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로의 연장선에서 페미니즘과 인종, 스트리트 컬처, 수공예에 대한 관심이 2020년 예술계의 시선을 LA로 돌리게 만들었다. 글로벌 회사가 밀집한 서부의 중심지이자 새로운 자본 도시로 거듭나며 세계 예술 시장의 흐름을 이끄는 LA를 들여다봤다.
2020년 미술계는 몇 년 전부터 조짐이 일던 지각변동이 구체적으로 자리 잡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뉴욕, 파리, 런던 등 미술계를 이끌어온 대도시나 유명 미술관에 의한 발전이 아니라 그동안 간과했던 지역이 흥미롭고 새로운 미술계 세력으로 부상하는 것이다. 1990년대부터 제3세계에 대한 관심 속에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를 주목했지만, 그것도 이미 30년 전의 이야기다. 아시아가 더 이상 변방이 아닌 지금, 변두리는 사실 미주 혹은 유럽의 소외되었던 도시가 아닐까? LA는 그중에서도 가장 ‘힙’한 진원지로 손꼽을 만하다. 구글, 유튜브, 넷플렉스 등 굴지의 글로벌 회사가 모두 서부에 있고, 산업의 중심지가 금융과 법률에서 IT 비즈니스와 엔터테인먼트 미디어로 옮겨가며 미국 서부가 새로운 자본의 도시로 부흥하고 있다. 촌스럽고 삭막하던 지역이 아닌 새롭게 문화와 멋을 아는 이들의 도시로 거듭나는 LA. 그 중심에는 일찍부터 세계 최고의 미술관 문을 연 게티 센터가 자리하고, 100여 년 전 뉴욕에서 그랬던 것처럼 당대 미술의 후원자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 작가 제프 쿤스의 작품을 무수히 모아놓은 브로드 뮤지엄이 몇 해 전 문을 열었다. 라크마 미술관도 신관을 확장한 데 이어 구관의 레노베이션 공사에 착수 중이다.
화룡점정으로 런던에서 시작해 뉴욕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프리즈 아트페어가 LA에 안착했다. 지난해 2월 첫 회를 시작으로 2020년에는 두 번째 해를 맞이한다. 심지어 뉴욕에도 지점을 열지 않은 하우저&워스 갤러리는 LA에 먼저 문을 열었고, LA 현대미술관의 관장을 역임한 뉴욕 출신의 어드바이저 제프리 다이치도 프로젝트 스페이스를 LA로 잡았다. 몇 해 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던 사막에서 펼쳐지는 아트 비엔날레, 데저트 엑스가 열린 곳도 바로 LA이다. 지난해의 키워드였던 뉴트로의 연장선 속에서 여성(페미니즘), 인종(흑인), 커뮤니티(스트리트 컬처), 수공예에 대한 관심이 LA 같은 힙 플레이스의 부상과 함께 세계 미술계의 판을 다시 짜고 있다. 현재 이곳의 큰 흐름은 아메리칸 아프리카 역사의 맥락 속에 있는 작가들이다.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미국을 대표한 마크 브래드포드 Mark Bradford, 1926년에 태어나 현재 90대인 여성 작가로 이제서야 재평가를 받고 있는 여성 미술가 베티 사르 Batye Saar도 LA 출신이다. 지난해 확장 공사를 마치고 다시 개장한 뉴욕 모마의 첫 작가로 선정되어 화제를 모았으며 LA 라크마 미술관에서도 특별 전시를 열고 있다. 베티 사르는 여성 예술가 중에서도 백인과 흑인으로 나뉘는 이중 차별이 있었음을 일깨워주는 사례다.
LA는 알고 보면 페미니즘 미술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1970년대 페미니즘 미술을 이끌었던 주디 시카고 Judy Chicago와 미리엄 샤피로 Miriam Schapiro가 교편을 잡았던 학교가 바로 LA의 칼아츠 스쿨이고, 그들로부터 교육 받은 새로운 개념주의 예술가는 여성, 인종, 나아가 세상의 모든 경계를 주제로 새로운 미술을 펼쳐 나가고 있다. 칼 아츠 출신으로 개념 미술의 대부로 손꼽히고 있는 존 발데사리 John Baldessari가 지난달 서거한 것도 세계 미술계의 관심을 LA로 돌리게 하는 하나의 요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