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서울이라는 도시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한 김이홍 교수는 연세대 건축공학부와 미국 하버드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뒤 세계적인 건축가 스티븐 홀과 함께 근무했다. 뉴욕의 선진 건축물을 경험하고 온 젊은 건축가는 서울을 어떤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editor 문은정
뉴욕에서 오래 거주했는데, 뉴욕과 서울의 건축을 비교하자면 어떤 차이가 있는 것 같나? 뉴욕은 2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녔지만 서울은 60~70년 사이 급히 지어졌다. 거기에서 오는 차이가 분명히 있다. 뉴욕은 100년 넘는 오래된 건물이 많다 보니, 역사가 묻어 있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새로운 건물을 짓더라도 규정 안에서 짓고, 암암리에 역사적인 맥락을 지키려는 자세를 갖고 있다. 한국은 건물 하나하나가 모두 개성을 발휘하려는 것 같다.
서울시 공공 건축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건축적인 부분에서 볼 때 서울의 트렌드가 어떻게 흐르고 있다고 보나? 하나는 도시 재생이다. 현재 서울시에서 7곳의 낡은 시설물을 매입했고, 그것을 몇몇의 공공 건축가가 맡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도시 재생을 맡은 마스터 플래너의 궁극적인 목표는 서울을 걷고 싶은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인프라(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계속 모이다 보면 그 취지에 가까워질 것이니 말이다. 나 역시 용산구 서계동의 ‘청파 언덕집’ 프로젝트로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청파 언덕집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청파 언덕집이라는 이름처럼 말 그대로 서울역에서도 보이는 언덕에 위치했다. 30평대의 대지로 오래된 1층짜리 가옥이 있는데, 부분적으로 남겨놓고 3층 구조로 용적률을 높여 시공 중에 있다. 도시 재생 프로젝트인 만큼 그 가옥을 사용하면 좋은데, 구조안전진단을 받아보니 문제가 있었다.
궁극적으로 무엇을 만들고자 하는 것인가? KBS 이욱정 PD가 음식을 통한 도시 재생이라는 주제로 기획을 맡았다. 회현동과 서계동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 시설을 연계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크게는 카페, 베이킹 스튜디오, 전망대로 구성되며 2~3월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도시 재생은 단순히 건물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안의 쓰임새다. 내부 콘텐츠가 명확해야 지속 가능한 공간으로 남을 수 있다. 공간의 형태나 아름다움보다 내부 콘텐츠가 메인이 되는 것도 이 시대의 트렌드인 것 같다.
하지만 부정적인 뒷이야기도 있다. 지역민에게 이익이 돌아오기보다는 쓸데없는 유동인구만 들어오고 임대료만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어디서든 젠트리피케이션 이슈가 가장 우려되는 것이더라. 청파 언덕집 역시 그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누가 그 솔루션을 내면 큰 상을 받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청파 언덕집의 경우 지역민이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육이라는 콘텐츠가 들어가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드웨어를 만드는 건축가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기획자가 동시에 진행을 맡아 좋은 사례로 기록되길 기대하고 있다.
또 다른 트렌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공유라는 키워드를 꼽고 싶다. 리빙이나 오피스 등 다양한 형태가 많이 생긴 것 같다. 최근에 본 것은 멤버십제로 운영되는 공유 거실이다. ‘공유’를 주제로 한 곳들이 늘어나고 있더라.
왜 그러한 것들이 생겨난다고 보는가? 우선 부동산값이 비싸다 보니 큰 집을 영유할 수는 없다. 아파트도 사실 3~4인 가족이 쓰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주말만 되면 이른 아침부터 시외로 나가려는 인파로 도로가 정체된다. 집이 답답하니, 자꾸 벗어나려고 하는 욕구가 늘어나며 펜션처럼 근사한 시설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집이 좁다고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각박해지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조금 큰 범위에서의 트렌드인데, 서울은 지하 개발에 대한 이슈도 있다. 대학 캠퍼스도 지하로 많이 내려가고 있는데, 위로는 더 이상 지을 수 있는 공간 확장 용적률이 없다고 하더라. 지하는 경제 논리만 허용되면 무한정으로 들어갈 수 있다. 곧 삼성역 근처의 지하에서도 조 단위의 공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이대 ECC의 공사를 맡은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지면 공모에 당선되어 지금 설계 중에 있다.
