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성찰이 없는 문화가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끊임없이 한국적인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갤러리가 있다.
웅갤러리의 최웅철 관장.
무엇이 한국적인지를 묻는 것이 구태의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한국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자 하면 그것이 생각처럼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단 나 자신부터 한국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추출해내는 것이 쉽지 않다. 한국인의 삶은 그 자체로 모두 한국적이라고 잘라 말한다면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지만, 나에게 현재적 영향을 미치는 한국적 전통의 요소를 끄집어낸다고 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가파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전통은 충분한 시간과 순리적 과정을 통해 현대로 이양되는 대신 단절과 유실의 시기를 거쳤고, 파란의 근현대사를 겪으며 일부는 왜곡되기도 했다. 굳이 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 수 있는 우리 것이라고 하기에, 한국적인 것의 실체는 낯선 무엇일 때가 많다. 실험적인 현대미술 작업을 시도하는 신구 작가들을 꾸준 히 소개해온 웅갤러리의 최웅철 관장은 한국적 미학의 정체를 꾸준히 탐구하고 담론 확장을 도모해온 연구자이자 기획자이기도 하다. 그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자연스럽게 결합되고 서로에게 녹아드는 과정이 압축되면서 발생하게 되는 충돌과 반목을 중화하고, 이해의 폭 을 확장하는 방식을 고민해왔다. 최근 웅갤러리는 1987년에 자리 잡은 강남을 떠나 부암동으로 이전하고 지난 5월부터 열린 첫 번째 전시<담색물성 潭色物性>을 기획했다.
“깊다는 뜻의 ‘담’자를 써서 담색입니다. 색보다는 한국의 빛과 생각, 형식을 담으려고 했어요. 한국의 정체성을 담는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았습니다. 단순히 한 가지 색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의미로 사용 한 말이 담색입니다. 수행처럼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완성되는 물성은 한국적미술공예작품의 중요한 특색 중 하나죠. 이번을 시작으로 <담색물성> 전시는 새로운 작가들과 시리즈로 진행할 예정이에요. 이미 다 음 <담색물성>전을 준비 중입니다. 한국의 미술관과 화랑이 한국 작가 들의 작품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다른 나라에서도 관심을 갖지 않아요. 결국 한국 작가들은 설 땅이 없어집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들 을 보면 그 작가가 태어난 나라의 컬렉터들이 먼저 작품을 삽니다. 한국적 아이덴티티에 대한 담론을 활성화시키고 꾸준히 작가들을 조명해야 그들이 세계적 작가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정체성을 담은 작가들을 소개한 <담색물성>전.
왼쪽 구자현, Untitled, 2013, Gold Leaf on Canvas, 116.8×91cm. 오른쪽 이진우, Untitled, 2018, 한지에 혼합 재료, 160×117.5cm.
왼쪽부터 장광범, Montagne Verte, 2017, Acrylic on Canvas, Sanding, 128×97cm. 이진우, Untitled, 2018, 한지에 혼합 재료, 117.5×160cm. 장광범, Reflet P, 2019, Acrylic on Canvas, Sanding, 80×80cm.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구자현, 김택상, 윤형근, 이진우, 이동엽, 장광범, 장연순의 총 7인이다. 고인이 된 윤형근, 이동엽 작가를 포함한 것은 한국적 물성을 보다 심도 깊게 다루고자 한 기획자의 의도다. 작품들의 면면은 개성적이면서도 ‘담색물성’이라는 주제로 수렴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은 저마다의 색과 형태, 작업 방식을 통해 한국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어떤 활자보다 더 명징하게 보여준다. 최 관장은 지난 2월 한국화랑협회장으로 선임됐다. 갤러리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 화되고 있고, 작가를 발굴하고, 담론을 생산하며 미술 발전에 큰 기여를 했던 갤러리 기획전도 많이 사라진 즈음이다. 한국적 미술을 소개하는 역할은 물론이고 한국 미술계를 위해 풀어야할 많은 숙제를 안게 된 그 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한국 근대미술의 재발견이다. “근대미술에 대한 관심은 전 세계적으로 활성화돼 있어요. 우리 미술계에서 중요한 근대 작가들을 다시 돌아봐야 합니다. 독립된 근대미술관이 없다는 건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 미술계를 대표하는 근대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너무 부족해요. 정부도 컬렉션에 적극적이지 않죠. 큰 화랑들의 전속 작가, 해외 작품의 거래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근대 작가 작품의 거래가 활성화되면 작은 화랑들도 기회를 얻게 되고, 한국 작가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현재 최 관장은 비슷한 성격의 화랑들이 함께 기획하는 전시를 활성화 하고, 일반 관객들의 갤러리 접근성을 높여주는 앱 개발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준비 중에 있다. 갤러리는 단순히 그림을 파는 곳이 아니다. 갤러리와 미술관은 대중이 더 다채로운 미술을 만나기 위해 균형을 이루고 함께 날아야하는 양날개와 같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갤러리들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웅 갤러리
add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299
tel 02-548-7371
web www.woonggallery.co.kr
장연순, 늘어난 시간, 080405, 2008, Abaca Fiber, Indigo Dye, Machine Sewn, 130×130×27cm.
장연순, 늘어난 시간, 112570, 2007, Abaca Fiber, Indigo Dye, Machine Sewn, 26×56×27cm.
대형 조각 작품 전시를대비해 화이트 큐브 한 켠으로 큰 창을 냈다. 창 바로 옆에 전시된 작품은 이동엽, 사이, 1992, Oil on Canvas, 72.7×60.6cm.
왼쪽 김택상, Breathing Light-Spring Red, 2016~2019, Water Acrylic on Canvas, 125×82cm. 오른쪽 김택상, Breathing Light-Spring-Camellia Red, 2016~2019, Water Acrylic on Canvas, 118×61cm.
장광범, Montagne Noire, 2017, Acrylic on Canvas, Sanding, 100×100cm.
윤형근, Untitled, 1991, Oil on Linen, 73×116.5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