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며 균형 잡힌 일상을 꾸려가는 조슈아 카이저 대표의 삶을 엿보았다. 잠시 차를 홀짝이며 이처럼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 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볼 때가 있다. 10년, 20년 그리고 그보다 훨씬 뒤의 늙은 나. 피부, 몸매, 건강, 자존감까지 점점 쪼그라드는 미래를 하나씩 그리다 보면 호러 무비가 따로 없다. 무서워서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그런데 가끔 멘토로 삼고 싶을 만큼 멋지게 나이 든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맑은 피부와 꼿꼿하고도 탄탄한 몸매, 여유로운 표정까지. 그런 이들은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가지고 생활하며, 운동과 ‘차’를 즐긴다는 공통점을 지녔더랬다. 카페쇼에서 만난 리쉬티의 조슈아 카이저 Joshua Kaiser 대표도 그런 사람이었다. “먹는 것을 좋아해서 종종 과식을 해요(웃음). 그럴 때는 차를 마시죠. 차에 들어 있는 폴리페놀 성분이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몸을 슬림한 상태로 유지시키고 소화도 도와주거든요.” 절도 있게 차를 따르며 조슈아 대표가 말했다. 대학에서 정치외교와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그는 특유의 노마드 기질을 십분 발휘해 세상을 떠돌았다. 그리고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차를 통해 문화를 배웠다. 어릴 적부터 식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차와 사랑에 빠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심지어 이를 비즈니스로 연결시켜 업으로 삼게 되었다고 했다. “일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다른 문화를 만나고 배우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무척 만족하고 있어요.” 외모로 추정했을 땐 30대 중후반쯤 된 훈훈한 청년인 줄 알았더니만 이야기 속에 연륜이 있었고, 심지어 1997년에 시작된 리쉬티의 창립자라고 했다. 민망함에 얼른 찻잔을 들었다가 그 맛과 향에 또 한 번 당황했다. 뭐지? 술인가? “위스키 배럴에 숙성한 홍차예요.” 조슈아 대표가 미소를 지으며 비워진 찻잔을 재빨리 채웠다. 태국 북쪽에 위치한 도이메 살롱 Doimae Salong에서 재배한 타닌 강한 차를 위스키 배럴에 천천히 숙성시킨 것으로, 이 과정에서 차의 강한 타닌은 온순한 맛으로 바뀌고 위스키의 향긋함이 더해진다. 도이메 살롱 지역은 리쉬티가 9년 전부터 차 재배지로 계약을 맺은 곳으로, 중국계 사람들이 심어놓은 차나무가 자연적으로 번식한 야생 차밭이 많다. 태국인들은 차를 마시지 않기에, 지역민들은 이를 차가 아닌 피클로 만들어 팔았는데 그것을 일일이 설득해 지금의 차밭으로 탈바꿈시켰다고. 술맛이 나는데 건강해지기까지 하다니, 완벽한 한 잔이 아닐 수 없었다. 마티니 셰이커에 하루간 냉침해서 강하게 추출한 차와 얼음, 라임 주스, 라임 제스트, 꿀을 넣고 흔들어 잔에 담으면 근사한 논알코올 칵테일이 된다는 말은 잊기 전에 얼른 메모해놓았다.
리쉬티는 위스키 배럴 에이징 티를 생산하는 태국 북부 지역 외에도 스리랑카, 인도, 중국, 일본 등 유명 산지에서 질 좋은 차를 공수한다. 한국의 차시배지인 하동도 이에 포함된다. 중국에서 넘어온 차의 씨앗이 우리 땅에 맞게 유전자를 변형하며 자라난 것이다. “그런 차를 마시면 그 지역을 마시는 느낌이죠. 마치 와인의 테루아처럼요.” 그에게 인상적이었던 차 문화를 지닌 나라를 물었더니 대만을 예로 들었다. 문화도 아주 깊고, 아티스틱하면서도 과학적이라면서 말이다. “중심에 산맥이 있는 대만은 마치 버건디 지역 같아요. 리산 Lishan, 샨린시 Shanlinxi는 아주 높은 산맥인데 매우 플로럴한 티를 생산하고요, 중앙에 있는 루구 Lugu의 차는 찐 고구마나 발효된 꿀처럼 달콤한 맛이 나요. 살구나 복숭아처럼 복잡다단한 향이 나는 차를 만들어내죠.” 하지만 생산량이 많지 않기에, 마니아들 사이에서 더욱 유명한 나라인 듯했다. 그렇다면 진정한 차 마니아라고 할 수 있는 그는 어떠한 차를 마실까. 즐기는 차의 종류를 묻자, 그는 마치 메뉴판을 읊듯 수많은 차를 이야기했다. “계절별로 달라요. 더운 계절에는 플로럴한 우롱티나 일본과 하동의 녹차, 국화나 우엉차 같은 것을 즐기죠. 오미자나 민들레차는 거의 매일 마시고요. 지금처럼 쌀쌀한 계절에는 홍차나 보이차, 발효도가 살짝 높은 우롱차 같은 것을 마셔요. 우롱차는 플로럴한 것이 있고, 굉장히 깊고 센 맛의 것이 있어요. 발효도가 낮은 것부터 높은 것까지 범위가 넓은 편이죠.”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남에 따라 음료 시장의 트렌드도 변화하는 추세다. 그 최전방에 서 있는 조슈아 대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을까. 그는 수없이 받아봤을 그 식상한 질문에 지치지도 않고 눈을 반짝였다. “지난 20년간 세계에서 가장 좋은 차를 찾아 블렌딩하고 시장에 공급하는 일을 했어요. 그리고 앞으로의 20년은 어떻게 하면 ‘진짜 메이커’가 될 것인지를 생각하려 해요. 소규모 브루어리를 만들어 우리가 가진 좋은 원료로 차 음료를 만들어보려고요. 사람들은 더 이상 칼로리와 설탕을 원하지 않아요. 새로운 음료 시장을 필요로 하죠. 그래서 첨가물 없이 오직 자연적인 재료만 사용해 만든 음료를 선보이고자 합니다. 지난 3년간 준비했고, 오는 3~4월쯤 만나볼 수 있을 거예요.” 순간 멋지게 나이든 사람들의 또 다른 비법을 발견한 듯했다. 나이에 관계없이 좋아하는 일을 할 것. 언제나 멈추지 말고 도전할 것. 가만 보니 ‘리쉬티 Rishi Tea’는 산스크리트어로 ‘끊임없이 구하는 자’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