미세먼지나 폭염 같은 환경적인 문제도 지하 개발에 대한 욕구를 부추기는 것 같다. 캐나다 역시 도시가 모두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 추운 겨울이 길기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도 시청, 동대문, 을지로가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 현재는 지하철역으로만 쓰고 있는데, 서울시도 더 이상 개발할 땅이 없기에 그러한 유휴 공간을 찾고 있다. 땅을 사기에는 너무 비싸기도 하고.
앞으로 서울의 건축 방향이 어떻게 흐를 것 같은가? 녹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꼭 건물이나 공간이 될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외부 공간에 대한 고민이 많이 이뤄지지 않을까. 작게는 골목길, 크게는 큰 공원일 수도 있겠다. 서울이 차 중심보다는 사람 중심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본다.
02 덕후를 공략한 편집숍
서울에 생겨나고 있는 편집숍을 보면 성장하고 있는 리빙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올해로 오픈한 지 10주년 된 편집숍의 터줏대감 격인 루밍 박근하 대표는 이 흐름을 진단해줄 수 있는 적임자였다. editor 신진수
2008년에 오픈해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편집숍 루밍의 박근하 대표와 마주앉았다. “한발씩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10년이 되었어요. 그동안 루밍은 두 번의 이사를 했고, 규모도 점점 커졌지요. 시작은 숍이 아니었어요. 스타일링을 하면서 국내에서 구입할 수 없는 디자인 제품을 하나둘씩 모으기 시작했고, 루밍의 시작은 개인 아지트의 개념이었죠.” 부르노 무나리, 엔조 마리, 빌락 등 당시에는 생소했던 디자이너와 브랜드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프리츠 한센과 비트라, 아르텍까지 폭넓게 만나볼 수 있다. 박근하 대표가 바라본 지금 서울의 편집숍 흐름은 어떠할까. “사실 대부분의 편집숍이 거의 같은 제품을 판매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어떤 숍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도 소개하는 제품이 똑같았죠. 특정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위기라는 걸 감지했고, 각 숍의 대표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게 방향을 틀기 시작했어요. 그 결과, 지금 서울에는 다른 도시 못지않게 꽤 다양한 스타일의 편집숍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박근하 대표는 이어서 ‘덕후를 공략한’ 편집숍이 많아지고 있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고 전했다. 국내 작가와 장인의 제품을 그들만의 감각으로 소개하는 챕터원에디트, 오르에르 김재원 대표가 오픈한 문구점 포인트오브뷰, 의류뿐만 아니라 소품과 인테리어까지 충실하게 선보이는 페르마타, 국내 소규모 독립 브랜드를 소개하는 키오스크키오스크 등이 떠올랐다.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제품을 소개하는 편집숍이 점점 많아진다는 사실도 소비자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지요. 서울의 편집숍은 크래프트 인기에 힘입어 더욱 다양해질 것 같아요”라고 전한 박근하 대표는 디자이너의 성향이 다분한 사람이다. 때문에 춘추전국시대 같았던 서울의 편집숍 경쟁에서도 루밍은 자체적인 정화작용을 통해 굳건하게 10년을 버텨냈다. 얼마 전 10주년을 맞이해 선보인 프라이탁과 협업한 케이크백 판매가 큰 성공을 거둔 걸 보면, 이미 알려진 브랜드도 누가 어떻게 소개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을 팔 것인지가 아니라 ‘왜’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숍만이 나날이 까다로워지는 서울의 리빙 시장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03 Pet Friendly City
반려견에 유독 관대한 프랑스 파리처럼은 아니어도 이제 서울에서도 반려견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제법 많아졌다. 이를 시작으로 좀 더 성숙한 펫 프렌들리 도시가 되기 위해 펫티켓을 지켜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ditor 신진수
