구떼는 오는 7월 문을 닫는다. 조정희, 이진숙 대표는 현재 다음 스텝을 고민 중에 있다. “우리만의 색을 지닌 무언가를 더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한 계단 더 올라가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딱히 무엇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려고 계획 중이에요.” 케이크&플라워 카페였던 블룸앤구떼는 13년간 꾸준히 변모했고, 그것은 카페가 오랫동안 사랑받고 생존할 수 있던 비결인 듯 보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안주하지 않고 성장하는 블룸앤구떼의 다음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낮에는 햇살이 들어오고, 밤에는 은은한 불빛으로 장식되는 조정희 대표의 공간.
시그니처 메뉴인 스트로베리 치즈 케이크.
블룸앤구떼의 주방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신선한 제철 식재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