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의 범주를 넘나들며 틀에서 벗어난 작업을 이어가는 윤라희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그녀는 재료가 지닌 물성에 대해 탐구하는 것을 즐긴다.
윤라희 작가의 작업실은 동그랗거나 네모반듯한 형형색색의 오브제로 가득했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용도가 모호한 오브제도 있었는데, 고운 빛깔과 섬세하게 깎인 형태가 아름다운 것만큼은 확실했다. 공예를 전공한 윤라희 작가는 졸업 후 8년간 VMD 일을 하면서 자연스레 산업적인 소재인 아크릴을 접하게 되었고, 재료 자체에 대해 연구하던 것이 현재까지 이어졌다. 특히 2개의 아크릴이 겹쳐 있는 화병 시리즈는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데, 이 작업을 표현할 수 있는 기술자가 국내에는 한 명밖에 없어 그와의 긴밀한 소통과 함께 오랜 기간을 요한다고. 이외에도 석고와 금속, 대리석 등 산업적인 재료를 활용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제가 작업할 때 가장 중시하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제 자신의 스토리보다는 재료 본연이 가지고 있는 물성을 어떻게 하면 더 섬세하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과 그 모든 것이 어떤 방식으로 단순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요. 화병이라든지 문진, 펜 홀더, 가구 등의 기능도 최대한 단순화해서 그 안에서 느껴지는 섬세함을 어떻게 하면 명확하게, 때로는 모호하게 보여질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그녀의 작업을 보면 사물의 용도에 대해 따져보기보다 재료가 더욱 눈에 띈다. 어디에서 혹은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받는지 물어보자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공장 아저씨요. 공장 사장님들은 누구보다도 저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친구들보다도 더 자주 만나는분들이에요. 공장 사장님들과 이야기할 때 영감이 가장 많이 떠오르는데, 그들의 시선이 조금 더 일반적일 수도 있고, 제가 구현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기술적으로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제안해 주셔서인 것 같아요. 또 재료 자체가 주는 느낌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어 작품의 방향을 구상할 때 큰 도움이 돼요.” 윤라희 작가는 작품 활동 외에도 다양한 브랜드나 작가들과의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아키모스피어와 협업해 하나은행 본점 VIP룸의 문손잡이를 제작했는데, 서울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장소의 특성과 분위기를 함축해 표현한 프로젝트로 특히 인상 깊었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오는 4월 밀라노 국제 박람회에서 한국 작가들과 함께 화병 시리즈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했다. 분명 윤라희 작가의 작품은 해외에서도 주목받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