반려견과 함께 갈 수 있는 공간이 부쩍 늘어났다. 예전에는 상상도 하기 힘든 풍경, 이를테면 대형 쇼핑몰에서 반려견과 함께 쇼핑을 즐기거나 호텔에 동반 투숙하는 이들도 종종 볼 수 있다. IFC몰과 스타필드(일부 매장은 제한)처럼 많은 이들이 모이는 대형 쇼핑몰에 반려견 동반이 가능하다는 건 애견인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프렌치 클래식 인테리어로 화제를 모은 레스케이프 호텔은 펫 프렌들리 호텔이다. 9층에 위치한 14개의 펫 전용 객실에 투숙할 수 있고, 반려견과 호텔 내 차이니스 레스토랑인 팔레드 신에서 식사도 할 수 있다. 제공하는 서비스가 알찬 반려견 동반 객실 패키지인 ‘웰컴 펫 패키지’도 인기가 좋다. 반려견 동반으로 식사나 차를 즐길 수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도 많아졌다. 반려견의 크기나 몸무게에 상관없이 편하게 식사할 수 있는 곳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한남동에 위치한 ‘카페 아운’은 쿠킹 클래스나 소규모 대관도 진행하고 있으며 가정식 같은 주인장의 맛깔스러운 음식도 맛볼 수 있다. 해방촌 골목에 위치한 ‘진저 키친’은 애견 동반 맛집으로 소문난 곳. 애견을 동반한 손님을 배려하는 것은 물론이며 이곳의 가리비 관자 스테이크와 구운 감자는 꼭 맛보아야 할 메뉴다. 하지만 이런 공간이 많아지는 것과 별개로 견주는 펫티켓을 잘 지켜야 할 필요가 있다. 줄을 잘 채우는 것은 물론, 배변은 직접 수거하고, 마킹을 하는 반려견은 매너벨트를 채우는 등 펫티켓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듯 반려동물에게 너그러워진 공간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서울이 진정한 펫 프렌들리 도시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04 캐주얼해진 갤러리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이름을 알린 잘생긴 미대 오빠 ‘충재씨’가 아닌 진지하게 작업에 임하는 작가 김충재를 만났다. 그의 첫 번째 개인전 <Vice Versa: the other way around>는 아트와 리빙의 콜라보레이션으로 갤러리의 새로운 방향을 추구하는 갤러리 ERD와 함께했다. editor 원지은
INTERVIEW
지금까지 갤러리 ERD에서 봐왔던 전시와는 다른 것 같아요. 요즘 전시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갤러리 ERD 이민주 대표) 이제 갤러리라는 공간은 더 이상 무겁고 딱딱한 곳이 아니라 대중과 함께 소통하고 작가 자신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기 피알을 하는 등 직접 작품을 알리기 위해 좀 더 다양한 관객들에게 작품을 선보이는 기회의 자리로 변화하고 있어요. 소셜 미디어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새로운 예술 시장이죠. 일련의 것이 가벼워 보인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현시대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하나의 소통 방식임이 틀림없어요. 그런 면에서 충재 작가야말로 현재 활동하는 작가들 중에서 가장 준비가 잘되어 있지 않나 싶어서 함께하게 되었죠.
드디어 첫 번째 개인전이네요. 전시에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김충재) 어느 해보다 바쁘게 보낸 2018년이 다 지나기 전에 초기 작품과 신작을 엮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부랴부랴 준비했어요. 전시 타이틀 ‘Vice Versa: the other way around’는 A에서 B도 맞고 B에서 A도 맞다. 다시 말해 거꾸로 해도 맞는다는 뜻이에요. 꼭 1에서 2, A에서 B만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부분을 선이나 면, 평면과 입체, 직선과 곡선 그리고 색상 등 상반되는 것들에 빗대어봤어요. 이렇게 대립되는 것들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도록 재료부터 재료의 방법론까지 방향을 다양화해 완급 조절을 시도해봤어요.
전시 타이틀에도 있는 ‘Angled White’는 그 유명한 각진 화이트인가요? 갤러리 ERD의 김홍경 큐레이터가 소소한 재미를 위해 제안한 건데, 부끄럽네요. 뭐 제가 방송에서 내뱉은 말이니 오케이했어요(웃음).
