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무겁고 힘겨운 한 해를 보낸 우리 모두에게 정말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아무리 어두운 곳에서도 작은 빛을 발견할 수 있듯 소소하지만 삶에 위안이 되는 것은 늘 있기 마련이다. 지난 한 해 각 분야에서 고군분투한 21인이 보내온 리스트를 보며 작은 것의 소중함을 느끼는 새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화병과 꽃
미뗌바우하우스 대표 우수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내 공간에 두는 식물이나 꽃에 대한 생각이 그리 크지 않았다. 최근 들어 화병에 꽃을 꽂아두기 시작했는데, 왜 많은 사람이 꽃을 사는지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계절에 어울리는 꽃을 활용해 좋아하는 화병에 장식해두었을 때 그 작은 변화만으로도 공간이 환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요즘은 분위기 전환차 시간이 날 때마다 새로운 꽃을 꽂는 것을 즐기고 있다.
세라믹 머그
키오스크키오스크 대표 민진아
어제의 지친 몸과 마음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가장 먼저 찬장을 열어본다. 신중히 골라 가지런히 넣어둔 소중한 세라믹 머그들이 보인다. 고심하다 하나를 고른 다음, 따뜻한 물을 머그에 부어 잔을 데운다. 데워진 잔을 두손으로 움켜쥐면 따뜻한 온기가 몸 전체를 천천히 감싸주는 것만 같다. 물이 식어갈 즈음이면 잔을 비우고 커피를 마실 준비를 한다. 갓 그라인딩한 커피를 온수로 데운 머그에 부은 다음 향을맡고, 이내 음미한다. 이렇게 맑아진 정신으로 조용하고 따뜻하게 하루를 준비한다.
이적 ‘당연한 것들’
HS AD 카피라이터 민병문
꿈이 이토록 소박했던 때가 있었던가. 노래 중 ‘거리를 걷고, 친구를 만나고, 손을 잡고, 껴안아주던’, 가사가 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 소원이 되어가고 있다.며칠 전 길을 걷다 넘어진 아이를 보고 차마 손을 내밀지 못했을 때 또 한번 알아버렸다. 이 시절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언젠가 ‘당연한 것들’이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온다면, 다시는 당연하다 여기지 않으리라. 이적의 노래에 위로받으며, 굳게 다짐해본다.
쇼브룩 쌩쇼
노랑방 대표 최보원
마음 편히 밖에 나가 놀고 먹고 마시는 것도 어려운 요즘, 나에게 가장 큰 위안은 반려견 오디와 그리고 오디를 벗 삼아 혼자서 홀짝이는 내추럴 와인이다. 그중 쇼브룩 와이너리의 쌩쇼라는 와인이 요즘 나의 최애 와인이다. 적당한 타닌감에 풍부한 블루베리 향이 기분 좋은 와인으로 곶감이나 고구마, 붕어빵 등 어떤 겨울밤 간식과도 잘 어울린다. 특히 레드 와인에 절인 견과류와 버터가 들어있는 아라 홈그라운드의 곶감말이를 얇게 썰어 한입 베물고,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면 코로나19가 아니어도 집에 콕 박혀 혼자만 즐기고 싶은 맛을 느낄 수 있다.
비트라 루키 체어
비블리오떼크 실장 조현아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사랑하는 이들과 보내는 시간 그 자체가 위안이지만, 의외로 소소한 많은 것이 나를 지탱하며 위로하고 있었다. 최근 두 아이들이 2주 동안 자가격리를 하게 되면서 식탁에서 업무와 식사, 아이들과 소통하는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이때 독일 디자이너 콘스탄틴 그릭이 디자인한 비트라 루키 체어는 나와 한몸이 되어 이 상황을 위로해주었다. 사무용 의자지만 시트와 등받이의 높낮이 조절과 푹신한 쿠션감, 스위블 베이스만 남긴 채 단순하고 슬림한 디자인으로 식탁에서 사용해도 과하지 않고 업무의 피로도를 줄여주는 기특한 아이템이다.
프래그런스 오일
호스팅하우스 디렉터 장호석
공간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향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추운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는 계절이 되면 내게 향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그럴때면 집이나 사무실을 가리지 않고 항상 좋아하는 프래그런스 오일을 이용해 포근한 향으로 공간을 채운다. 향은 공간의 인상을 각인시킬 수 있는 아주 간단하고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멋스러운 오브제와 가구로 한껏 꾸민 장소도 좋지만, 그곳의 분위기와 자연스레 조화를 이루는 향은 아주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은 듯한 포만감을 선사한다.
반려견 후추
아틀리에 태인 디렉터 양태인
반려견 후추가 1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파양 공고가 올라온 골든 두들종의 후추는 이름도 같고, 파양한 사연에 마음이 아파 몇개월 전에 입양했다. 한살도 채 되지 않은 후추와 집에서 가까운 남산으로 자주 산책을 가곤 했다. 눈이 내린 날 용수철이 튀어오르듯 신나게 달려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 시간만으로도 행복하다. 특히나 복실복실한 솜뭉치처럼 따뜻한 몸이 두 팔에 폭 안기면 온몸이 따뜻해진다. 그 순간은 어떠한 설명도 필요 없이 아주 큰 위안이 된다.
오늘의 향수
시세이도 향수 PR 김최유나
매일 아침 출근 의식인 것 마냥 그날의기분에따라 엄격하게 향수를 고른다. 하루의 운세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처럼 주문을 건다고 할까. 유독 피곤한 날에는 상큼한 푸르티 계열을, 큰 발표를 앞둔 날엔 머스크 우드 계열을 선택하는 것처럼 향으로 최면을 걸어 하루를 버틸 수 있는 힘을 얻는 나만의 방법이다.예측할 수 없는 내 하루를 내가 고른 향 하나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큰 용기와 위안이 된다.