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보데 개인전 <COLOUR VIBE>
when 5월 9일(목)~5월 31일(금)까지
where 예화랑
tel 02-542-5543
COLOUR VIBE
니콜라스 보데의 작품은 가사가 없는 연주곡과 닮았다. 의미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대신 색채가 빚어내는 화음과 리듬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독일 작가 니콜라스 보데 Nicholas Bodde는 색채 화가로 불릴 만큼 다채로운 색의 변주에 집중하는 작가다. 16년 만에 다시 서울을 찾은 그의 개인전이 지난 5월 9일부터 신사동 예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작품은 일관되고 명쾌하다. 사각의 프레임에 한정되지 않고 원형과 타원형, 3차원의 기둥으로 확장된 화폭에 구현되는 그의 작업은 다양한 색채가 이루는 선과 면의 조합으로 충만하다. 그에게 있어 색은 주제와 대상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적 요소가 아니다. 기하학적 형식에 담아 계속되는 색에 대한 탐구는 그의 작업에서 핵을 이루는 부분이다. 그는 의미의 해석 대신 색을 중심으로 한 가장 원초적이고 감각적인 미술적 경험에 집중할 것을 관객에게 제안한다. “작가로서의 방향성도, 작업의 방식도 지적인 과정과 결정이 아니라 직관적인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정해졌어요. 모든 사람이 내 작품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색채를 좋아하고 내 작품에 흥미를 느끼는 관객이라면 넉넉하게 시간을 두고 감상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미술 작품을 보고 느끼는 행위에는 반드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나는 개념을 세우기보다 느끼면서 작업하는 작가입니다. 관객 역시 느끼는 데 집중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의 작업은 캔버스 대신 알루미늄 판 위에서 이뤄진다. 알루미늄 판에 붓질과 스프레이 작업을 통해 색을 입히고 선과 면을 채워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매끈한 알루미늄의 물성은 색의 발광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완성 이후 공간에 설치했을 때 캔버스에 비해 날렵하게 표현된다는 점 때문에도 선택한 소재다. 니콜라스 보데는 6~7개의 판을 펼쳐놓고 동시에 작업을 진행하는데, 이때 유화, 아크릴, 수채화 물감 등을 두루 사용한다. 또한 유광과 무광의 효과, 매끈하거나 거친 질감 같은 대조적인 속성이 동시에 한 작품에 혹은 개별적으로 각각의 작품에 분방하게 반영된다. 작품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봤을 때는 정교하고 깔끔하게만 보이던 선과 면을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마치 기적 과정이 아닌 사람의 손으로 완성됐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표면을 갖게 되는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다. 일면 단순한 구조를 지닌 것 같은 그의 작품이 긴 시간을 꼼꼼히 두고 볼수록 다르게 보이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럼에도 선과 면을 이루는 색채가 빚어내는 하모니의 내적 규칙성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색을 선별하고 선과 면을 구획하는 기준이나 원칙을 물었을 때 작가의 답은 “I don’t know.” 당혹스럽기까지 한 이러한 답변은 완성된 그의 작품이 작가의 통제를 벗어난 우연의 결과임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정돈된 논리와 기술적 질서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무엇, 즉 하나의 컨셉트에 긴 세월 매진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작가적 성찰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그것은 언어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서서히 체화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새로운 주제와 소재, 형식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작가와 자신의 작업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그 범주 안에서 깊이를 더해가는 작가가 있다. 어느 쪽이 낫다고 할 수 없는 선택의 문제다. 니콜라스 보데의 입장은 당연히 후자 쪽이다. 그에게 색채는 그 자체로 무한한 미술적 탐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은 색채라는 틀 안에서 서서히 진화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 ‘Slim Verticals’가 좋은 예다. 긴 사각기둥 형태의 이 작품은 그가 3차원의 세계로 작업의 형태를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각의 느낌을 주는 ‘Slim Verticals’는 실외에 설치가 가능해서 주변 환경과 섞여 들어가는 색과 형태의 새로운 느낌을 경험할 수 있는 구조를 갖지만 선과 면으로 구성되는 색채의 조합이라는 면에서는 이전 작품들과 같다. 색채의 코러스를 만끽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5월 31일까지 계속된다.
CREDIT
포토그래퍼
김도원
writer
이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