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에 남아 있는 첫 번째 색연필은 눈이 내린 웅장한 산과 스위스 국기가 그려진 케이스에 담겨 있었다.
케이스가 헐거워져 덜그럭 소리가 날 때까지 애지중지했던 그 색연필이 까렌다쉬 Caran d’Ache 제품임을 알게 된 건 한참 후였다. 1915년부터 연필을 만들어온 까렌다쉬는 ‘최초의’ 타이틀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뒷부분을 누르면 흑심이 조금씩 밀려나오는 ‘픽스 펜슬’은 그 예다. 까렌다쉬의 연필은 소장 가치가 높다. 특히 ‘스위스우드’ 연필은 스위스산 너도밤나무만을 사용해 오랜 시간 찌고 다듬어 만드는데, 코를 가져다 대면 커피와 초콜릿이 섞인 듯한 냄새가 난다. 매번 엄청난 고심 끝에 선정한다는 아티스트와의 협업 제품도 언제까지나 책상 위에 두고 싶다. 까렌다쉬의 베스트셀러인 849 메탈 볼펜의 폴 스미스 버전은 ‘깔별로’ 모은 이들이 꽤 있을 만큼 많이 팔렸다. 최근에는 알렉산더 지라드와 그래픽적인 패턴의 849 볼펜을 출시했는데 케이스가 유독 매력적이다. 최근 서울스퀘어에 까렌다쉬 플래그십 스토어가 문을 열었다. 연필, 만년필, 볼펜 등 제품을 선보이는 숍과 커피를 마시며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둘러볼 수 있는 라운지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키보드 대신 펜을 선택한 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국내에 까렌다쉬를 소개하는 더리더스앤컴퍼니의 박소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꼭 사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지 말 것. 편하게 들러 마음껏 ‘슥슥’ 사용해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 말에서 연필처럼 단단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5천원을 내고 스위스우드 연필 한 자루를 샀다. 처음 색연필을 선물 받았을 때의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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