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공간이 영화의 무드를 만든다. 공간이 돋보이는 네 가지 영화.
잠깐의 휴식을 선물하는 식당 <카모메 식당>
헬싱키의 구석진 골목 모퉁이에 위치한 파리 날리는 일식당. 그나마 찾아오는 손님들은 늘 하나같이 특이한 면모를 뽐내지만, 이곳은 편견없이 모두에게 맛있는 음식과 짧은 수다로 편안한 시간을 선사한다. <카모메 식당>이 손님과 관객에게 건네는 위로에서 담백함까지 느낄 수 있는 건 북유럽 풍의 식당 인테리어 덕분이기도 하다. 빈티지한 느낌을 자아내는 주방은 살짝 바랜 듯한 화이트 톤의 벽에 블루 컬러 타일 판넬을 활용해 포인트를 살렸다. 종류별로 걸어놓은 조리 기구들과 심플한 수납공간은 식당의 깔끔함까지 부각시킨다. 창으로 은근히 들어오는 햇빛과 고즈넉한 골목 그리고 식당 인테리어가 어우러져 마치 이곳만 유독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
그로테스크한 공포가 가득한 공간 <장화, 홍련>
공포 영화의 불모지라고 여겨지던 한국에 내린 몇 없는 수작이다. 동명의 전래동화를 모티프로 삼은 이 작품은 좁은 집 안이라는 한정적인 배경에서 스토리가 진행되기 때문에 공간은 더욱 막중한 임무를 가지게 된다. 주요 배경이 되는 집은 이국적인 일본식 양옥을 닮은 외부와 플로럴 패턴의 벽지로 도배된 내부로 이루어져 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을 것 같이 반복되는 패턴은 강박적인 느낌까지 자아낸다. 조금만 시야를 넓히면 공간마다 적절하게 활용된 보색의 대비도 발견할 수 있다. 오크를 활용한 가구와 하늘색 타일이 깔린 주방, 새빨간 립스틱과 블라우스와 대비되는 에메랄드 톤의 벽지가 주는 강한 색채 대비는 영화에 도사린 그로테스크함을 한껏 끌어올린다.
18세기 영국의 화려한 궁정 <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
국내에선 <라라 랜드>의 엠마 스톤과 <매드 맥스>의 니콜라스 홀트의 주연작으로도 꽤 높은 관심을 끌었다.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는 영국의 앤 여왕을 필두로, 국가를 휘두를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해 암암리에 펼쳐지는 여성들의 궁중 암투와 생존을 위한 주체적 투쟁을 다루고 있다. 18세기 초 영국을 영화적 배경으로 삼은지라, 이를 고증한 영화적 배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특히 음영이 짙게 어릴 정도로 높은 천장과 벽면 곳곳을 수놓은 화려한 패턴은 당시 영국 왕실의 위엄을 표현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 영화의 핵심은 공간과 인물 간 심리가 묘하게 대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웅장한 궁정이 주는 위압감과 그 속에서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살아가는 인물들이 갖는 고독이 모순을 이루며 극적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미셸 공드리의 환상 세계 <무드 인디고>
<이터널 선샤인>으로 이미 특유의 미감을 선보인 바 있던 미셸 공드리의 미적 세계관이 이 영화를 통해 또 한번 대중에게 각인됐다. 그래픽에 기대는 것을 최대한 지양하는 특유의 고집 덕분에, 그가 영화 속에 그려낸 환상 세계는 늘 아날로그 효과로 가득하다. 나아가 주인공 콜랭의 각종 신기한 발명품과 그로테스크한 몸짓을 보여주는 인간들처럼 독특하고 기이한 것들 또한 넘쳐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영화의 진행에 따라 극적으로 바뀌는 공간과 장면의 무드다. 콜랭과 클로에의 사랑이 싹트는 초반의 공간은 파스텔 톤과 비비드한 컬러를 활용해 영화의 발랄하고 밝은 분위기를 보여주지만, 클로에의 병세가 짙어지며 결국 죽음이 도래하는 암울한 순간에는 화면 속 모든 물체의 색을 빼앗아 모노 톤의 장면을 연출해낸다. 이처럼 스토리 흐름에 걸맞는 공간의 변주를 통해 미셸 공드리는 시각적인 감정 전달까지 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