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는 나라 포르투갈 그리고 도시 리스본은 유럽과는 또 다른 순수한 멋과 비옥한 문화적 토양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예술 성지를 꿈꾼다.
리스본을 비롯해 포르투갈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파리에 다녀왔어요” 하는 말에는 심드렁하다가도, “리스본에 다녀왔어요” 하면 “거기가 그렇게 좋다면서요? 어떤가요?” 내지는 “예전에 저도 다녀왔는데 너무나 매력적인 곳이에요” 하는 등 대화가 끝없이 이어진다. 유럽이면서도 뭔가 유럽 같지 않은 독특한 매력이 이곳에 있는 듯하다.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듯 풍부한 문화적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은 자본주의의 때가 덜 묻은 푸근함이 남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 포르투갈에 대한 관심이 왜 이제 와서 이렇게 폭발하는지 생각해보면, 해외 여행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경험이 그만큼 무르익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파리, 런던과 같은 대도시로, 그다음에는 피렌체, 로마, 비엔나 등의 문화 도시로, 동유럽과 스페인 그리고 이제는 지금까지 무심코 지나쳤던 보물 같은 장소를 다시 되짚어보는 타이밍인 것이다.
이런 생각을 이미 70년 전에 했던 사람이 있으니, 바로 칼루스트 굴벤키안 Calouste Gulbenkian(1869~1955)이다. 현재의 터키, 당시의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서 아르메니아 후손으로 태어나 이집트, 파리, 런던을 거쳐 리스본을 일생의 마지막 터전으로 숨을 거뒀다.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구사하고, 타고난 비즈니스 감각과 엔지니어링에 대한 학식까지 겸비해 유럽과 중동을 잇는 유전 사업을 기획한 후, 그는 ‘5%의 사나이’로 불리며 수수료를 받는 방식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일궜다. 그의 막대한 자금은 예술품을 수집하는 데 쓰였고, 사망 당시 남긴 무려 9천억에 달하는 재산은 ‘굴벤키안 재단’을 통해 지속적으로 문화 예술을 장려하는 데 쓰이고 있다. 미술관을 세울 수 있도록 허가만 해준다면 땅과 자금을 대겠다고 런던과 파리가 나섰지만, 그가 선택한 도시는 바로 자신이 고향처럼 여기고 여생을 보낸 리스본이다. 고대 유물에서부터 현대 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컬렉션이 모인 굴벤키안 미술관은 마치 작은 루브르 미술관을 연상시킨다. 튈를리 정원 못지않은 개천이 흐르는 정원도 압권일뿐더러 입장료를 내지 않고도 누구나 미술관 정원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관대함도 멋지다.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따스한 햇살이 가득해 심지어 풀밭에 누워 있는 사람도 여럿이던 굴벤키안 미술관. 리스본 시내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부자는 망해도 삼대가 먹고산다는 속담이 자꾸 생각난다. 근대화 과정에서 뒤처진 때도 있었지만 한때 전 세계를 제패하며 신대륙 아메리카를 발견했던 나라 포르투갈이 다시 타오를 수 있도록 남아 있던 불씨는 바로 포르투갈의 풍부한 문화적 자본이다. 퐁피두 센터 못지않은 컬렉션의 베라르도 뮤지엄 문화센터 Belem Cultural Center(CCB), 발전소를 개조해 복합 문화 센터로 만든 건축박물관 마트 MAAT(예술, 건축, 테크놀로지 뮤지엄 Museum of Art, Architecture and Technology), 포르투갈 엑스포를 기점으로 미래 해양 리조트를 개발한 해양 지구와 그곳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고 있는 포르투갈 최고의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파빌리온 등 이 모든 것이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포르투갈의 유산이자 미래다. 리스본만 방문한 아쉬움을 담아 다음에는 알바로 시자의 고향 포르투를 방문해 그가 지은 세랄베스 현대미술관 Serralves Museum을 꼭 방문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