초기 작품부터 신작까지 작업에 변화가 있었나요? 초반에는 입체나 아트 퍼니처로 시작해 주로 물성이나 금속을 다뤘어요. 금속이나 세라믹 작업도 했는데, 세라믹에 이어 다시 평면 작업을 한다든지 아니면 CNC 가공을 이용한 작품을 주로 했어요. 1층 전시를 보면 알겠지만 이번 신작에는 과감한 컬러를 사용했어요.
무채색 작품이 주를 이루는데, 색감에 대한 갈증이 있었나요? 무채색으로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색감에 대해 연구 중이에요. 가구 같은 경우는 상당히 미니멀하고 꼭 필요한 요소만 남아 있는 반면, 면이라든지 색채로 가기 위해 칸딘스키의 책을 많이 봤어요. 색이나 형태는 그 사람의 영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하면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녹여낼 수 있을까 고민했죠.
주로 3D 프린팅이나 디지털 기반의 작업을 하는 것 같던데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하필 3D 프린팅으로 작업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오는 바람에 전시를 보러 온 관객들이 세라믹을 보고도 3D 프린팅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3D 프린팅은 파이널 작업을 하기 전 목업 정도로, 사전에 뽑아보는 용도로 사용해요.
관심 있는 또 다른 기술이 있나요? 지금은 삼축, 즉 X, Y, Z 세 개의 축을 이용해 가공물을 깎아 형상을 만드는 작업만 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사축, 오축 가공을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어요. 기계를 사고 싶거든요(웃음). 3D 프린팅에도 정말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요즘에는 하이브리드식으로 3D 프린팅과 CNC를 병행하는 시스템이 생겨나고 있어요. 요즘 가장 관심이 가는 것 중 하나예요.
2층 전시 공간은 전혀 다른 모습이네요. 2층은 저와 이민주 대표님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어요. 제가 직접 그림을 작업하는 모습을 유튜브와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공개하는 공간이에요. 아무래도 작가들이 전시를 해도 갤러리에 잘 안 오게 되더라고요. 전시 공간에서 또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단순히 작업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죠. 작업을 한다는 것은 느리고 무겁고 비효율적인데, 어떻게 보면 디지털 스트리밍은 가볍고 빠르고 효율적이잖아요. 이런 것도 제가 전시에서 말하고 싶은 ‘낯설게 보기’ 중 하나인 듯싶어요.
라이브로 그려낸 작품을 판매도 한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하지만 이곳에서 판매하는 작품은 완성본이 아니라 빈 캔버스를 먼저 구입하는 방식이에요. 아직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빈 캔버스를 구입한 관객은 어떤 작품이 나올지 기대감이 생기죠. 하지만 그 과정은 디지털화된 기록으로 남겨지기 때문에 추후 작업 과정을 확인하는 재미도 있어요. 대신 작품성이 좀 더 있는 드로잉이라든지, 실크 작업을 할 예정이에요.
현대 예술 시장의 소셜 미디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충재) 요즘 마르쉘 뒤샹 전시를 하는데, 뒤샹과 앤디 워홀이 살아 있다면 SNS(?)를 엄청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웃음). (이민주 대표) 제 생각에는 피카소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직접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이 매력적인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시대에서 불가피하다고 봐요. 그런 면에서 충재 작가는 모든 매체나 SNS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 있기 때문에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죠.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요. (김충재) 큰 계획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아닌데, 일단 작업실을 이사할 예정이에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2년 정도 있었는데 레지던시라는 것이 사회로 나오기 위한 중간 과정이잖아요. 이제는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좀 더 도전의식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쭉 작업 활동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재미난 것들을 해보고 싶어요.
