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고 계획한 것을 이어나가는 이들이 있다. 여덟 개의 쓰임새를 지닌 공간으로 이뤄진 신촌문화관의 주인장들이다.
노후된 건물, 빽빽하게 들어선 원룸 건물이 밀집한 신촌에서 40년간 자리를 지킨 낡은 건물은 주인장인 김수연, 니콜라스라는 애칭을 지닌 임상완 부부 덕분에 ‘신촌문화관’이라는 이름을 걸고 다시 태어났다. 이들 부부는 각각 브랜딩과 IT업계에서 오랜 시간 몸담았지만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도모했다. “어느 순간 일에 지쳐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잠시 숨을 고를때라는 걸 알았어요. 누비 작업을 좋아해서 틈틈이 해왔고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사업으로 연결시켜볼 생각이었죠. 그래서 쇼룸을 찾고 있었는데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사용해보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김수연 대표가 건물의 시작점을 설명했다. 부부는 낡은 건물을 허물고 신축 건물을 지을까도 고민했지만, 다양한 입주자를 거치면서 꿋꿋하게 버텨온 건물의 내공을 존중하기로 했다. 두 채가 이어져 있는 독특한 형태의 건물은 총 여덟 개의 호실로 나뉜다. “오래된 건물이고, 신촌문화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호실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었어요. 그리고 간단하고 직관적인 용도로 공간을 나누었죠. 예를 들어 2호실은 전시를 위한 빈 공간이지만 갤러리 대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둔 플로어 Floor라는 이름을 붙였고요, 작가나 작은 사무실을 찾는 이들을 위해 4 · 6호실은 스튜디오라는 이름을 붙였죠.” 니콜라스가 커피를 내리며 설명했다. 그는 굉장한 커피 애호가인데 몇 년간 꾸준히 커피에 대해 공부했고 현재 건물 2층에 위치한 벤치 커피 스튜디오에서 호주의 싱글오 Single O 원두를 공식으로 선보이고 있다.
미술관, 공원 등 벤치가 놓인 곳에서는 언제라도 편하게 앉아서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익숙한 ‘벤치’라는 단어를 선택했고, 커피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스튜디오라는 단어로 뒷받침했다. 바로 위층인 LIMN은 김수연 대표의 누비 작업을 볼 수 있는 작업실 겸 쇼룸으로 준비 중이다. 그녀가 만든 고운 누비 작품은 에어 비앤비로 사용할 7·8호실에서도 볼 수 있는데, 한 땀 한 땀 기운 조각에서 부드러운 정성이 느껴졌다. 꽤 많은 공간을 보유한 신촌문화관은 누군가에게는 잠시 머무는 집이 될 수도 있고, 작가에게는 전시 공간, 때로는 커피를 마시거나 누비 제품을 보기 위해 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무한히 열려 있는 가능성이 이곳의 매력인 셈이다. 시국이 잠잠해지면 테라스 공간을 오픈할 계획도 세웠다. “코로나19로 지역사회가 활기를 잃었어요. 오픈 초기여서 이런 상황이 아쉽기도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이 즐거웠고, 여전히 그 과정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라는 니콜라스의 말처럼 신촌문화관은 미완성을 자처하며 계속 채워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