05 Artistic Plants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물론 오브제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는 아티스틱한 식물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독특한 식물 하나만 있어도 아름다운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 editor 원지은
종로 운니동의 오래된 벽에 스며들듯 자리한 식물 파는 곳 ‘식물의 취향’은 원예가 박기철이 고요한 가운데 강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다. 관엽, 다육, 선인장 등 다양한 식물이 있지만, 그는 야생 초목을 주로 다루고 소개하는 원예가다. 그는 야생 초목의 경우 분갈이 이후 후반 작업에서 완성도가 판가름 난다고 했다. “여기 있는 식물을 보면 알겠지만, 식물의 선과 형태가 모두 다르죠. 야생 초목은 작업의 집중도를 요하는 식물이에요. 누가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확연히 다른 형태를 띠죠.” 요즘 카페나 편집숍만 들여다봐도 오브제 효과를 내는 식물로 인테리어한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가정집에서 식물을 사용해 인테리어를 완성하는 방법을 물었다. “예를 들어 선이 아름다운 나뭇가지 하나만 벽에 걸어놔도 사물 형태의 모빌 혹은 행잉 오브제가 될 수 있어요. 나무 화석을 선반에 올려둔다든지, 날이 서 있는 것 주변으로 둥근 오브제를 둬 형태의 조화를 맞추면 좋아요. 하지만 식물 옆에 둘 오브제는 식물보다 톤이 떨어지는 것을 선택해요. 사람도 각기 자신한테 어울리는 옷을 입듯 식물도 적합한 화기와 어울리는 오브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해요. 억지스럽게 도드라지기보다는 가장 돋보이는 ‘때’를 기다려야 해요.” 지금 머무는 공간이 뭔가 아쉽다면 식물을 들여보는 건 어떨까?06 감성 플랫폼
2018년 화제의 공간을 꼽으라면 단연 피크닉이다. 기존 복합문화공간이 무언가를 선보이는 ‘기능’에 집중했다면 피크닉은 감성적인 갈증을 채워준다. editor 신진수
채도가 낮은 오렌지 컬러의 낡은 건물에 피크닉 Piknic의 로고가 올라섰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Life, Life> 전시를 개관전으로 문을 연 피크닉은 올해 서울에서 가장 주목받은 공간일 것이다. 1970년대의 오래된 건물을 최대한 살린 건축 레노베이션과 카페(밤에는 바 Bar로 변신한다), 파인 다이닝으로 잘 알려진 제로컴플렉스의 입점 그리고 개관전을 시작으로 현재 진행 중인 재스퍼 모리슨의 <Thingness> 전시까지, 피크닉의 문화적인 제안이 한 건물에 집약돼 있다. 하지만 피크닉을 단순히 복합문화공간으로 부르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이유는 이 건물에서 제공하는 다채로움이 기능을 넘어 감성적이기 때문이다. 낡은 계단의 손잡이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기운, 줄지어 달린 빛나는 샹들리에 아래서 즐기는 차 한잔, 사진을 찍고 싶게 만드는 멋스러운 로고, 기획력을 느낄 수 있는 전시 등 피크닉은 ‘나도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공간’이 되기에 충분하다. 피크닉을 운영하고 있는 전시 기획사 글린트는 영민한 파트너십으로 이런 감성 플랫폼을 완성했다. 오너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직접 지휘하기보다는 건축, 사이니지, 로고, 가구, 조명, F&B 등을 세밀하게 나눠 각각의 전문가들과 손을 잡았다. 때문에 피크닉에서는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을 만큼 각각의 분야에서 최고의 감도를 보여준다. 언젠가 피크닉에 들렀다면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즐기면 된다. 건축 레노베이션이 궁금하다면 계단을 오르내리며 건물을 둘러보면 되고, 루프톱에 올라 강북의 풍경을 바라보거나 샹들리에 아래에서 와인 한잔을 마셔도 좋겠다. 오래된 건물이 건네는 감성적인 제스처가 새로운 문화 플랫폼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07 한발 가까워진 아트
요즘 들어 아트 클래스뿐만 아니라 아트 투어, 도슨트 프로그램 등 아트에 관한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점점 대중화되고 있는 아트에 대한 흐름에 대해 이안아트컨설팅 대표에게 들었다. editor 신진수
서울의 아트 시장은 지금 어떠한가? 크고 작은 갤러리에서 여는 문화 이벤트가 많아졌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가서 사진도 찍어 올리고, 입소문으로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그저 이벤트 참여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일단 사람들이 갤러리나 뮤지엄에 온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런 현상 저변에는 SNS의 힘이 크지 않나? 그렇다. 갤러리에서 촬영한 사진 한 컷으로 자신의 예술적 소양을 어필할 수도 있고, 유명한 전시에 나도 가봤다는 인증의 개념도 있다. 덕분에 SNS에 많이 올라오는 전시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일상에서 대중화된 예술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고 있나? 인테리어의 마지막 요소로 작품을 구입한다던가, 특정 작가의 작품이 휴대폰 케이스 같은 상품으로 제작되기도 한다. 또 아주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는 캐릭터를 통해 예술 작품을 처음 접하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메신저의 이모티콘도 작품처럼 느껴질 수 있다.
부정적인 면도 있지 않나? 단지 보기 좋은 작품으로 치우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작품과 작가에 대해 더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무라카미 다카시는 단순히 귀여운 꽃 그림이 아니라 동양화 기법과 일본의 문화, 일본 민족주의를 자신만의 감성으로 표현했는데, 이처럼 작품마다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트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관련 업체도 많이 생겼다. 소소한 그림 가게가 많아져서 좋고,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또 작품을 렌털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픈 갤러리나 유명 작가의 작품을 프린트로 판매하는 프린트베이커리 같은 곳도 예술의 대중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예술 초보자들을 위해 조언한다면? 작은 그림이라도 걸어본 사람만이 계속 예술 작품을 사게 된다고 믿는다. 많이 구입해봐야 노하우나 안목도 생기고 나아가 법률적인 문제를 공부할 수도 있다.
서울에 생겼으면 하는 뮤지엄의 롤모델이 있나? 파리에 살았던 적이 있어서인지 퐁피두 센터를 꼽고 싶다. 외국의 좋은 미술관들은 공간이 개방적이다. 퐁피두 센터는 대지의 반 이상이 광장이고, 리스본에 있는 굴벤키안 미술관은 도심에 있지만 자연 친화적이다. 또 서울에도 정말 괜찮은 영구 전시를 하는 뮤지엄이 강남, 강북에 한 곳씩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08 한국판 츠타야
서울에 자리 잡기 시작한 라이프스타일 서점은 다채롭게 진화하고 있다. editor 문은정
최근 서울에 문을 열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서점의 원류는 일본의 츠타야 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전역에 1400개의 지점을 갖고 있는 츠타야는 책의 큐레이팅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방식을 가장 먼저 시도한 곳이다. 예를 들어보자. 중국으로의 여행 계획을 세운 사람은 가이드북뿐 아니라 그 나라의 에세이나 소설, 식문화, 최신 정보가 실린 잡지까지 함께 궁금해한다. 츠타야는 이러한 특성을 파악하고 문고본이나 단행본, 전문 서적을 각 장르에 따라 함께 진열해놓았다. 또한 책과 관련되는 물건과 행동의 제안도 시도했다. 여행과 관련된 서가 옆에 여행 대리점 카운터를 설치하고, 요리책 코너 옆에 요리 교실을 만들었다. “취향을 설계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플랫폼이고, 단순히 서점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해요. 최근, 공간 기획에 대한 관심들이 높아짐에 따라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는 곳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한 가지의 목적성을 가진 공간보다는, 다양한 활용성 측면을 강조한 곳들이 늘어나고 있는 거죠.” 아크앤북의 김지인 마케팅 과장이 설명했다. 서점 내 좌석 비치가 늘어나고 문화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추세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다양한 움직임이 주위에서 포착된다.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에서는 단순한 요리책뿐 아니라 셀프 쿠킹 프로그램이 있어 책에 적힌 레시피를 그대로 시연해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최인아 책방에서는 각종 유명 인사의 강연과 클래식 공연 등 부대 행사에 더욱 열심이다. 부영을지빌딩 지하에 오픈한 아크앤북은 마지막 아날로그라 할 수 있는 F&B와 서가를 연결시키며 서점을 일종의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디지털 세계에 사는 듯 보이는 사람들은 사실 아날로그에 목말라하고 있다. 그리고 서점은 그러한 사람들을 불러들이며 긍정적인 라이프스타일 제안을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